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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관련기사20
편집자주동물이나 인형을 닮은 반려 인공지능(AI) ‘피코’가 있다. 피코는 7년에 1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면 인간을 넘어서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단 두려움 때문이다. 제타는 정든 피코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주인들을 위해 대신 해체하는 용역업체에 근무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불법 개조된 피코, 프레야를 만난다.

네번째 세계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가작 '네번째 세계' <3> 교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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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AT. 5

악몽을 꾸었다. 무슨 악몽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몹시 더러운 기분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아마 어제 밖에서 본 이상한 것들 때문이겠지.
선원들의 상태도 최악이었다. 더글라스가 아침부터 울며불며 한바탕 난리를 친 상태이다. 나 역시 너무나 피곤하다.

정말 내키지 않지만 나가서 데이빗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논의했는데 끔찍하게 모습이 변한 탓에 마음 같아선 화장을 해주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 리도 없고, 관례대로 냉동 캡슐로 정해졌다.

일 자체는 간단하다. 냉동 캡슐을 가져가 시신을 담아오는 것이 전부다. 겁에 질린 더글라스를 남겨 두고, 나머지 놈들을 떠밀다시피 하여 임무를 수행했다. 예상대로 그 괴생명체들이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 어찌 보면 이 또한 대발견이긴 하다. 외계 생명체라니, 우리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만 아니라면 신이 났겠지.

다만 데이빗을 넣은 캡슐은 선원들이 감염이나 다른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탈출선에 넣는 것을 반대했다. 아마 공포심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데이빗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으므로 이에 동의했고, 함선에서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곳을 골라 고정시켜두었다. 고인에게 이게 무슨 짓인지...

캡슐을 회수하고 나니 함선의 상태를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은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더글라스만은 여전히 경기를 일으켜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까지 해야 했다.

함선의 풍경은 어제보다는 적응을 해서인지 동요는 적었지만, 그래도 역시 한 번 본다고 익숙해지는 광경은 아니었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거미나 바퀴벌레들이 내 몸 위로 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아마 여기에서 뭔가 더 이상한 것이 튀어나왔으면 정신이 나가버렸을 지도 몰랐겠지.

함선 내부에서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곳은 전부 돌아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추가 생존자나 시신은 찾지 못했다. 그저 회색빛 토사와 망가진 장비들, 징그러운 정체불명의 것들이 밟힐 뿐이었다.

몇몇 곳에 토사와 잔해로 막혀버린 곳이 있었다. 처음 예상대로 토사와 함선 외장이 절묘하게 뭉쳐서 차폐막 역할을 하고 있었다. 충격을 주면 무너져내릴지도 모르기에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의논을 거쳐 함선의 생명유지장치를 내리기로 했다. 살아있는 외계생명체는 중요한 샘플이긴 하지만 우리 생존이 더 중요하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아의 해석도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이렇게까지 신경이 곤두선 적이 있었던가. 쉬고 싶다.


AT. 6

그것들은 거의 죽었다. 생명유지장치를 내린지 14시간 정도 지나자, 탐지기에는 아예 잡히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생물이 맞긴 했던 모양이다. 그것들이 죽었다고 하니 그래도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묘하다.

그 자체로는 대단한 위협이 아니라는 것이 불행일지 다행일지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일단 눈앞의 기괴한 위협은 사라졌지만 이게 왜 발생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내야 온전히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죽었다고 하니, 곤살로를 데리고 나가서 조사를 하기로 했다.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도 같으니. 곤살로는 몸서리를 쳤지만 할 사람이 자기밖에 없으니 별 수 있나.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가진 의료키트로 기초적인 생물학적 검사를 할 수 있다. 본래 우주에서 생물체나 그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면 분석하기 위한 전문 장비도 탑재되어 있다.

하, 생각해보면 이 한번의 탐사에서 우주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사건을 겪는 것 같다. 외계 문명, 외계 생물, 우주 속 조난, 끝내주는 탐사로군.

그러나 그런 조사는 함선과 분석실이 멀쩡할 때나 가능한 것이고, 저것을 탈출선에 들여와 조사하기는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혹시나 감염이라도 발생하면 정말 답도 없을테니까.

곤살로를 데려왔지만 거부감 때문인지 제대로 조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최근 이놈도 눈에 띄게 불안해 보인다. 어쩌겠나, 기운 차리길 바래야지.

자세한 검사는 포기하고 육안으로 외관을 살펴보기만 했다.

이것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자세히 보니 그냥 알 덩어리가 아니라 곰팡이나 균 같다. 거대한 알의 주변에는 나무의 뿌리처럼 미세한 실사같은 것이 뻗어나가 있었다. 아니, 모세혈관이이나 뿌리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이런 것으로 무언가 영양 공급이라도 하는 것인가?

대체로 구형을 띄고 있으나 세세한 모양은 종잡을 수 없다. 형태로 추정해 보면, 버섯과 비슷한 생태가 아닐까 한다.

처음에는 샘플을 채취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위험한 계획같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 밖에 별다른 변동사항은 없다. 이유도 모른 채, 정체 불명의 물건과 괴생물체와 함께, 산사태 속에 갇혀있다.

스티브는 자기 작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메인컴퓨터도 완벽한 상태는 아니라 이것저것 제약이 많은 모양이고. 녀석도 꽤나 피폐해졌다.

모르겠다. 밖의 그것들이 죽어서 약간 안심하긴 했지만, 선원들은 눈에 띄게 침체되고 있다. 사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도 희망 섞인 판단일 뿐이지, 언제든 답답한 천장을 뚫고 흙이 쏟아져내려올지 모른다.

최소한 한달은 더 이 속에서 버텨야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AT. 7

오늘은 별다른 일은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그래도 일주일은 버텼다. 그러나 앞으로 버텨야 할 시간이 너무나 막막하다.

별다른 일이 없으니 이것은 이것대로 모두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 시간이 남으니 우울한 생각만 자꾸 떠오른다. 하기사 그럴 만도 한 것이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 언제 형 집행을 받을지도 모르는 죄수 꼴이다. 이곳엔 개인공간도 없고 화장실이나 식사도 형편없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힐 수밖에.

이것도 별로 더 쓰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죽으면 필요가 없고, 살면 직접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갑갑하기 짝이 없군. 솔데로카가 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AT. 8

나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눈에 띄게 무력해지고 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무기력해졌다. 시아 연구도, 구조상황도 전혀 개선이 없다.

오늘 더글라스와 곤살로가 서로 주먹질을 했다. 겁쟁이 취급을 해서 신경이 거슬렸단다. 슬슬 선원들에게도 한계가 찾아오는 모양이다. 아니지, 사실 진작에 한계들이지. 최소한 나는 그렇거든.

그러나 딱히 상황을 개선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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