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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대상 '피코' 관련기사20
편집자주동물이나 인형을 닮은 반려 인공지능(AI) ‘피코’가 있다. 피코는 7년에 1번씩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생기면 인간을 넘어서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단 두려움 때문이다. 제타는 정든 피코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주인들을 위해 대신 해체하는 용역업체에 근무한다. 여느 때처럼 근무하던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불법 개조된 피코, 프레야를 만난다.

네번째 세계

[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가작 '네번째 세계' <4>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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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세계



AT. 13

씨발, 매일매일이 신세계다.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된 거지.

황당한 일들을 정리하기도 지쳤다. 이제 보니까 우리 바로 옆에 웬 병신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저게 아마 원흉과 관계된 것이다.

애초에 개떡같은 물건을 주워오는 게 아니었다.

일지를 빼먹은 것은 귀찮아서였지 그동안 별 다른 일은 없었다. 싸움 이후로 더글라스와 곤살로가 서로를 무시하는 것 빼면(딱히 문제도 없어서 긁어 부스럼이 될까봐 놔두었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

바뀐 것이 조금 있다면 선원들이 탈출선 밖으로 가끔 '외출'을 했다는 것 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기본적으로 안에만 있으면 갑갑하고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좁은데서 바글바글하게 굴어봤자 사이만 나빠질 것 같아서 나도 그냥 용인하고 있었다.

시아의 작업에 몰두중인 스티브와 침울해진 곤살로를 제외하면 조금씩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밖에 있던 괴생명체나 감염 등을 걱정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더글라스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 저스틴은 죽었고 제이스 녀석은 손가락을 잘라먹고 들어왔다. 제이스와 저스틴은 요 며칠사이 함내에서 쓸만한 물건이 없나 뒤져보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았었는데 오늘은 어쩌다 함선의 무너진 부분을 건드렸단다. 함선 외장을 대신해 쌓인 잔해와 토사 등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상태였었는지 근처를 걸었을 뿐인데 그대로 무너져버렸단다.

거지같은 자식들.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지들만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구멍으로 토사가 밀려들어오면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제이슨의 목격에 의하면 저스틴은 잔해 위에 올라가려 했는데, 저스틴이 올라가자 무게를 못 이기고 잔해가 무너지면서 저스틴도 떨어졌다. 그런데 저스틴도 그렇고 잔해들도 그렇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깔렸다던가, 어디 바닥으로 떨어졌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단다.

제이스는 넘어진 저스틴을 도와주러 갔다가 그가 홀연히 사라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스틴이 넘어진 쪽을 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시커먼 검은 공간만이 벽처럼 서 있었다는 것이다.

제이스는 엉겁결에 그 검은 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가(아마 어두운 곳이라 생각하고 저스틴을 찾으려 했었겠지) 그대로 검지와 중지, 약지가 한 마디씩 날아가버렸다.

그래놓고는 피가 철철 나는 손을 들고는 기겁해서 달려온 것이다. 처음엔 그 부주의에 하도 화가 나서 그냥 밖에서 뒈지게 냅둘까 했다.

여하튼 그래서 직접 가봤다. 정말로 이전에는 없던 검은 벽이 잔해와 저스틴의 일부(정확하게 말하면 양 다리가 있었다. 왼쪽은 허벅지 부분까지, 오른쪽은 무릎 부분까지 남아있었다) 뒤편에 시커멓게 서 있었다. 잘린 표면은 마치 예리한 칼날에 베인 것처럼 매끈했다. 의외로 피도 별로 나지 않았다.

그 구멍, 아니, 처음에는 구멍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주변의 잔해를 치우니 온통 그 검은 벽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본 것중 가장 괴상한 것이다.

불빛을 비춰도 빛이 반사되지 않았고 소리를 질러봐도 메아리가 없었다. 근처에 있던 잔해들을 던져보고 밀어도 보았다. 파직 하고 잠깐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소리도, 빛도, 물건도 어느것 하나 그 검은 구멍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만, 블랙홀 같았다. 그런데 블랙홀과 같은 구체가 아니라 벽이다.

그걸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씨발, 다시 생각해봐도 진짜 어이가 없네. 가지가지 튀어나오는데 너무하네 진짜. 이게 가능해? 내가 아무리 노가다로 다닌 거지만, 그래도 30년 넘게 우주를 다니고 곁다리로라도 물리책을 본 역사가 몇년인데, 이게 말이 되냐고.


하다하다 이딴 것까지 나오면 대체 뭘 어쩌라는거냐.

조금 심신을 정리하고 다시 쓴다. 일단 이 발견으로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의 규모를 간신히 가늠할 것 같다. 지금까지도 거지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함선이 부서진 것은 우주폭풍 때문이 아니었다. 우주폭풍 같은 평이한 것이 아니다. 이 정도 되면 아무리 머저리라도 이해해야지.

지금 우리 탈출선 안에 들어있는 해괴망측한 기계가, 우리 주변의 물리 법칙을 바꿔 놓은 것이다. 언제, 어떻게, 왜 바꿨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여하튼 이 일련의 거지같은 일들이 전부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 어떻게 보면 이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사고의 원인이 자기폭풍이라 생각할 적에는 당최 앞뒤가 맞지가 않았다. 흔해빠진 자기폭풍과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어떻게 관련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 블랙홀 비슷한 것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건 정말로 말도 안되는 것이다. 최근 어이없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지만, 저것만큼 상식에 반하는 일은 없었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을 기반으로 주변의 물질들을 흡수한다. 따라서 블랙홀 근처에 뭐가 있으면 빨려 들어가야 정상이다. 그리고 블랙홀은 엄청난 질량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는 진작에 빨려들어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블랙홀은 그 질량으로 인해서 구형, 최소한 타원형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 저런 식으로 형편 좋게 펼쳐져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빛이나 소리 등 물질을 흡수하는 것은 마치 블랙홀 같으면서 우리는 중력장에 빨려들어가지 않았다. 흡수능력을 제외한다면, 전혀 블랙홀 같지 않다. 오히려 특수하게 만들어진 장에 가깝다. 플라즈마장이나 전자기장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저런 식의, 중력장? 블랙홀장? 여하간 이름 붙일수도 없는 저런 물건은 누가 상상하는 것조차 본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선원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저런 괴상망측한 현상은 추론할 수조차 없다.

한마디로 저 벽의 존재가 현대물리학의 법칙 중 무언가를 제대로 박살내고 있는 것이다.

염병할.

상황이 이 정도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현실감이 망가진 상황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갑자기 멀쩡한 땅에서 함선이 통째로 망가진 것도, 당최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출현한 것도 전부 어떻게든 관련이 있겠지.

그래, 오늘부터 할 일을 정했다. 어제나 오늘이나 수수께끼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어떻게든 견적이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지 비로소 이해했다.

어차피 솔데로카가 지금 당장 와도 아마 구출되지 못할 것이다. 밖에 있는 저 이상한 공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솔데로카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발견해도 이 장을 어떻게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안쪽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너무 상식 외의 이야기라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지만, 이제부터 수수께끼를 해결해나갈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우리에게는 문제의 원인도, 원인을 해석할 물건도, 그것을 보조할 학술 자료도 갖추어 있다. 시간도 어느 정도는 있다.

반드시 해답을 찾아내겠다. 이 거지같은 이상현상을 해결하고 집에 돌아갈 것이다. 우주가 나를 엿먹인다면, 나도 우주를 엿먹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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