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수사 '미궁'에 빠지나…"CCTV 아니었다면 완전범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 사건 발생 일주일째인 19일 김정남 피습 당시의 CCTV 영상이 공개됐다. 일본 후지TV와 도쿄방송(TBS) 등이 공개한 5분여 분량의 영상에는 김정남이 공항 출국장 진입부터 피습 당시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다. 사진은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김정남이 흰색 옷을 입은 여성에게 피습 당하는 순간부터 공항내 의무실로 이동하는 장면./사진=유튜브 캡처

"수많은 CCTV만 아니었으면 완벽한 범행이 될 뻔했다."


말레이시아 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피살된 사건을 두고 이같이 전했다. 이 사건의 명백한 증거가 CCTV 영상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김정남 피살 수사는 핵심 용의자 체포 실패와 결정적 단서 부족 등으로 사건의 완전한 실체 파악에는 어려움이 있을 전망이다.

◇수사망을 벗어난 핵심 용의자들
20일 싱가포르 매체 채널뉴스아시아에 따르면 김정남 피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북한 남성 4명은 13일 범행을 저지른 직후 말레이시아에서 출국해 17일 북한 평양으로 돌아갔다. 매체는 말레이시아 경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용의자 4명이 쿠알라룸프르-인도네시아 자카르타-아랍에미리트 두바이-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평양으로 이미 돌아갔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들은 용의자들이 고의로 3개국을 옮겨다니면서 나흘 만에 평양에 도착하는 우회노선을 택했다며 말레이시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노릇 라싯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은 도주한 북한 남성 4명의 신원이 리희연(32), 홍송학(34), 리재남(57), 오종길(55)이라고 밝혔다. 이들 4명은 이번 사건을 기획·모의하고 암살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용의자들이 이미 말레이시아를 벗어난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사는 난관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체포된 용의자들의 조사에서도 결정적 증거나 단서가 나오지 않아 사건 자체가 미궁 속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혐의 부인하는 리정철… 범행 도구 등 결정적 증거 없어
말레이시아 중문 매체 중국보에 따르면 경찰에 체포된 북한 남성 리정철(46)은 범행 가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지난 17일 쿠알루룸푸르 시내 아파트에서 경찰에 붙잡힌 리정철은 조사에서 "나는 아니다. 암살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지난 13일 사건 당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리정철은 앞서 체포된 용의여성 2명도 모른다며 공항 폐쇄회로(CC) TV를 통해 파악한 남자 용의자 4명 모두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중국보는 전했다.

중국보에 따르면 리정철은 그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항암 보건약품회사에서 일했으며 인도 유학까지 마친 화학과 약학 전공자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리정철이 접촉한 사람과 회사 관계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 그가 김정남 살해에 쓰인 독극물을 만들거나 제공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하지만 경찰은 아직 리정철의 자택과 근무직장에서 김정남 암살과 직접 연관된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다만 경찰은 공항 CCTV를 분석한 결과 리정철이 김정남을 암살한 여성 용의자를 공항까지 태워다준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가 운전한 차량의 번호판을 통해 그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중국보는 보도했다.

앞서 경찰에 체포된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야이샤(25)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8)도 경찰에 장난 영상을 촬영하는 줄 알았다며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 사인도 못 밝힌 경찰
경찰은 김정남이 독극물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김정남의 사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8일 경찰 당국은 2차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중국보에 따르면 유명 군사평론가인 핑커푸는 김정남의 시신에 독약 성분이 남겨져 있지 않아 말레이시아 경찰이 재부검에 나서더라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핑커푸는 암살 수법이 소련의 KGB 방식과 유사하다며 강력한 심장 쇠약을 유발해 외관상 심장 발작에 의한 자연사망처럼 보이도록 하는 기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