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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장편 대상=김백상 '에셔의 손' △중·단편 대상=김초엽 '관내분실' △중·단편 우수상=해당없음 △중·단편 가작 5편=김선호 '라디오 장례식', 오정연 '마지막 로그',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혜진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이루카(필명) '독립의 오단계'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2회 과학문학공모전 중단편소설] 대상 '관내분실' <마지막회>

2회 과학문학공모전 당선작 머니투데이 김초엽 |입력 : 2017.11.12 07:00|조회 : 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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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이너.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지민은 엄마를 상상했다. 어쩌면 한때 그녀는 지민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설렜을까. 사랑해주겠다고 결심했을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주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한때 그녀가 누구였건, 지민과 관계 맺었던 은하는 그녀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 없는 형편없는 엄마였다. 살아있는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다급히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지민을 직원들이 놀란 얼굴로 보았다. 그중 지민의 얼굴을 알아본 직원이 다가 와 지민의 짐을 거들었다. 지민은 곧장 관리자를 찾았다. 그는 인포메이션 창구로 와서 사서와 함께 지민이 가져온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민이 내민 것은 그중 현욱의 집에서 가져온 책들이었다. 다섯 권의 종이책은 무거웠다.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종이책이 도서관에 등장한 것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렸다. 다섯 권 책의 표지는 일관성이 있었다. 한때 그녀의 엄마가 가졌을 감각과 취향이 보였다.

한 권의 책을 시냅스 스캐닝하는 데에는 오 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초조했다. 시선이 발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스캐닝에서 지민은 셀 수 없이 많은 이름이 정렬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엄마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사서는 머뭇거리지 않고 다음 책을 스캐닝하기 시작했다. 화면의 %가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그분이 직접 쓰신 책인가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두 번째 책을 스캐닝할 때까지도 결과는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너무 많은 마인드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점차 줄어드는 것은 분명히 보였다. 아직 지민의 표정에는 실망한 기색이 없었다. 이제 세 번째 책이 끝났다. 네 번째 스캐닝. 주위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지민을 둘러싸고 결과를 기다렸다.

정적, 이따금 침묵을 파고드는 기침 소리, 초조한 시선들. 그런데도 지민은 확신했다.

“아, 나왔어요.”

사서가 손을 내밀어 모니터에 뜬 이름을 가리켰다.

수많은 문자들 사이에 있는 엄마의 이름을 지민은 알아보았다. 김은하.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타는 기분이다.

마인드 접속기는 카드를 인식하고 접속을 시작하게 되어 있었다. 사서가 긴장된 눈빛으로 옆에서 기계를 건네주었다. 지민이 은하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가져다 대자, 파란색의 조명이 켜지면서 접근 허가 안내가 떴다. 접속기는 단출한 구성이었다. 대뇌 피질에 신호를 보내는 가상현실 구현 헤드셋을 착용하고, 기계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눈을 떴을 때, 지민의 앞에 펼쳐진 장면은 흐릿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지민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무언가 장벽 너머에 있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민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다. 입가에 패인 주름과 약간은 희끗하게 센 머리가 보였다. 조금씩 주위의 풍경이 선명해졌다. 이제 지민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지민과 엄마는 작은 서재에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가상의 공간이다. 책과 노트, 벽을 채운 그림들, 은하가 지민의 엄마이기 전에 엄마가 사랑했던 것들,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다. 그리고 지민은 책상 한쪽에 자신과 유민의 사진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공간 속에서 은하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해 보였다. 그녀가 살아있던 때에, 지민은 이따금 엄마가 공기 중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문득 떠올린 것은,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는 엄마만의 방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은하는 고개를 돌려 공간 속으로 들어온 지민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해석할 수 없었다. 너무 사람 같다고 말하던, 사람들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지민은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는 죽었다. 여기에 있는 건 엄마가 아니다.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도, 용서를 빌 수도 없다. 모든 것은 끝난 뒤에 덧붙여지는 사족이다.

하지만 이대로 떠날 수도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미안하다거나, 그녀를 용서한다거나 하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은하는 지민이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이 진열된 책장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민은 은하가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민은 한 발짝 다가섰다.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던 은하가 마침내 지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은 알 수 있었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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