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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꿈꾸던 고시생이 환자 대변인이 된 사연은

[피플]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머니투데이 민승기 기자 |입력 : 2018.08.01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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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사진제공=한국환자단체연합회
"제가 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내가 만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을 때 환자단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잠깐 봉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2001년 아내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환자단체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는 1차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평범한 법학도였다.

병원은 그의 아내에게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며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 안 대표는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가을동화' 여주인공과 같은 백혈병이라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마침 그때 기적의 신약이라고 불리던 '글리벡'이 국내에 출시됐다.

문제는 약값이었다. 당시 글리벡 약값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에 약 450만원 수준이었다. 고시생이던 안 대표가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다행히 그의 아내는 건강보험 적용 전까지 약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환자지원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고, 골수이식을 통해 건강해질 수 있었다.

글리벡 약값을 결정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 본 그는 '환자의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후 안대표는 백혈병환우회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2005년 백혈병환우회 대표가 됐다. 적극적인 활동에 힘입어 2010년에는 9개 환자단체 모임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로 선출됐다.

처음에는 너무 공격적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환자들을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인권위원회를 찾아갔고 기자회견, 토론회에서의 발언도 정제되지 않은 거친 단어가 나오기 일쑤였다.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해 본적도 없었죠. 첫 직장이 백혈병환우회였으니 얼마나 미숙했겠어요. 세련되진 않았지만 진심을 담아 환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죠."

환자운동 활동가로 활약을 펼치던 2010년, 항암제 투약 오류로 9살 어린이가 사망한 일명 '종현이 사건'이 터졌다. 사건 발생 이후 정종현 군의 어머니는 환자단체 사무실로 찾아와 "'제2의 종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안 대표는 종현이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에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설득한 끝에 결국 환자안전법이 제정되고, 환자안전 종합계획도 마련됐다.

안 대표는 "종현이 사건을 통해 환자가 보건의료 중심이 돼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이 때의 깨달음으로 더욱 활발히 활동했고, 의료분쟁조정제도, 진료기록 블랙박스법 등이 만들어지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소원이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저녁도 먹고, 주말에 가족여행을 가보는 것"이라면서도 "생명이 오가는 환자들의 문제를 외면할 순 없다.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 하는데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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