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145.12 718.87 1134.30
▼16.73 ▼12.63 ▲2.9
한국과학문학상 (~10/15) 메디슈머시대 (7/6~미정)
블록체인 가상화폐

판사가 말하는 '판결불신'의 이유

[the L][피플] "판결문에도 인문학 있어야"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입력 : 2018.10.01 04:00
폰트크기
기사공유
/사진=김창현 기자
/사진=김창현 기자


"사람 나고 재판 났지, 재판 나고 사람 났나요."

박형남 서울고법 부장판사(58·사법연수원 14기)는 법관으로 30년을 살면서 재판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람을 이해해야 갈등을 이해하고 제대로 판결할 수 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막상 법정에 가면 사람 이야기를 찾기 힘들다. 변호사들의 의견서와 판례에 적힌 법리만 남는다. 이런 재판은 죽은 판결문을 낳기 십상이다. 법률용어로 가득 차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문 말이다. 읽히지 않는 판결문을 놓고 골머리를 썩이다 보니 판사가 제대로 판결한 건지 의심스럽다. 박 부장판사는 이런 상황을 두고 "화성에서 온 시민, 목성에서 온 판사 같다"고 진단했다.

"판결은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사람의 문제는 인간의 가치관과 일생과 관련돼 있거든요.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사람 이야기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판결문도, 판결도 이해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재판이 사회와 점점 동떨어지고 불신을 받게 되는 겁니다."

박 부장판사가 2013년 맡은 한 공무원의 자살 사건에서 국내 최초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한 것도 이런 신념 때문이다. 심리적 부검은 서류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터뷰와 심층조사를 통해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뜻한다. 이 사건에서 박 부장판사는 공무원의 죽음을 '사회적 요인에 의한 자살'로 보고 공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인간존엄의 문제입니다. 법리를 이용한 논증도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얼마나 힘들어 했느냐 이것으로 판단해야죠. 판사의 잣대만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민과 재판이 '화해'하려면 판사가 두 가지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게 박 부장판사의 생각이다. 첫째는 앞서 밝혔듯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 쉬운 판결문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법정 밖에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다. 둘째 역할은 판사로서 실천하기 쉽지 않다. 판사가 밝히는 생각과 소신이 왜곡돼 또 다른 논란을 부르는 일이 왕왕 있어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의 생각은 다르다. 판사라면 재판을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두고 박 부장판사는 '커밍아웃한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그가 다년 간의 연구를 거쳐 책 '재판으로 본 세계사'를 펴낸 것도 '커밍아웃'인 셈이다.


이 책에서 박 부장판사는 15가지의 역사적인 재판을 통해 우리 사법부의 현실을 되짚었다. 특히 17세기 말 미국 세일럼 마녀재판을 위해 구성된 특별재판부가 무고한 이들을 교수형에 처한 대목에서 그는 "특별 법정은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무리해서라도 범인을 색출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심판할 특별재판부를 구성하자는 논의가 오가는 지금 시점에서 지표로 삼을 만한 지적이다.


"판사가 판결로 말한다는 것은 재판 도중에 말하지 말라는 것이죠. 자신의 마음에 와닿았던 사건과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판결이 끝나고 나서 책으로 써야 합니다. 그래야 판사들이 '우리를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이번 책은 서양 재판 위주로 썼지만 다음 책은 우리나라 재판, 그 중에서도 자신이 맡았던 재판에 대해 써볼 생각이라고 박 부장판사는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법학도보다 사람과 소통을 중시하는 인문학도로 불리길 바랐다. 서울대 진학을 앞두고 역사학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등록금 안 내준다"는 부모님의 '엄포'에 법대생이 됐다. 대학 4학년 때 사시에 붙어 판사 외길을 걸었지만 인문학도의 꿈은 놓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소설을 쓰는 문학도였어요.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게 역사학 교수거든요. 어차피 자격도 부족하지만 법대 교수는 몰라도 역사학 교수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해보고 싶어요." 그는 "근데 불러주는 데가 없다"는 농담을 덧붙이며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