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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노인의 하루를 살아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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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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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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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패인 팔(八)자 주름, 관절 압박 장비에 지팡이까지…생전 처음 마주했던 '나이 듦'의 무게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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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노인으로 분장하고, 체험 장비까지 착용하고 나니 세상 만사가 고단해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노약자석'에 앉아 졸고 있는 (척 하는) 기자. 조끼는 나이에 걸맞게 한 번 입어봤다. 그리고 종로3가역에서 충동구매 한 8000원짜리 중절모./사진=남형도 기자 할아버지
80세 노인의 하루를 살아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이란 말을 늘 새기고 살았건만, 이건 좀 갑작스러웠다. 40여분 만에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나도 모르게 다시 질끈 감았다. 거울 속 모습이 낯설어서였다. 춘(春)삼월인데, 9대1 가르마를 한 머리엔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까맣던 눈썹도 희끄무레해졌다. 이마엔 깊게 주름이 패였고, 코 양 옆엔 팔(八)자 주름이 짙었다. 황색으로 변한 얼굴색에서도 세월이 묻어났다. 어쩐지 꼬장꼬장해 보이는 얼굴, 영락없는 할아버지였다. 안경을 벗었던 터라 거울 가까이로 갔다. 뿌옇게 보였던 상(相)이 뚜렷해 졌다. 그러니 더 적응이 안 됐다.

"이게 몇 살쯤 됐을 때 모습인가요?" 가까스로 정신 차린 뒤 곽다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물었다. 그는 "80살쯤 될 거예요"라며 빙긋 웃었다. 어떻게 이리 될 수 있냐, 참 신기하다고 그의 실력을 추켜세웠지만, 사실 맘은 좀 복잡했다. 뭐랄까. 마음이 붕 뜬 느낌이랄까.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물론 43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나이든 모습을 처음 본 탓이겠지만. 그동안 많은 체험을 했었는데, 이번엔 감회가 남달랐다. 평소 잘 보지도 않는 얼굴을,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봤다. 그렇게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곽 원장이 말했다. "다들 처음에 그런 반응이에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실 거예요." 그러면서 목도 피부톤을 맞춰주겠단다. 불필요한 장인정신이었다.

탑골공원에 활짝 핀 봄꽃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돌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 놓고, 왔다 갔다 하며 찍느라 고생 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었더니, 팔자 주름이 더 깊어졌다. 왠지 얄밉게 나왔다.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탑골공원에 활짝 핀 봄꽃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돌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 놓고, 왔다 갔다 하며 찍느라 고생 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었더니, 팔자 주름이 더 깊어졌다. 왠지 얄밉게 나왔다.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노인(老人)이 돼보는 걸 자처하고 있었다. 다들 한 살이라도 덜 들어 보이려 애쓰는 판국에 노인 체험이라니. 계기는 딱 한 가지는 아녔다. 그간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거기엔 누군가의 죽음도 있었다. 재작년에 아내의 할머니 두 분이 잇따라 돌아가셨다. 서른이 넘은 뒤 가족이 숨진 건 처음이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입관하는 자리서 할머니를 만졌는데 딱딱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엄마, 편히 가세요”를 부르짖고 오열하는 걸 봤다. 그 때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그러다 '눈이 부시게'란 드라마를 봤다. 스물 다섯 김혜자(극 중 이름이 실제 배우 이름)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보다 늙어버렸고, 그 충격에 끼니도 거른 채 며칠 밤낮을 방에서 나오지도 못했다. 친구들과는 예전처럼 놀 수 없었고, 남몰래 사랑하던 이에겐 그 사실을 말할 수조차 없었다. 어찌나 연기와 대사가 탁월한지 12회 내내 본방사수하며 과하게 몰입하면서 봤다. 결말은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지만, 꽤나 반전이었고 충격이었다. 그리고 김혜자가 마지막 장면서 활짝 웃을 때쯤엔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나이 든다는 게 뭘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노인이 되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됐다. 어쭙잖게 하고 싶진 않았다. 외모뿐 아니라 몸도 똑같이 불편했음 했다. 일단 한 TV 광고에서 힌트를 얻었다. 노인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광경이 담겼다. 맨눈으로 봐선,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분장이 정교했다. 몰랐으면 그냥 노인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저렇게 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리고 찾아보니 ‘노인 체험 장비’란 게 있었다. 착용하면 허리와 팔, 다리 관절을 압박한다고 했다. 그렇게 80대 노인 거동처럼 불편하게 만든다고 했다. 분장을 하고 이 장비를 착용하면 될 것 같았다. 물론 나이 듦에 따른 병(病)이나 시력 또는 기억력 감퇴나, 그런 것까진 똑같이 못하겠지만. 그래도 짐작해보기로.

그렇게 80세 노인의 하루를 살기로 했다. 3월28일 아침부터 밤까지 체험했다.



팔(八)자 주름, 허연 머리…노인이 되다




노인 분장을 마치고 세워둔 스마트폰 셀카에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나이든 모습을 처음 마주하고 나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원래는 그래도 ‘동안’이란 얘길 많이 들었었는데(믿거나 말거나)./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노인 분장을 마치고 세워둔 스마트폰 셀카에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나이든 모습을 처음 마주하고 나니,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다. 원래는 그래도 ‘동안’이란 얘길 많이 들었었는데(믿거나 말거나)./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노인 분장은 해주는 곳이 별로 없었다. 수소문 끝에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문의했더니, “원래 가격이 200만원 정도 하는데, 49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파격 할인은 감사하지만, 소심한 기자에겐 여전히 놀랄 가격이었다. 부장에게 보고했더니 역시나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 저렴한 곳을 알아봤다. 원래 10만원인데 깎아서 7만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영화처럼 특수 분장하는 건 아니고, 메이크업으로 노인처럼 보이게 한다며 괜찮냐고 했다. 그렇다고 했다. 새로운 취재를 독려하는, 미래 지향적인 마인드를 가진 회사 지원으로 비용을 해결했다(또 해달라고 아부).

이날 아침 9시30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메이크업샵으로 왔다. 메이크업은 결혼할 때 딱 한 번 해봤는데, 오랜만에 들어가 앉으니 낯설었다. 곽 원장과 노인 분장을 하게 된 이야기 등을 나눴다. 연극할 때 노인 분장을 했었고, 결혼하는 친구를 위해 해줬었는데, 문의가 늘어 시작하게 됐단다. 커플이 손을 잡고 나란히 분장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한다고. 세월이 흐른 뒤 서로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떨지. ‘나중에 아내와 함께 와볼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분장하는 동안 어색한 시간을 달랬다.

파우더 브러쉬와 솜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섬세한 손길이 40여분쯤 이어졌다. 눈을 뜨고 있기 힘들어 가만히 감고 있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세월이 꽤 흘러 있었다. 여지없이 노인의 모습이었다. 나이 든 모습을 가끔 상상하곤 했었는데, 멋있게 늙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예를 들면 조지 클루니처럼(죄송). 그런데 현실은 사뭇 달랐다. 한 다섯 살 때쯤인가, 천자문을 배우러 동네 노인정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가르쳐주던 할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한자를 배우다 틀리면 지팡이로 삿대질하며 잔소릴 했던.

하여튼 낯설고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늙는구나, 달라지는구나, 이런 생각만 계속해서 오갔다. 뭔가를 기록하려, 펜과 직사각형 모양 취재수첩을 들었는데 뭐라 쓸지 몰랐다. 잠깐 동안 멍하니 허연 공백만 바라봤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 곽 원장에게 사진 한 장만 찍어 달라 했다. 컬러로 한 장, 그리고 “이렇게 하면 더 리얼하다”며 흑백 사진을 한 장 찍어줬다. 결과물을 보는데 무언가 먹먹하고 저릿했다. 차마 얼굴을 확대하진 못하고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아내에게 이걸 보냈다. 감탄사에 가까운, 네 문장의 답이 왔다. "꺅", "대박", "허엉ㅠ", "뚜룽보(애칭) 할배ㅠ" 이렇게.

노인 체험 장비 착용 후 어깨도 구부정해지고, 허리도 굽어지고, 팔과 다리 관절은 고정시켜 압박하고, 팔목과 발목엔 모래주머니까지. 몸이 무거워지니 정말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와중에 반짝 거리는 결혼반지./사진=남형도 기자 거울 셀카
노인 체험 장비 착용 후 어깨도 구부정해지고, 허리도 굽어지고, 팔과 다리 관절은 고정시켜 압박하고, 팔목과 발목엔 모래주머니까지. 몸이 무거워지니 정말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 와중에 반짝 거리는 결혼반지./사진=남형도 기자 거울 셀카

이제 노인 체험 장비를 빌릴 차례였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노인생애체험센터로 향했다. 센터 내에서 체험하면 무료인데, 바깥을 다닐 거라 대여료 5만원을 냈다. 이 또한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회사 지원으로 해결했다(재차 강조). 도착하니 직원 한 분이 묵직한 장비를 건넸다. 다 합해서 6kg 남짓이라 했다. 보통 옷 위에 입는데, 진짜 노인 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맨살 위에 착용했다. 직원이 “살이 쓸려서 아플 텐데 괜찮겠느냐”고 걱정했다. 양 무릎과 양팔 압박 장비를 차고, 손목과 발목엔 각각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더했다. 어깨와 허리를 압박하는 장비까지 하고 나니 자세가 구부정해졌다. 별 수 없이 지팡이를 짚고 맞은편 전신 거울을 봤다. 속옷만 입은, 낯익은 어르신 한 분이 있었다.

그 상태로 옷을 입으려니 영 죽을 맛이었다. 셔츠에 오른 팔을 겨우 끼우고, 왼팔도 마저하려는데, 관절이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각도가 영 안 나왔다. 낑낑대며 한참을 씨름한 뒤에야 겨우 꼈다. 누워서 떡 먹기였던 일도 이미 아녔다. 사람이 올까 싶어 서둘러 바지까지 입으려 하는데 잘 안 되는 건 마찬가지. 맘이 급한데 몸이 맘처럼 따라가질 않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 와중에 분장이 지워져 '우는 할아버지'가 될까 싶어 숨을 골랐다. 그렇게 어렵게 옷을 다 입었다. 평소 회사서 입는 패딩 조끼까지 걸치니 우여곡절 끝에 완성이 됐다. 잠시 주저앉아 한숨을 돌렸다.



계단을 올랐다, 등산하는 맘으로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올라오는 계단. 이건 다 올라왔을 때 찍은 것이고, 이 정도 되는 계단 구간이 여섯번 정도 더 있었다. 사진엔 안 찍혔지만, 엄청 헉헉 거리며 쉬고 있었다. 마치 등산하는 기분이랄까./사진=남형도 기자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올라오는 계단. 이건 다 올라왔을 때 찍은 것이고, 이 정도 되는 계단 구간이 여섯번 정도 더 있었다. 사진엔 안 찍혔지만, 엄청 헉헉 거리며 쉬고 있었다. 마치 등산하는 기분이랄까./사진=남형도 기자

오전 11시쯤 됐을까. 바깥에 나오니 적당히 따스한 봄바람이 불었다. 머리 위론 반가운 햇살이 가득 쏟아졌다. 눈이 부셔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는, 건물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가뜩이나 많은 주름이 온 얼굴서 춤췄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초록빛 계절을 참 좋아했더랬다. 그런데 홀로 나이 듦을 느끼고 있자니. 어쩐지 쓸쓸하고 왜인지 처량하고 움츠러들었다. ‘그래, 아직 적응하는 시간이려니’ 하며 마음을 달랬다. 제자리서 두리번거리다 발걸음을 떼어보기로 했다.

마음은 ‘성큼성큼’ 앞서갔지만 두 다리는 안 따라줬다. 무릎 관절이 구부정하게 고정된 탓이다. 마치 깁스를 한 것처럼 무릎을 펼 수 없었다. 어렵게 왼발을 떼고, 다시 오른발을 떼고, 그리고 양발보다 좀 더 앞에 지팡이를 딛고.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아기 땐 네 발로, 커서는 두 발로, 늙으면 세 발로 걷는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그 순간 겹쳐지는 장면이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 개찰구로 나갈 때 앞에서 노인들이 더디게 걷던 모습. 늦어서 빨리 출근해야 하는데, 좀 빨리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맘이 들기도 했었다. 그리 할 수 없는 거였구나, 상념 속에서 그 때의 그 낯선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처 잘 몰랐었다고.

더디게 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엔 또 다른 난관이 눈앞에 놓였다. 까마득한 계단이었다. 아까 내려올 땐 후다닥 내려와서 몰랐었다. 어렵사리 고개를 젖혀서 보니, 계단 개수만 대략 40여개 정도는 돼 보였다. ‘천릿길로 한걸음부터’라지, 나이에 걸맞게 속담 하나를 떠올린 뒤 하나씩 올랐다. 왼발, 그 다음 계단에 오른발, 이렇게 오르려고 했지만 역시 잘 안 됐다. 지팡이와 왼발을 올리고, 같은 계단에 오른발을 올리고. 걸음마를 처음 배우듯 그렇게 한 걸음씩 무거운 몸을 위로 옮겼다. 계단 위 낙엽 소리가 발걸음에 맞춰 바스락거렸다. 겨우 올라왔을 땐 ‘헉헉’ 하는 숨이 턱까지 찰만큼 가빴다. 등산하는 맘으로 계단을 올라야 하다니.

걷고 계단을 오른 것까지 거리가 한 200여미터(m) 정도 됐을까. 이제 막 여정에 나설 참인데 벌써 힘이 들었다. 숨을 좀 고를 겸, 인근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앉는 것도 두 손을 짚고,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그리고 지팡이를 잠시 기대어 뒀다. 계단서 지팡이에 하도 힘준 탓인지, 오른 손바닥이 벌겋게 눌려 있었다. 왼손으로 지그시 지압을 해준 뒤,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쳤다. 초록 잎이 올라오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며, 시끌벅적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직원 모습이며, 그런 별 것 아닌 풍경을 보며 쉬었다. 당연한 것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정신없이 분주했던 세상은 더디게 흘러가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냈다.



난생 처음 '자리 양보'를 받아봤다




마을버스를 타고 창밖을 구경하는 기자. 자리가 없을까봐 조마조마했다. 버스 기사는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 배려를 보여줬다. 가방 줄 한쪽을 걸쳐주는 멋을 부려봤다./사진=남형도 기자
마을버스를 타고 창밖을 구경하는 기자. 자리가 없을까봐 조마조마했다. 버스 기사는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 배려를 보여줬다. 가방 줄 한쪽을 걸쳐주는 멋을 부려봤다./사진=남형도 기자

‘끙’ 하고 힘을 줘서 일어났다. 다시 발걸음을 옮길 참이었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기웃거렸다. 노년하면 으레 떠오르는 종로 3가로 향하기로 했다. 어쩐지 그 곳에 가면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했다.

마을버스를 타고, 공덕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탈 참이었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오가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몇몇은 내 모습이 진정 노인이라 여겼는지, 좁은 길목서 어깨를 돌려 배려해줬다. 그러자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마을버스가 도착해 앞문으로 탑승했다. 높다란 계단 세 개를, 거북이처럼 조심조심 올랐다. 그리고 카드를 찍었다. “어서오세요”하고 굵직한 목소리의 버스 기사가 인사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인상이 좋은 이였다. 버스가 갑자기 출발할까 두려운 맘을 들킨 걸까. 기사는 앞쪽 좌석에 앉을 때까지 정차한 채 기다려줬다. 따스한 배려였다. 앉고 보니 노약자 배려석이었다. 왜 이 좌석들이 버스 앞쪽에 있는지, 새삼 알았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갔다. 5호선을 타고 종로 3가역까지 가기로.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조심스레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보다 조금 더 무서웠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10대 땐 서너 계단씩, 20대 땐 두 계단씩, 그리고 30대 땐 한 계단씩 빠르게 내려갔었다. 느릿느릿 몸을 옮기는 나를, 재빨리 앞서 나가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그런 기억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80세가 되니 이렇듯 계단을 하나씩 세면서 내려올 수 있게 됐다. ‘아, 여긴 계단이 60개쯤 되는구나.’ 그런 건 사실 살면서 중요하지도, 크게 관심도 없던 일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개찰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카드를 찍고 들어왔다.

'띠디리리리리리리리링'. 승강장으로 향하는 계단 중턱까지 왔을 무렵,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부리나케 뛰어 충분히 탈 수 있는 거리. 마음은 이미 후다닥 달려가고 있는 터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다. 그런데 어쩐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소 오가며 한 번쯤은 봤지만, 그리 눈 여겨 살펴보지 않았던. 어쩐지 남의 일 같고 먼 미래인 걸로 생각해 무관심했던, 바로 그 걸음이었다.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쯤 지하철 출입문이 열렸다. 부지런히 몸을 옮겼지만 눈앞에서 놓쳤다. 가쁜 숨을 고르다 승강장 안전문에 비친 노인의 모습을 봤다. 낯익으면서도 아직 낯선 모습이었다.

다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습관처럼 일반 좌석으로 갔더니, 앉아 있던 20대 청년 한 명이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자리 양보를 받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지하철이 출발하면서 '덜컹' 거리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별 수 없이 일단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 보고, 비어 있는 노약자석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뒤, 맞은편서 졸고 있는 노인을 봤다. 그리고 일반석에 앉아 있는 승객들을 봤다. 늘 저편에서 노약자석을 봤었는데, 반대로 바라보니 기분이 달랐다. 어쩐지 같이 있어도 단절돼 있는 느낌이었다. 지하철 문 옆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머리를 리듬에 맡긴 채 살짝살짝 흔드는 젊은 대학생을 보며. 덜컹덜컹 흔들리는 대로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종로3가, 비슷한 걸음걸이가 많아 맘이 편해졌다




탑골공원에서 팔각정을 배경으로. 이곳엔 나이든 이들이 많아 적잖이 위로가 됐다. 비슷하게 걷고,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래서 별 일이 없어도, 여기에 오는가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탑골공원에서 팔각정을 배경으로. 이곳엔 나이든 이들이 많아 적잖이 위로가 됐다. 비슷하게 걷고,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래서 별 일이 없어도, 여기에 오는가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낮 1시쯤 됐을까. 종로 3가역에 도착해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출구를 향했다. 그 곳에 앉아, 오후 햇볕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며 조금 쉴 참이었다.

그런데 나가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탑골공원으로 향하는 5번 출구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노인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설마' 싶었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됐다. 눈앞엔 까마득한(이젠 그렇게 보이는) 계단 산(山)이 펼쳐져 있었다. 별 수 없이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하나씩 또 하나씩 묵묵히 올랐다. 그나마 위로가 됐던 건 비슷한 걸음으로 오르는 동년배들이었다. 왼쪽 계단에선 모자와 안경을 쓴, 백발 할아버지 한 분이 손잡이를 잡고 ‘끙끙’ 소리를 내며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를 잠시 바라봤다가, ‘같이 힘내요, 어르신’ 하고 속으로 응원했다. 중간에 잠시 숨을 골랐다가, 다시 위를 보고 힘을 냈다가를 반복했다.

바깥에 나오니 모습이 비슷한 이들이 많이 보였다. ‘성큼성큼’이 아니라 ‘느릿느릿’, 걸음걸이도 어쩐지 친근했다. 뒤에서 앞으로 휙휙, 바삐, 분주하게 앞서가던 발걸음에 계속해서 치인 탓일까. 괜히 눈치를 보며 다녔던 탓일까. 그들을 보며 어쩐지 맘이 좀 놓였다. 왜 이 곳을 많이 찾는지 금세 알 것도 같았다. 종로 낙원상가 주변은 노인들로 활기를 띠었다. 이곳엔 ‘어르신들의 홍대’라 불리는 거리도 있다고 했다. 국민 MC 송해의 이름을 딴 ‘송해길’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곳에 잠시 멈춰서니,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옛날 교복 모자를 비뚤게 쓴 이가 개다리 춤을 췄다. 옆에 서 있는 이는 요강 같은 걸 들고 같이 흥겹게 춤을 췄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이보다 더 좋았던 건, 이를 물끄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어르신들 표정이었다. 아마 나중에 정말로 이만치 나이가 들었을 때, 우연히 거리에서, 중학교 때 좋아하던 핑클이나 S.E.S 공연을 보면 이런 느낌일지(연식 드러남). 관절이 맘처럼 안 움직여도, 그 기분 그대로 조용히 따라 부르지 않을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렜고, 눈부신 추억으로 남는 시절은 있을 테니까. 노인들에게도 그럴 거란 걸, 새삼 생각해 봤다.

탑골공원에 도착하니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르신들이 곳곳에 모여 앉아 수다의 장(場)을 펼치고 있었다. 또 몇몇은 지팡이를 놓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입구에서 ‘이 곳은 1890년대에 생긴, 서울 최초 근대식 공원’이란 설명도 봤다. 그러면 나이가 거의 130살쯤이란 이야기. 고령이 되면 여길 찾는 이유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앞이 좋아, 의자를 놔두고 커다란 돌 위에 걸터앉았다. 좋은 걸 보면 좋은 건 다들 같은 맘이라, 지나가던 몇몇 어르신들은 사진을 찍었다. 나도 벚꽃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활짝 핀 벚꽃과 대비되게 늙어버린 모습을 보니 어쩐지 감개무량했다.



'쉴 곳' 없는 홍대 거리는 외로웠다




익숙했던 홍대 거리는 오래 머물러 있기엔, 꽤나 외로웠다. 잠시 머물러 쉴 곳도 마땅찮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몰랐다. 사진은 누가 찍어준 것 같지만, 쓰레기통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찍었다. 혼자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고난이도 셀카
익숙했던 홍대 거리는 오래 머물러 있기엔, 꽤나 외로웠다. 잠시 머물러 쉴 곳도 마땅찮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몰랐다. 사진은 누가 찍어준 것 같지만, 쓰레기통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찍었다. 혼자였다./사진=남형도 기자 고난이도 셀카

점심으로 햄버거를 간단히 먹고 거리로 나왔다. 오후 3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기진맥진했다. 집에 가서 전기 매트를 켜고 드러눕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할 지도 잘 몰랐다.

어쩐지 활기찬 곳이 그리워졌다. 횡단보도가 사방에 놓인 사거리에서 이정표를 잃은 이방인처럼 두리번거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홍대를 거쳐 연남동에 가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종종 찾는, 좋아하는 카페에 갈 참이었다. 어찌 보면, 또 좋게 생각하면 모처럼 한가한 오후가 됐으니.

다시 지하철을 타러 종로3가역으로 내려갔다. 지나가는데 모자를 파는 상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래도 홍대에 가는데, 멋 좀 부릴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체크무늬의, 감색 중절모가 그래도 그 중 마음에 들었다. 가격은 8000원. 나도 모르게 충동구매를 했다. 모자를 들고 계산대에 갔더니 50대 정도 돼 보이는 사장님이 “아이고 어르신, 모자 쓰고 가시지 왜요”라고 말을 건넸다. 뭐라 대답할 말도 없고 민망해 “끄응, 에헴” 등의 의미 없는 헛기침을 하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익숙한 홍대입구 9번 출구를 거쳐 거리로 나갔다. 계단 60개를 세면서 오른 뒤, 바깥으로 나왔다. 늘 그랬듯 젊은이들이 넘쳤다. 새 학기가 시작돼서인지, 봄철을 만끽하기 위해서인지, 멋을 한껏 낸 대학생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활기가 좋으면서도, 거리에 어울리지 않아서일까. 어쩐지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팔순 노인은, 아마 나뿐이었으리라. 특히 지팡이를 짚고 느릿느릿 걷고 있는 이는. 자주 찾던 이곳이, 어쩐지 몸에 잘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벗어나고 싶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했다.

잘 몰랐던 건데, 홍대에 많이 없는 게 하나 있었다. 거리의 ‘쉴 곳’ 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한 발 한 발 다니는 터라, 걷는 것만으로 체력이 부쳤다. 중간 중간 보이는 곳에 앉아 쉬어야 했다. 그런데 홍대에 도착하니 유독 앉을 곳이 없었다. 한 15분 정도밖에 안 다녔는데도, 금세 허리가 뻐근하고 다리가 욱신거렸다. 천신만고 끝에 벤치를 하나 찾았는데, 이미 관광객들이 앉아 있었다. 포기하고 제자리에 서서 잠시 쉬는데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왔다. 버스킹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폴 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을 부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라 잠시 빠져 들었다. 그렇게 잠시 쉬었다.

연남동 카페는 결과적으론 가지 못했다. 문 앞까지 갔지만,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두 팀 정도였다. 창 밖에서 서성거리다, 안쪽을 잠시 들여다봤다. ‘오래 기다릴 거 같네, 힘들겠네, 그냥 가자’며 돌아섰다. 사실은 핑계였다. 언젠가 여름, 파리를 갔을 때 번화가 노천카페에 앉아 있던 노신사를 보며 ‘나중에 나이들어서도 저렇게 늙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맘으로 연남동에 왔던 거였다. 하지만 이미 홍대 중심가를 걸으며, 맘속으로 주눅들어 있었다. 이곳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 같다.



80세 할아버지도 반겨준 '똘이'




80세 분장을 했는데도 용케 알아보고, 뽀뽀하겠다며 팔에 매달려 있는 똘이(5살, 말티즈). 쓰다듬어주려고 바닥에 앉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천천히, 두 손을 바닥에 짚고, 다시 천천히 앉아야 했다. 똘이는 반길 때면 늘 저렇게 사람처럼 서 있다. 관절에 안 좋다고 해도 참./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80세 분장을 했는데도 용케 알아보고, 뽀뽀하겠다며 팔에 매달려 있는 똘이(5살, 말티즈). 쓰다듬어주려고 바닥에 앉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천천히, 두 손을 바닥에 짚고, 다시 천천히 앉아야 했다. 똘이는 반길 때면 늘 저렇게 사람처럼 서 있다. 관절에 안 좋다고 해도 참./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오후 6시쯤, 해질녘 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돌아왔다. 밝은 대낮보다 어스름한 저녁이 어쩐지 편했다. 나이 듦을 어둠에 묻고 싶어서였을까. 노을을 바라보는데 자꾸만 눈이 감겼다. 몸과 맘이 같이 지쳤는지, 좀 쉬고 싶었다. 적당히 덜컹거리는 버스와, 이름 모를 이들의 말소리와, 정류장 안내 멘트를 자장가 삼아 꾸벅꾸벅 졸았다. 다디단 쪽잠이었다.

똘이(말티즈, 5살)를 보러 처가에 들르기로 했다. 동네에 들어서니 익숙한 길도 역시 달랐다. 하루 내내 느낀 터라 그러려니 했다. 도착하니 내 모습을 본 아내가 화들짝 놀랐다가, 놀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할아버지. 어쩌다 얼굴이 이리 되셨어요” 하면서. 이게 내 미래 모습이라 하니 “에이, 할아버지가 무슨 피부가 이리 좋으냐. 꽃 할아버지냐”며 계속 웃게 해줬다. 저녁을 차려주시던 장모님도 “어르신, 진지 잡수세요”하면서 농담을 던졌다. 조금은 길었고 조금은 가라앉았던 하루가 웃음으로 풀렸다. 그러면서도 “집에 왔으니 체험 좀 그만하면 안 되냐”며 걱정했다. 다음 날 몸살 나는 것 아니냐며. 그래도 자기 전까진 더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고 했다.

가장 궁금했던 건 똘이 반응이었다. 이 녀석이 대체 날 알아볼까 싶었는데, 다행히 현관에서부터 털발(털이 보송보송한 발)로 부리나케 마중 나왔다. 더러워진 지팡이를 현관에 놓고 엉거주춤 걸으니, 계속 쫓아오면서 다리에 매달리려 했다. 감동적이었다. 짐짓 노인 목소릴 내며 “똘이야, 형아가 이렇게 늙어버렸다. 이제 너랑 못 놀아 준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에 매달리고 핥아주고 난리였다. 딸랑이를 앞에 물어다 놓으며 계속 던져 달라 했다. 예전처럼 던져주려 했지만, 팔이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아 평소 절반 정도 밖에 못 던졌다. 그래도 똘이는 계속해서 반겼고, 같이 놀아달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러니 맘이 놓이고 따스했다.
설거지는 원래 빠르게 잘하는 전문성 있는 분야인데, 동작 하나하나가 맘처럼 안돼서 평소보다 2배는 오래 걸린 것 같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설거지는 원래 빠르게 잘하는 전문성 있는 분야인데, 동작 하나하나가 맘처럼 안돼서 평소보다 2배는 오래 걸린 것 같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집에 돌아와선 미뤄둔 설거지를 했다. 아내가 “내가 할 테니 놔두라”고 한사코 말렸지만, 그걸 다시 말린 뒤 접시며 그릇을 하나씩 씻었다. 손목에 찬 모래 주머니 때문에 움직임이 무거워 속도가 더뎠다. 평소 ‘설거지 달인’이라 자부하며, 식기세척기보다 더 정교하게 할 수 있다고 큰소릴 떵떵 쳤었는데. 재활용 분리배출일이라 모아뒀던 쓰레기도 버렸다. 큰 박스가 여럿에 종이,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까지 같이 들었다. 그 상태로 지팡이까지 짚으려다 몸이 기우뚱해 박스가 우르르 무너졌다. 이번엔 지팡이를 아예 들고 상자며 쓰레기를 다시 들었다. 아내는 옆에서 계속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체험 그만해!”



주름과 흰 머리는 씻어냈지만…




고요한 밤은, 산책을 하기에 좋았다. 중간 중간 앉았다가, 아내와 발맞춰 걸었다가. 그렇게 하루 내내 지쳐 무거워진 몸을 쉬게 해줬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고요한 밤은, 산책을 하기에 좋았다. 중간 중간 앉았다가, 아내와 발맞춰 걸었다가. 그렇게 하루 내내 지쳐 무거워진 몸을 쉬게 해줬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깜깜해진 뒤 밤 산책을 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린 탓인지, 선선한 밤공기가 좋았다. 평소보단 조금 느렸지만, 옆에서 걷는 이는 천천히 발 맞춰줬다. 가로등 불빛이 목련 나무를 비추고 있었다. “봄이긴 봄이네, 꽃봉오리가 생겼다. 이제 조만간 피겠다”, “그러네, 동네가 예뻐지겠네”, “작년엔 벚꽃 필 때 좀 춥지 않았나?”, “그랬던 것 같아”. 계절에 썩 어울리는 말들이 오갔다.

아내에게 80세가 된 남편 모습을 본 소감이 어땠냐고 물었다. “사실, 실감이 잘 안 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으로 봤을 땐 진짜 노인 같아서 서글펐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분장한 티가 좀 나긴 했다고. 그저, 체험이 힘들 것 같아서 걱정스런 맘이 더 컸단다. “그래도 나중에 나이 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그런 생각은 하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쯤 집에 돌아왔다. 누구나 다 같이 늙는 것 아니겠냐며, 대꾸한 뒤 속으로 ‘그냥 오래도록, 옆에 건강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었다.

자정이 될 무렵, 세면대 앞에 섰다. 큰 거울로 얼굴을 구석구석 살펴봤다. 아침에 했던 분장이 피부에 스며든 건지, 땀 때문에 지워진 건지, 희미해져 있었다. 그래도 피곤함이 더해져서 인지, 얼굴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43년 뒤엔 다시 볼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적당히 따뜻한 물을 틀어, 얼굴을 씻어냈다. 머리도 박박 감았다. 개운하게 세월을 씻어냈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니 깊게 패인 주름들이 사라졌다. 누랬던 얼굴도 원래 색을 되찾았고, 하얗게 센 머리도 까맣게 됐다. 37살로 돌아와 있었다. 나중엔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오리라 생각하면서.

노인 체험 장비도 풀었다. 80세의 몸이 원래 것이었던 것처럼, 잠깐 동안 어색했다. 불과 하루 경험했을 뿐인데도. 홀가분한 맘에 달밤에 체조를 하러 나갔다. 팔과 다리를 붕붕 돌리고, 허리를 쭉 펴고, 아무렇게나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 했다. 제자리서 뜀뛰기도 하고, 편히 걷다가 뛰기도 하고, 원투원투(복싱 동작)를 하기도 했다. 평생 당연하다 여겼던, 별 것 아닌 움직임들을 하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젊음을 만끽하다가, 집에 돌아갈 때쯤엔 다시 찾아올 늙음에 대한 생각도 했다.



'노인 체험'이 아닌, 언젠가 맞게될 미래




동네 가로등 아래, 왠지 쓸쓸한 뒷모습. 그림자가 기자보다 더 커보인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동네 가로등 아래, 왠지 쓸쓸한 뒷모습. 그림자가 기자보다 더 커보인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그렇게 37살로 돌아온 나는 1분 만에 잠에 빠져 들었고, 다음 날은 몸살이 난 듯 욱신거렸다. 그 다음 날은 좀 회복됐지만 아무 생각을 하기 싫었고, 그 다음 날엔 체험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하려 해도 정리가 잘 안 됐다. 한 4일 정도를 하릴 없이 그리 보냈다. 보통 체험이 끝나면 어떻게 써야겠단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유독 그게 잘 안 됐다. 5일째가 된 뒤에야 이 체험이 남긴 것들이 뭔지, 조금씩 쓸 수 있게 됐다.

아마 좀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노인 체험 장비를 벗은 뒤 팔이며 다리에 붉게 물든 상처들을 보고 알았다. 하루 내내 싸운 흔적들이었다.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 팔과 다리를 애써 움직이려고, 굽은 허리를 곧게 피려고, 몸은 80세라는데 마음은 여전히 37살이라 여기면서. 그렇게 세월을 거스르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노인 체험이라면서, 막상 노인이 되니 생전 처음 겪는 경험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젠가 나이 들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요했던 물에 돌멩이가 빠지면 파장이 일듯 별 것 아닌 일상들이 일렁거렸다. 43년의 세월이 주는 무게감은 그렇게 컸다. 이게 체험이 아니라, 언젠가 맞을 미래란 걸 알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뭔지 알 수 없게 나왔지만, 기자의 팔이다. 맘처럼 안 되는 몸을, 맘처럼 쓰려다 보니 몸에 상처가 이렇게 났다./사진=남형도 기자
뭔지 알 수 없게 나왔지만, 기자의 팔이다. 맘처럼 안 되는 몸을, 맘처럼 쓰려다 보니 몸에 상처가 이렇게 났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마음이 잠잠해질 때쯤 흐르는 시간에 대한 생각을 했다. 단지 오후 1시였다가 2시가 되거나, 월요일이었다가 주말이 되는 게 아닌 인생 전체의 시간에 대해. 누구에게나 당연한 듯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맘을 쓰느냐에 따라 거기에 새기는 삶은 다르니까. 내게 매일 주어진 이 시간들을 더 귀하게 쓰고 싶어졌다. 시인 사무엘 울만이 “청춘(靑春)이란 인생의 한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 했다. 그 말이 응당 맞다. 그럼에도 ‘젊음’이라 부르는 시기는 분명 있다. 그건 마흔을 바라보는 나도 이미 경험한 얘기기도 했다. 20대 때는 밤새 술 먹어도 다음 날 멀쩡했지만, 지금은 벌써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으니.

노년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왜 그렇게 걷는 지, 동네 벤치에 그리 앉아 쉬는 이들이 많은 지, 왜 하루가 더디게 간다고 하는 지,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는지, “난 젊어 봤지, 혹시 여러분은 늙어 봤느냐”고 말하는 지. 대중교통서 함부로 밀치고, 새치기하고, 그런 일부 예의 없는 이들까지 감싸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문제이지, 노인의 문제는 아니라 말하고 싶다. 내가 만난 어떤 노인은 임산부석에 앉으려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긴 임산부석이야 여보, 앉으면 안돼요.” 그리고 또 다른 노신사는 버스서 시끄럽게 싸우는 젊은 커플에게 점잖게 일렀다. “공공 장소니까 조용히 좀 합시다.” 다들 침묵하고 있을 때 한 말이었다.

그리고 노년의 희망이랄까. 그런 것들도 함께 봤다. 그저 힘들고, 쓸쓸하고, 처량했던 게 아녔다. 탑골공원서 자녀 자랑을 하며 껄껄 웃는 이들도 봤고, 서로를 부축하며 걷는 노부부도 만났다. 지팡이를 짚고 다닌 덕분에 길섶에 핀 들꽃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노인 혐오’로만 도배하던 기사와는 달리 배려해주는 이들도 많이 만났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도 웃는 건 얼마든 할 수 있었고, 마음 역시 오롯이 내 것이어서 늙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가까이서 함께 늙어갈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도 큰 위안이 됐다. 서로 주어진 시간이 다르니, 그만큼 더 아껴야겠지만.
서른 일곱살, 나에게 쓰는 편지./사진=남형도 기자
서른 일곱살, 나에게 쓰는 편지./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80세 남형도가 37세 남형도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 홍대에 갔었다.
잘 알지? 젊은이들이 넘실대는.
봄 벚꽃은 막 피기 시작했더라.
보기만 해도 설레는지
사진 찍는 소리가 곳곳에 울렸어.

벚꽃은 항상 올려다 봤었는데,
오늘은 지팡이를 짚고 다녀서였을까.
땅에 떨어진 꽃잎이 보이더라고.
나도 모르게, 그걸 사진 찍었어.
백발로 홍대에 서 있는 내 모습 같더라고.
80세 노인의 하루를 살아봤다[남기자의 체헐리즘]

꽃이 피면 지게 돼 있고,
지어야 또 활짝 피우는 거겠지.
그게 자연의 섭리잖아.
어쩌면 오래 잊고 있었던 것 뿐이지.
영영 꽃으로만 남아 있을 것처럼.

벚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참 짧지.
돌아보니 그런 기분이었어.
그냥 오늘을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
모처럼 귀한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것 밖에 해줄 말이 없네.

앞으로 잘 부탁해.
내게 좋은 기억 많이 남을 수 있도록.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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