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꿀잠' 걱정하다 불면증에 걸린 그녀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홍은영 수석 연구원/사진=CJ제일제당

"한국과 일본, 중국 사람들이 '꿀잠'에 대한 욕구가 큽니다. 실제 숙면시장도 서구권보다는 아시아가 더 빨리 커지고 있습니다."

4일 서울시 중구 쌍림동 CJ제일제당센터에서 만난 홍은영 박사(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수석 연구원)는 '꿀잠'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습관, 신체리듬 불균형 등 다양한 원인으로 꿀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숙면, 꿀잠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홍 박사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건강 기능성 소재 연구를 하던 중 인연이 닿아 2010년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에 입사했다. 그에게 처음 주어진 프로젝트가 바로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꿀잠을 도와주는 숙면식품이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소재를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진 그날부터 홍 박사에게는 불면의 밤이 시작됐다.

"이건 너무 생소하고 저건 상품화가 힘들고…" 숙면 원료를 떠올리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첫 프로젝트인데 '이거다'하고 와 닿는 아이디어는 없고, 부담이 컸죠."

그러던 중 나이트밀크를 만났다. 나이트밀크는 말 그대로, 밤에 짜낸 우유다. 백야현상으로 수면장애를 겪을 때 북유럽 사람들이 잠들기 전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과 밤의 신체 주기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 멜라토닌 성분이 일반 우유보다 나이트밀크에 더 많더라고요. 송아지가 밤에 잠을 더 잘 자라는 어미 젖소의 배려가 아닐까요?"


홍 박사는 가벼운 불면증상을 겪는 사람 중 상당수가 의존성 때문에 수면제를 꺼린다는 점도 떠올렸다. 첨가물 없이 100% 나이트밀크를 활용하자는 판단이 섰다. 건강한 잠을 위해서는 원재료가 건강해야 하고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숙면식품이라는 생소한 상품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소재 실마리는 찾았지만 제품화 문제에 봉착했다. 국내는 물론 일본, 독일 등 해외에서도 마음에 드는 생산업체를 찾을 수 없었다. 또다시 시작된 불면의 밤, 홍 박사는 "'정신건강을 위한 잠'에 초점을 맞춰 연구했는데 정작 자신은 불면증이 생길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홍 박사의 불면증을 해결해준 곳은 청정 낙농국가인 뉴질랜드였다. 원하는 수준의 나이트밀크 착유 능력을 갖춘 곳이 있다는 소식에 홍 박사는 뉴질랜드로 갔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결과는 만족 그 자체.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젖소는 분명 행복할 것이고 행복한 젖소에서 짠 우유를 원료로 만든 제품이라면 소비자들도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홍 박사의 불면 고민이 소비자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일까? 나이트밀크는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슬리피즈는 1월 출시 이후 한 달 반 만에 2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판매채널이 온라인과 CJ그룹의 뷰티앤헬스 스토어 올리브영으로 한정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A+'를 주고도 남을 만한 성적표다.

홍 박사는 새로운 숙면 원료를 찾기 위한 2차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전통 소재를 활용한 숙면 기능성 식품을 개발, 해외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슬리피즈를 구매하는 고객은 20대 여대생부터 40~50대 직장인, 70대 할아버지까지 전 연령대를 망라합니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