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비도 무료, 억울한 분쟁 공짜로 해결해 드립니다"

배진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서울에서 대형할인점(Super SuperMarket, SSM)에 상품을 납품하는 K씨는 올해 초 한 SSM으로부터 설날 이벤트를 요청받았다. 시식대를 설치하고 특별 판매를 해달라는 것. K씨는 판촉 사원들을 고용하고 시식대도 설치했다. 설 명절 전후로 영업이 잘 됐고, 매출도 많이 올랐다. 하지만 K씨는 예상보다 적은 판촉비를 받았다. K씨는 영업사원 인건비 등을 포함해 2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고, 이 SSM은 1000만원밖에 줄 수 없다고 버텼다.

K씨와 SSM 대표는 한달 간 다투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을 찾았다. 조정원은 이 업체가 대형마트가 아닌 탓에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공정거래법을 적용했다. 돈을 제대로 안 준 SSM의 잘못도 있었지만, 행사 전에 명확한 거래조건을 확인하지 않은 납품업체에도 일정 책임을 물었다. 조정원은 두 차례 조정을 거쳐 K씨와 SSM이 1600만원에 합의토록 했다.


공정거래조정원은 이 사건을 비롯해 올 상반기 971건의 분쟁조정 사건을 해결했다. 분쟁조정이란 복잡한 소송을 통하지 않고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도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기관인 공정거래조정원은 무료로 이 업무를 하고 있다.

배진철(56, 사진) 공정거래조정원장은 “조정원에선 법을 적용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고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며 “2~3개월 정도의 짧은 기간에 조정이 이뤄지고, 민사상 화해의 효력까지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해 조정원에 접수되는 분쟁 사건은 2500건 정도. 조정 성립률은 90%를 넘는다. 올 상반기엔 1157건을 접수, 971건(490억원)을 처리하는 등 조정 성립률 91%를 기록했다.

조정원 전체 인력 73명 중 30명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공정거래법 적용이 안 돼 조정원에서 다루기 힘든 사건은 원내 변호사들이 상담을 통해 친절하게 다른 기관으로 안내한다.


조정원에 접수되는 사건 중 절반 가량은 하도급대금 미지급 문제다. 올 상반기에도 565건이 하도급 분야였다. 지난해(497건)보다 13% 늘었다. 배 원장은 “하도급 문제는 힘없는 하청업자들이 피해를 보는 대표적인 불공정 사건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중소기업과 서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진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조정원은 올해부터 프랜차이즈(가맹사업) 비교정보 업무를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치킨, 커피, 편의점 등 각 업종의 브랜드별 매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무턱대고 창업시장에 뛰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올해 초 치킨업종을 발표했고 최근 커피전문점을 공개했다. 올해 말엔 편의점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공정위 출신(행시 31회)인 배 원장은 프랜차이즈 업종을 담당한 기업거래정책국장 시절부터 이 업무를 구상했다. 배 원장은 "자영업자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맹사업 창업에 도전해 1~2년만에 폐업하는 것을 많이 봤다"며 "매년 프랜차이즈 업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설립 10년째를 맞는 조정원은 앞으로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 CP) 확산에 주력할 계획이다. CP란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기업 스스로 준수하도록 만든 준법 시스템이다. 기업 임직원들이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익혀 법규 위반을 사전에 예방토록 한다. 배 원장은 "CP를 도입하면 법 위반으로 이미지 실추와 과징금 등 경제적 부담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