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스타트업 대표가 말하는 '돈 보다 중요한 것'

김주윤 닷 대표(사진왼쪽)와 닷 마케팅 어시스턴트로 근무 중인 박인범 사원/사진=권다희 기자

"전세계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10년 안에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장애인용 기기를 만드는 주식회사 '닷'의 김주윤 대표(27세·사진 왼쪽)의 말이다. 닷은 2014년 8월에 김 대표를 포함한 5명의 동업자가 200만원짜리 월세방을 구해 시작한 회사다. 닷은 창업 2년만에 사우디텔레콤, 일본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에서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는 '러브콜'을 받을 정도의 유망 스타트업으로 자리잡았다. 직원수도 24명으로 늘었고 최근 양산을 시작한 닷의 첫번째 제품 닷워치는 선주문만 14만대가 들어왔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사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창업을 꿈꿨다.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대학에 다닐 때는 창업 수업만 골라들었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세번의 창업을 시도했다. 두 번의 실패 끝에 세번째로 트럭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트럭을 연결시켜주는 사업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곧 회의가 찾아왔다. 돈은 잘 벌었지만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러려고 창업한게 아닌데'란 생각을 하던 중 어머니마저 앓아 눕자 사업을 접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 때 '다 내려놓고' 시작한 자원봉사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만났다. 시각장애인들이 생활하며 느끼는 불편함을 알게 되면서 이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제품을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김 대표는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한국에 돌아와 창업 밑그림을 다시 그렸다.

창업을 위한 시장 조사차 시각장애인연합회 등과 접촉했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암울했다. 시각장애인용 포터블 점자 기기를 신청했지만 복잡한 절차와 한정된 공급, 비싼 가격 탓에 7년간 얻지 못한 시각장애인, 한대에 500만원을 호가하는 기기 마련을 학비보다 더 걱정하는 시각장애 대학생을 만나면서 김 대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세계 2억8500만명의 시각장애인 중 점자 기기를 소유한 시각장애인은 2~3%에 불과했다. 또8000만명은 서서히 시각을 잃어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는데 어떤 도움도 얻을 수 없었다.


김 대표가 시도한 네번째 스타트업인 닷의 첫 제품 닷워치는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구체화됐다. 닷워치는 시각장애인들이 지금 몇 시인지 인지할 수 있고 점자로 문자도 알 수 있는 기기다. 가격도 29만원으로 일반적으로 큰 무리 없이 구입 가능한 수준이다. 내년 말 생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닷패드는 수학 연산 등 더 정교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이 제품들을 "시각장애인의 목발"이라고 표현한다.

닷의 영역은 공공부문까지 확대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리야드에 첫 지하철을 건설하고 있는데 닷의 공공점자 기술에 관심이 많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한 논의를 위해 다음달 사우디를 방문한다. 그는 "닷이 어떤 기록을 만드느냐, 닷의 기기들이 얼마나 상용화되고 공공점자가 얼마나 많이 도입되느냐에 따라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내일 죽어도 오늘 해야 할 일인가'를 자문해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이 질문에 이제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