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전도사'로 인생 2막 연 홍석우 전 지경부 장관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왼쪽)이 노해현 명창(가운데)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사진=정진우 기자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전통공연장.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리꾼과 고수가 뽑아내는 심청가에 '정장 차림'의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도 소리를 보탰다. 한 무대에 나란히 선 한복과 정장만 보면 이질적인 풍경이지만 세 사람의 공연은 제법 조화로웠다.

24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도 흥이 났는지 '얼씨구, 좋다, 잘한다'로 연신 추임새를 넣었다. 홍 전 장관이 판소리 대중화를 위해 나선 토크 콘서트가 절정에 이른 모습이다.


홍 전 장관은 산업 분야에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이명박정부 지경부(산업통상자원부 전신) 장관까지 공직생활만 30년이 넘는다. 이런 그에게 판소리 전도사는 '홍석우 인생 2막'의 큰 축이다. 장관시절 부하 직원들에게 매주 e-메일을 보내는 등 남달랐던 소통능력이 공연장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홍 전 장관이 '우리 소리'에 관심 갖게 된 동기는 '미안해서'였다. 그는 모차르트, 베르디, 바그너 등 서양 작곡가가 쓴 오페라에 심취해있던 '서양음악 마니아'였다. 그러다 문득 서양음악에만 몰두한 자신을 발견하고 판소리 공연장을 찾았다. 산업부 과장으로 일하던 2001년 4월의 일이다.

홍 전 장관은 토요일 오전 업무를 마치고 후배 공무원 10명과 남산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고(故) 성우향 명창의 심청가 완창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홍 전 장관은 당시를 떠올리며 "공연 2시간을 집중해서 봤는데 아직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지 않아 놀랐다"며 "4시간30분 동안 울려퍼진 심청가 공연 뒤부터 판소리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왼쪽 첫 번째)이 노해현 명창(왼쪽에서 두 번째), 강권순 가객(왼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사진=정진우 기자

홍 전 장관은 2010년 3월 중소기업청장에 퇴임하면서 판소리에 본격적으로 심취했다. 2년간의 중기청장 임기를 마친날 공교롭게 안숙선 명창과 저녁 약속이 잡혀있었다. 식사 도중 안 명창의 즉흥 공연을 본 홍 전 장관은 이날 이후 판소리와 관련된 책과 음반을 닥치는데로 사서 읽고 모았다.

판소리 전도사가 되면서 강연 요청도 들어왔다. 입소문 탄 그의 강연은 벌써 열 번이 넘었다. "한 곡 해달라"는 요청에 판소리도 배웠다. 장관으로 다시 공직에 기용된 2011년 산업정책 홍보 차 출연한 아침방송에선 2개월 배운 판소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심청이는 아직 인당수에 도착하지 않았다'를 제목으로 한 이날 토크 콘서트는 홍 전 장관 강연과 공연으로 채워졌다. 그는 18세기 무렵부터 유래된 판소리의 역사를 맛깔나게 설명했다. 강연 중간중간마다 판소리와 가곡 공연이 해설을 도왔다. 노해현 명창과 강권순 가객이 내는 깊은 소리에 홍 전 장관도 참여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홍 전 장관은 "이번 공연 제목은 제가 처음 판소리를 접하고 놀랐던 느낌을 담고 있다"며 "당시 에피소드 뿐 아니라 판소리와 국악 사랑이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갈 길이 남아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우리 소리와 나라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