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 10년차, '삼성맨' 러시아 싱글남 "제 꿈은…"

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만난 아파나시예프 비탈리 선임/사진제공=삼성엔지니어링

"많이 춥죠?"

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만난 아파나시예프 비탈리 선임(사진·33)의 유창한 한국말에 웃음이 절로 났다. 비탈리 선임은 올해로 한국에서 10년 차를 맞는 러시아인이다. 그는 러시아의 남부 톰스크에서 자랐다. 한국에서는 비행기와 자동차를 이용해도 꼬박 40시간이 걸린다.


톰스크 공대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그는 결연관계에 있는 울산대학교에 석사 진학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단순한 호기심과 도전이었는데 이렇게 됐네요." 말할 때마다 싱글 싱글 웃는 모습이 강한 이미지의 러시아 남자에 대한 선입견을 잊게 했다.

석사과정에서도 환경공학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서울에 취업 박람회를 찾았다가 직장을 갖게 됐다. 울산대에서도 영어만 사용해 한국말을 본격적으로 배운 건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뒤였다. 한국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어학당을 다니면서 한국말을 익혔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학원을 다닌다.

서울 강동구 강일동 삼성엔지니어링 본사 앞에서 아파나시예프 비탈리 선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엔지니어링

삼성엔지니어링과는 2011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독립국가연합(CIS)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을 무렵이다. 그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마케팅을 담당한다. 수주를 따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프로젝트 기획, 자료 조사, 인적 네트워크 활용, 발주처에 제안 등을 두루 맡는다. 언어 문제는 물론 비즈니스 매너까지 통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할 때 한국은 반응이 정말 빠르죠. '빨리 빨리'가 몸에 베어 있어요. CIS국가들은 그렇지 않아요. 뭐든 천천히 합니다. 이때 재촉하면 안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잘 못 견디더라고요."

CIS지역은 국내 업체들에게는 아직 블루오션이다. 원유 등 천연 자원이 워낙 풍부하고 원유를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화학 제품으로 전환해 수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 플랜트 시장이 밝다.

비탈리의 꿈은 그가 나고 자란 러시아에서 플랜트 수주를 하는 일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1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첫 플랜트를 수주한 뒤 2013년에는 아제르바이잔 진출에도 성공했다.

러시아가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거긴 추워요"라며 특유의 재치로 받아쳤다. "가족과 친구가 그리움이 있을 때도 있는데요. 가족들이 한 번 씩 한국에 와요. 고향은 겨울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니까 따뜻한 한국으로 오는 거죠."

한국을 너무 사랑하게 됐다는 그는 시간만 나면 국내 여행을 다닌다. 제주도, 부산, 강원도, 여수 등 웬만한 국내 지역은 다 가봤고 한다. 순댓국과 고기가 많이 들어간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또 다른 바람은 '인연'을 만나는 일이다. "저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아서..." (웃음) "한국에서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네요. 한국 여성분도 너무 매력 있으세요."

"한국에서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근데 세상은 넓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거기가 고향 같아요. 자국에만 국한되지 말고 더 넓게 보세요. 전 세계가 무대일 수 있어요."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해 볼만한 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