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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지친 아이들, 철학으로 위로합니다"

[피플]안광복 교사, 서울 중동高서 21년째 철학 가르쳐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입력 : 2017.04.10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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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중동고 교사 /사진=최민지 기자 mj1@mt.co.kr
안광복 중동고 교사 /사진=최민지 기자 mj1@mt.co.kr

"저는 고1 때 엄마를 때렸습니다."

5년 전 서울 중동고 고3 철학 수업 시간. '내 생애 최악의 순간'을 주제로 학생들이 발표를 이어가던 중 한 아이가 힘겹게 마음 속 얘기를 꺼냈다. 아이는 '공부'란 미명 하에 묻어둔 죄책감과 눈물을 함께 쏟아냈다. 반 전체가 울기 시작했다. 한 학생은 교단으로 나가 용기 있는 고백을 한 친구의 들썩이는 어깨를 안아줬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47)가 소개한 수업의 한 토막이다. 그는 21년째 강남 한복판에서 고3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처음 교편을 잡은 건 1996년. 김영삼(YS)정부가 대입자율화를 추진하면서 고교 현장에 논술고사 붐이 일었다. 서강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와 철학수업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교사로 임용됐다. 이후 '철학, 역사를 만나다'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열일곱 살을 위한 인생론' 등 다수의 책도 썼다.

공부밖에 모를 것 같은 강남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 수업을 20년 넘게 진행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 교사는 "중간·기말고사 직전 수업만 제외하면 수능 전인 10월까지도 무조건 수업을 진행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지필고사가 있는 수업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학생들이 압박감에서 벗어나 더 재밌어 했다"고 회고했다.

그의 철학 수업은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글을 쓰는 것도, 발표하는 것도 학생 몫이다. '친구의 장점을 보게된 순간' '가상의 연애편지 쓰기' 등 주제를 제시한 다음 해당 주제와 연관된 철학적 개념에 대해 안 교사가 설명한다. 이후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쓴 글을 친구들 앞에서 읽는다. 안 교사는 "마지막 수업은 '졸업 리추얼(ritual·의식)'이라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게 한다"며 "수능을 치르기 전에는 학생들이 절실해지고 고민이 많아지는 만큼 우는 학생도 더러 나온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같은 수업을 한 적이 없어요. 같은 학년도 학급 특징에 따라 수업내용이 달라요. 요새는 '버킷리스트' 수업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적어낸 글을 보면 주로 원하는 소망은 '전교 1등'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이 없어요. 목표는 있지만 꿈은 없는 거죠. 이런 학생들에게 '입시 역시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성적과 상관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란 걸 깨닫도록 옆에 있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까지 8년간 연달아 고3 담임을 맡은 안 교사는 자신의 제자들을 '좀비' 혹은 '말기암 환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9월 모의평가가 끝난 다음 교실 광경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과 비슷하다"며 "말기암 환자처럼 모여 고개를 푹 숙이고 막연히 운동장을 걸어다니는 아이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그저 '220일 동안 수고했다'는 말만으로도 아이들은 눈물을 터뜨린다"고 말했다.

안 교사에게는 중동고 학생들 말고도 많은 제자가 있다. 그가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언론에 기고하는 글을 통해 공개된 메일 주소로 꽤 많은 수험생이 상담 요청을 보낸다. "가끔은 본인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답답하다는 메일을 보내는 친구도 있어요. 사실 이렇게 방황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흔히 '중2병' '대2병'으로 일컫는 증상들이 마치 질병처럼 치부되는 것도 안타까워요. 그는 이들에게 사서 고생도 해보라고 조언을 한다. 그는 "갈등 없는 드라마는 재미없다"며 "다만 고생을 통해 실패 경험을 기능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험생들이 슬슬 자신의 수험생활에 가속도를 붙이는 지금, 그는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을 기억하라"고 주문했다.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은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그는 "인생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기억하면 모든 순간에 심각할 이유가 없다"며 "학생들이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고 매일 즐기는 자세로 살아가길 바란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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