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같나요?' 통신사서 방송장비 만든 '문과출신' 개발자

LG전자에서 전세계적으로 2000만대 팔린 스마트폰 프로젝트를 맡으며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가장 잘 나가고 있을 때 회사를 그만뒀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였다. SK텔레콤 R&D(연구개발) 조직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위에서 하달되는 프로젝트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매진했다. 쉬운 길보다 재미있는 길을 선택했다.


신덕문 SK텔레콤 종합기술원 매니저 얘기다. 그는 최근 영상실시간중계 장비인 T라이브캐스터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대학 전공이 의외다.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전산학과에 다니던 룸메이트 영향으로 SW에 관심을 갖게돼 엔지니어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첫 직장이었던 LG전자에서도 경영 전공으로 입사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SW 프로젝트리더(PL)로 직종을 바꿨다. 전세계 시장에서 2000만대가 팔린 ‘샤인폰’이 신 매니저가 SW PL을 맡았던 스마트폰이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SW로 스마트폰 SW PL(프로젝트리더)를 맡았을 당시만 해도 모든 게 배워야 하는 일이었죠. 당시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은 SW PL은 제가 유일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2012년 SK텔레콤 기술전략 직종으로 이직했다.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나니 사내에 가장 경험이 많은 SW PL이 돼 있었고 새로운 일을 찾고 싶어졌다.” 그가 밝힌 이직의 변이다. 신 매니저는 현재 이 회사 R&D 조직인 종합기술원에서 일하면서 5G 관련 SW, 디바이스 등을 개발했다. 그가 방송장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5G 시연용 로봇의 눈을 만들면서다. 로봇의 시선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야 했는데 이를 만족하는 방송중계 장비가 시중에 없었다. ‘T라이브캐스터’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였다. 개발 착수 2년 만에 정식 출시된 T라이브캐스터는 카메라로 영상을 찍는 동시에 영상을 중계해주는 장비다. 기존 방송사 등에서 사용하는 실시간 중계 장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데다 비용도 7분의 1수준이다.

“2년 전 자투리 예산을 받아 프로젝트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상용화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초기엔 사내에 인력이나 기반이 없어서 직원 3명 규모의 협력사를 직접 발굴해 시제품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로 사내에서 관심 받는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동통신 대기업 R&D조직에서 회사의 핵심 사업 전략과 거리가 먼 장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프로젝트 대부분이 5G(5세대) 이동통신 등 탑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이뤄지거나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미래 전략적인 영역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바텀업(상향식) 방식의 프로젝트도 간혹 있지만 제품이 개발돼 상용화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기획안을 마련하고 4500만원의 예산을 받아 프로젝트에 착수한 지 반 년만인 2015년 5월 첫 시제품이 나왔다. 이후 올해 정식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방송업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신 매니저는 “방송장비 시장의 경우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시장이 제한적인데다 비싼 외산장비들이 독점하고 있는 구조였다”며 “테스트 해 본 방송업계 사람들은 만족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 지상파방송사에서 선거방송에 이 장비를 활용하기도 했다.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꿈꾸고 있는 게 있냐는 질문에 신 매니저는 “이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단계”라며 “T라이브캐스터가 다양한 영역에 쓰일 수 있도록 활용방안을 개발해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