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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국악의 힘' 알리는 '여자 윤이상'

[피플]박영희 前 브레멘 음대 교수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입력 : 2017.12.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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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파안 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인터뷰
박 파안 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인터뷰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된 오빠가 그리울 때마다 퉁소를 불었다. 9남매 중 오빠 2명이 6·25에 참전했다 소식이 끊긴 터였다. 온 나라가 전쟁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때, 6살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음악이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0살 부터는 소녀도 그의 삶을 뒤따랐다. 부친의 얼굴이 그리울 때마다 곡을 썼고 피아노를 쳤다. 아버지와 달리 소녀가 치는 피아노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종이를 이어 만든 '가짜 피아노'였기 때문이다. 소녀의 사부곡은 오로지 마음 속에 있었다.

박 파안 영희(72) 전 브레멘 예술대학교 교수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입지전적인 업적을 쌓은 작곡가다. 어린 시절엔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함을 딛고 음악을 공부했고, 독재 정권 하에서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197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에서 당대 최고 작곡가인 클라우스 후버를 사사(師事)했다. 박 교수는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며 각종 작곡 콩쿠르를 휩쓸었으며 광주 항쟁에서 영감을 얻은 오케스트라 곡 '소리(1979)'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94년부터 브레멘 예술대학교에서 동양인으로는 물론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작곡가 주임 교수로 임명됐으며 이 대학에서 부총장까지 지냈다.

지난 2011년 퇴임한 박 교수는 지금도 각종 콩쿠르 심사 등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한국을 오가며 창작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충북교육청의 음악 연수에도 참여하면서 사회 기여 활동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올해는 유독 많이 한국에 들어왔네요. 4월에는 고(故) 윤이상 통영 음악제 때 왔었고 여름엔 충북지역 음악선생님의 합창 지도 연수 때문에 들어왔죠. 합창 연수는 제가 올 3월 김병우 충북교육감님을 만나 직접 제안한 프로그램이에요. 이번 달에도 연수 때문에 들어왔어요. 제 돈으로 비행기 값 다 내고요.(웃음)”

박 교수에게 봉사의 계기를 묻자 “내가 너무나 한국에서 잘 컸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 3 때 학교 음악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어요. 선생님은 제게 음악 전공을 권유하셨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포기를 했죠.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됐는데도 여전히 음악이 하고 싶더라고요. 결국 큰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와서 1년 재수를 했죠. 재수할 때도 집 근처 고등학교 선생님이 화성학을 가르쳐 주셨고요. 이렇게 고마운 스승이 한국에 많다보니, 오랫동안 독일에 살면서도 제가 한국 사람이란 사실을 잊은 적이 없죠.”

박 교수를 이끈 또 한 명의 위대한 스승은 고(故) 윤이상 작곡가였다. 그는 우연히 들은 윤 작곡가의 ‘예악(1966)’을 계기로 유학을 결심했다. 예악은 윤 작곡가의 대표작으로 국악의 궁중음악에서 착안한 관현악 곡이다. “1971년 원경수 선생님(전 KBS 교향악단 상임지휘자)께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예악을 연주했어요. 사실 이 곡의 초연 시기는 1966년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선 정치적인 이유로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 연주를 금기시했었죠. 뒤늦게 예악을 듣고 그 소리에 완전히 매료됐어요.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유학을 준비했죠.”

박 파안 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인터뷰
박 파안 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인터뷰
유학 온 후에는 선망하던 윤 작곡가와 직접 만나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윤 작곡가의 곡이 프라이부르크에서 연주되던 1978년부터였다. 이런 연유로 박 교수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 방독 당시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 작곡가의 묘지를 찾는 자리에도 동행했다. “그렇게 가고싶으셨던 고국의 대통령 부부께서 예우를 해주셨으니 선생님도 마음이 흐뭇하실 겁니다"

박 교수는 윤 작곡가 사후인 1997년에 모 매체에서 공개한 친필 편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신은 윤 선생님이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며 고국에 보내달라는 내용인데 제가 아는 선생님 필체랑 너무 달랐어요. 왜, 누가 조작까지 해가며 고인을 욕되게 했는지…."

박 교수는 윤 작곡가가 그랬듯, 국악을 활용한 다양한 곡들로 작품세계를 키워나가고 있다. 올 겨울 한국에 들어와서는 내년에 올릴 거문고 곡을 쓰기 위해 연주를 배우는가 하면, 본인의 이름을 딴 '박영희 작곡상'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박영희 작곡상은 주독일한국문화원이 제정한 상으로 한국 전통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연주자가 어울려 연주할 수 있는 현대음악 양식의 작품을 공모한다. 2회를 맞은 올해는 장 통펀(Zhang Tongfen)씨와 양승원씨가 공동 2등을 차지했다. 양씨는 "작곡하는 입장에서는 박영희 교수님같은 분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고마운 분"이라고 평했다.

박 교수는 "국악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며 "작곡학도를 포함한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콜롬비아 국적의 작곡가가 1위를 수상했고요, 올해는 두 작곡가의 작품이 너무나 훌륭해서 공동으로 2위를 줬어요. 올해의 수상 작품을 연주했는데 독일 관객들이 기립박수로 응해줬죠. 한국 사람들은 남을 좇길 좋아하지만 의외로 국악이 외국에서 사랑받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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