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은퇴고비'서 만난 고비사막… 새 일의 기쁨 별처럼 쏟아져요

머니투데이
  • 최은미 기자
  • VIEW 183,809
  • 2011.06.20 06:00
image
예순 일곱의 이들 부부는 노후를 편하게 보내자고 몽골에 간 게 아니다. 자원 봉사하자고 몽골의 대학교수가 된 것도 아니다. 20대가 직장을 찾아가듯 새로운 출발을 위해 갔다.
2008년 6월 오씨는 연세대 간호대 교수 정년퇴임을 8개월 앞두고 있었다. "퇴임하면 남편이랑 등산이나 하면서 보내야 하나 걱정하고 있던 차였죠. 마침 울란바타르대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새로 설립하는 간호대학장을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죠."
오씨는 남편과 함께 그냥 놀기 삼아 대학을 찾아가봤다. 1995년 한국인이 설립한 이 대학은 22개학과에 학생이 3000여명. 그러나 학교를 둘러본 바로 그 날 오씨는 몽골 이주를 결심했다. "학교에 들어섰는데 1960년대에 제가 다니던 대학의 모습과 너무 비슷한 거에요. 건물도, 학생도, 교수도 푸근함이 느껴졌어요. 아! 이곳이라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씨는 머뭇거리는 남편을 설득하고, 자식들에게도 통보했다. 퇴임하려면 아직 반년 정도 남았지만, 마음 먹은 이상 머뭇거리기 싫었다. "여행용 가방에 그냥 밥솥과 쌀만 담아 출발했죠. 하루라도 젊었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오씨 부부는 일사천리로 준비를 마치고 두 달 만에 몽골로 떠났다. 남편은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 강의를 맡기로 했다. 산업은행과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국제금융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남편은 경영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다 쉬고 있던 참이었다.

◇ "등산 다녀야 하나" 고민중, 지인연락 '일사천리 이주'

현재 오씨는 간호대학 행정을 총괄하며, 만성질환자 간호 등 4개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의 수강생은 적게는 30명, 많게는 130명 정도. 한국어에 능통한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학생들과 한국 드라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몽골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간호사를 양성한 게 얼마되지 않았어요. 간호사가 아예 없는 병원도 많고, 있어도 몇 안 되는 간호사가 유니폼도 없이 일하고 있죠. 그러니 제가 할 일이 오죽 많겠습니까."

이 대학 출판문화원을 맡고 있는 남편 안씨는 학생들에게 세계고전문학을 전파하는 일에 푹 빠져있다. "아내의 권유로 나이팅게일 전기를 출간하면서 들여다보니 몽골 전체에 읽을만한 책이 없더라고요. 유목민 문화라서 구전문학은 발달했는데 출판문화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중학교 때 다 뗄만한 고전문학도 아예 출간 조차 안돼 있어요. 출판을 통해 기초 인문교양의 바탕을 깔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죠."

안씨는 이후 '홍길동전'과 아프리카 장편소설 '모든 것은 무너진다', 중국 소설 '랴오찬 여행기' 등 4권의 책을 더 펴냈다. 몽골 독립 100주년을 맞아 조만간 현지 작가들과 공동으로 '몽골 독립 100주년 문학선'도 출간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금융과 경영컨설팅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이었고, 주말도 없었습니다. 스트레스로 많았고 건강도 좋지 않았죠. 그런데 여기서는 똑 같은 일인데도 신이 나고 보람도 느끼고 더 건강해진 듯 합니다. 저녁에는 그 동안 밀린 공부도 많이 하고요. 가끔씩 한국 가서 친구들 보면 답답해보입니다."

오씨도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여전히 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낯선 타국생활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나이가 왜 한국에서는 정말 치열하게 산 세대 아닙니까. 그 치열했던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와서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데 힘이 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 우리세대 경험 필요한 곳, 건강 좋아지고 보람 백배

이들 부부에게는 다른 나라 문화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적잖은 즐거움이다. 몽골인들은 '게르'라고 불리는 원룸형 천막집에 쭉 살아왔다. 도심에는 아파트가 많지만 교외로 나가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게르에 살고 있다. 때문에 남녀구별이나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개념이 적다. 밥도 각자 먹고 싶을 때 둥그런 그릇 하나 들고 알아서 떠 담아 먹는다. 우리나라처럼 시간 정해놓고 가족이 모두 모여 차려놓고 먹는 일이 거의 없다. 인사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지 않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과 교정에서 마주쳤는데 빤히 쳐다보고만 있고 인사를 안 하는 거에요. 깜짝 놀랐죠." 몽골인들은 머리를 숙이는 일을 굴욕이라고 생각해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음식 문화가 그랬다. 몽골인들은 양고기가 주식이고, 야채는 거의 안 먹는다. 밥은 한국 상점에서 재료를 사다 한국식으로 만들어 먹고 있지만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구하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죄다 수입하는 거라 은근히 걱정도 됐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 추위도 상당한 인내를 요구했다. 습도가 낮아서 우리나라처럼 살을 에는 추위는 아니지만 오래 노출되면 기도가 상할 정도이다. 봄에도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먼지바람이 거세 야외활동이 쉽지 않다.

하지만 여름은 환상적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도시 근교에 크고 작은 '섬머 하우스'를 만들어놓고 모두 교외로 나간다. 안씨는 "몽골인들은 유목생활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며 "덕분에 우리도 여름이면 유목민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 젊었을 때만큼 일하면서 젊어서 못한 경험하는 것

지난해 여름 이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원이라는 고비사막을 다녀왔다. 가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지만 도착해서 마주한 고비사막은 1년을 걸려 왔어도 후회하지 않았을 만큼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몽골은 일단 도시를 벗어나면 도로 개념이 없습니다. 차가 가면 그게 길이에요. 고비사막에 도착했을 때가 한밤중이었는데 하도 캄캄해서 50m 앞에 있는 천막도 못 찾고 헤맸죠. 그런 스릴은 처음이었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인간의 손때라곤 전혀 없는 광경이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이들 부부는 올 여름에는 몽골제국의 옛 수도 카라코롬을 거쳐 남부 사막지역을 여행할 계획이다. 한국의 친구들도 초청했다.

"나이 들어 외국에서 사는 건 돈 싸 들고 골프나 치는 호주 이민 같은 걸로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젊을 때만큼 열심히 일하고, 젊었을 때 경험해보지 못한 새 삶을 산다는 것, 뭐 이런 게 인생 이모작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꿀팁

  • 띠운세
  • 별자리운세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메디슈머 배너_슬기로운치과생활 (6/14~)
남기자의체헐리즘 (1/15~)
블록체인

포토 /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