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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전노장'64세 노감독 '199패1무1승'팀 맡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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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승주 류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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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7.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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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10년 늘어난 중년, New Old]<3>이광환 서울대 야구부 감독

이광환 감독(64)은 우승을 많이 한 감독은 아니지만 명감독이었다. 1991년 백인천 감독 후임으로 LG트윈스를 맡았을 때 그는 자율야구라는 걸 선보였다.

'스파르타' 일색이던 한국 야구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3년 뒤 그는 LG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우승은 한차례뿐이었지만 그는 2008년 넥센히어로즈 감독으로 퇴임하기까지 자율훈련, 투수분업화, 야구다운 야구 등 한국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64세 노감독은 평균연령 21세의 선수들보다 1시간 먼저 운동장에 나와 물 뿌리고 땅을 고른다. 서울대 야구부 1승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실패를 위해서다. "이제껏 1등만 해온 애들이 연패를 경험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사진=이명근 기자 qwe123@mt.co.kr
↑64세 노감독은 평균연령 21세의 선수들보다 1시간 먼저 운동장에 나와 물 뿌리고 땅을 고른다. 서울대 야구부 1승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실패를 위해서다. "이제껏 1등만 해온 애들이 연패를 경험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사진=이명근 기자 qwe123@mt.co.kr
그런 이 감독이 은퇴 2년 여 만인 지난해 5월 다시 감독을 맡았다. 199패1무1승. 새로 맡은 야구단의 성적표이다. 설립 후 28년동안 이긴 거라곤 2004년 9월 1일 단 한차례뿐이다.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서울대 야구부다.

백전노장과 백전백패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래도 이 감독은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계를 본다"고도 했다. 예순 넷의 노(老) 감독은 요즘 매일 3~4시간씩 훈련으로 땀범벅이다.

"제가 원래 일하면 좀 미친 듯이 합니다. 젊게 사는 거요? 정신 없이 살다 보면 됩니다. 월화수목금금금,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가 "60이 넘은 걸 잊고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일상에 대한 몰입이었다.

그를 찾아 간 지난 달 14일은 기온이 30도가 넘었다. 때아닌 무더위 속에서도 이 감독은 쉴 새 없이 노크(수비수 훈련을 위해 쳐주는 연습 타구)를 하고 있었다. "시험공부 하느라 몸이 또 굳었지!"

운동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만 들으면 영락없이 갓 부임한 신임감독이다. 운동장에도 가장 먼저 나온다. 연습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미리 나와 돌 줍고 삽질하고, 물 뿌리고 땅 고른다. 감독이 모범을 보이니 선수들은 따라 할 수밖에.

야구부 이현진씨(체육교육과 4학년)는 "감독님 생활하는 모습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고 말했다.

마치 대학야구 우승이라도 할 태세지만, 이 감독은 "추가 1승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1승 더 올리는 거, 그거 제 목표 아닙니다. 1등만 해온 애들 아닙니까. 그래도 야구부 와서 실패를 먼저 배우니깐 다행인 거죠. 희생과 협동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처음엔 수도꼭지 어떻게 열고 닫는지도 모르는 애들이 있었어요. 서울대 야구부 출신이면 어느 조직 가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요지는 '지덕체(智德體)'였다. "체육이라는 건 종합 학문입니다. 정신부터 육체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죠."

그래서인지 이 감독의 몰입은 즐겁고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애들이랑 같이 뛰어 놀고 있는 거죠. 저도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누구는 제가 봉사한다고 하는데 실은 반대에요. 제가 애들한테서 더 많이 배워요. 직업적인 선수들이 근육활동이 많다면 얘들은 두뇌 활동이 더 많은 애들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제가 새로운 세계를 배우고 있는 거죠."

애초 이 감독이 서울대 야구부를 맡은 건 무슨 대단한 목적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원장으로 있던 '베이스볼 아카데미'가 마침 서울대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 아카데미는 서울대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설립한 것으로 야구계의 연수원 같은 곳이다. 그는 야구부 연습 장면을 내려다보면서 '더 재미있게 야구를 즐길 수 있을 텐데'라는 단순한 생각에 감독을 자청했다.

그러나 야구부를 맡은 이후 이 감독은 하루 24시간도 부족하다. 연패만 계속 한다고 시합에 안 나가는 건 아니니 말이다. 아카데미 일에다 유소년 야구 활성화 방안도 만들어야 한다.

"제가 이 나이 돼보니깐 명퇴할 나이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메이저리그에서는 머리가 허연 감독도 현역으로 뛰지 않습니까. 우리는 너무 빨리 경험을 사장시키는 것 같아요. 제가 절대 나이 들었다고 이런 얘기 하는 거 아닙니다. 50세만 넘으면 다 산에 다니는 거, 이게 얼마나 국가적 낭비입니까. 제가 6호선 4번출구(64세)이지만 기분은 30대랑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60대는 야구로 치면 연장전"이라고 했다. 아직 승부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오히려 한 타석 한 타석을 더 긴장감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하고 나면 패닉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새로운 걸 못 찾고 헤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더 빨리 늙습니다. 자기가 평생 갈고 닦은 게 있을 테니 그걸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물건만 재활용할 게 아니라, 자신도 재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죠."

돈은 많이 모아놓았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는 1995년에 사재를 다 털어 제주도에 야구박물관을 설립해 서귀포시에 기증한 바 있다. "모아 놓은 게 없어 고민입니다. 재테크는 로또나 좀 사놓을까 빵점이죠. 아들 결혼 할 때 전세방도 못 구해줘 불만도 있었죠. 근데 보세요. 많이 가지고 있으면 억울해서 못 죽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겁니다. 중요한 건 지금 열심히 사는 겁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겠다고 생각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감독의 몰입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작은 일상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의 표현을 빌리면 소중현대(小中顯大)였다. 이 감독만의 연장전 우승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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