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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삼성, 2004년8월의 아킬레우스

성화용의인사이드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입력 : 2004.08.11 15:04|조회 : 1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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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0여년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침공을 위해 에게해를 건너는 수백척 그리스 범선 가운데 하나의 뱃머리 위에 서게 된다.

트로이가 멸망하기까지 10년 전쟁 동안 그는 피와 살육의 선봉으로, 질투와 분노의 화신으로, 때로는 우정 앞에 자아를 버리는 고귀한 감성의 소유자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수놓는다.

신화는 죽고 실화만 남은 자본의 시대. 아테네 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전쟁'에 뛰어든 삼성을 다시 본다. 솔트레이크와 시드니올림픽의 국지전에서 승리한 삼성은 수년간 전비(戰費)를 쏟아부은 끝에 마침내 에게해를 건넜다.

2004년 8월의 이 한국판 아킬레우스는 수백명의 간부진이 유럽에 집결해 보급선을 지키고 1만4000여대의 휴대전화와 1000대의 공항 푸시카트(push-cart)로 무장한 채 세계 일류기업들과 검투를 시작했다.

아킬레우스의 오른팔격인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는 올림픽 개막 전날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 기치를 들게 된다. 30개의 대형 옥외광고와 눈에 번쩍 띄는 홍보관은 말과 전차가 돼 진군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 한 판 승부를 위해 삼성은 27개국 34개도시에서 870명의 직원들이 성화를 들고 뛰었다. 타임스퀘어에서 우크라이나 까지 이어진 한 바탕의 선전포고.

단 10분의 화려한 연출을 위해 수개월간 땀흘리며 조바심으로 밤을 새운 수만, 수십만 불면의 사연들이 아킬레우스의 온 몸을 적신 스틱스 강물이 돼 그를 불사의 용사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2004년의 실화는 호메로스가 전하는 트로이 전쟁사와 자못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신화속의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피해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틈에 여장을 하고 숨어있다가 그가 있어야 승리한다고 믿고 찾아온 오디세우스에 의해 차출된다.

그는 능동의 영웅이 아니었다. 전쟁에 참여하면 죽는다는 예언과 죽음으로 얻어질 영원한 명예 사이에서 고심하던 로맨티스트였다.

삼성은 스스로 준비해 전쟁에 뛰어든다. 마구를 챙기고 병기의 날을 갈며 수년을 투자하고 치밀하게 작전을 세워 싸움을 주도한다. 예언은 없다. 비용과 효율, 승리와 패배가 있을 뿐이다.

신화속의 아킬레우스는 질투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우정에 목숨을 건다.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 미녀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가자 싸움을 거부하다가, 대신 출전한 벗 파트로클로스의 죽움에 분노해 다시 전장으로 나선다.

걸출한 조연,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를 죽여 그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흉포함을 보이기도 한다.

20004년 8월의 아킬레우스는 냉정하고 치밀하다. 질투도 분노도 없다. 올림픽 축제 막후의 끈끈하고 치열한, 그러면서도 건조하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경제전쟁에 뛰어 들어 당당하게 예정된 전리품을 챙긴다.

트로이전쟁은 10년만에 막을 내렸고 아킬레우스는 결국 유일한 급소인 발뒤꿈치 힘줄(腱)에 화살을 맞아 죽는다.

그러나 삼성은 죽지 않고 전쟁도 끝나지 않는다. 삼성 뿐 아니라 뒤를 이을 수 많은 한국판 아킬레우스들이 또 다른 전선으로 내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냉엄한 경제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의 아킬레우스들은 통쾌한 반전으로 한 번에 대승을 거둘 트로이의 목마를 애타게 찾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와 신화속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내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결국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로 밀어 넣은 승리의 주재자였다. 그는 국가와 정부의 정체성, 현명한 지도자와 균형잡힌 영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04년 8월, 한국판 오디세우스는 허망할 정도로 비뚤게 보인다. 250여개의 로드맵을 만들었지만 실용적인 전쟁도구는 하나도 없다. 전쟁을 주재하고 전략을 짜는 일 보다는 출전을 앞둔 용사와 시비 붙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아킬레우스를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분노'와 '질투', '우왕좌왕'이 이제 오디세우스의 품성이 됐다면, 이 신화의 역전을 생각하며 당황해 하는 수 많은 한국경제의 아킬레우스들을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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