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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제일모직 기숙사에서 향기가 나는 이유

[경제기행]⑧담쟁이 덩쿨속 향기와 온기....無노조 경영 속 여공의 꿈은 무르익고

이백규의氣UP 머니투데이 이백규 기자 |입력 : 2004.10.18 06:37|조회 : 1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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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행]⑧담쟁이 덩쿨속 향기와 온기....無노조 경영 속 여공의 꿈은 무르익고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이 드높던 9월 어느날 대구의 제일모직 옛공장을 찾았다. 대구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초입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게 기숙사다.

54년 2층짜리 모두 7개동으로 지어진 기숙사는 온통 담쟁이 덩쿨로 덮여 있었다. 빼꼼히 열려있는 창문과 대문을 제외하고 벽과 지붕은 물론 건물전체가 담쟁이 천지였다. 벽 색깔이 뭔지도 모를 정도로 온통 덮여있다.

그래 일모(제일모직 직원들은 자신의 회사를 어렇게 즐겨 부른다)사람들은 이 기숙사를 '아이비' 또는 제일대학으로 불렀다고 한다.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버드 예일등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교사가 많은 데서 유래)

기숙사는 침실은 물론 회의실과 강의실도 갖추고 있고 작업후 여공들은 야간학습을 했다. 취재차 방문한 날도 삼성전자 서비스 요원들이 그곳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기숙사 안에서 먹고 자고 강의받고 토론하는 학교 생활 일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미국 대학의 칼리지가 연상됐다. 90년대 중반 기자가 연수 유학갔던 캐나다 토론토 대학 매시칼리지와 같은 방식으로 그시절 그 기숙사 모습이 오버랩됐다. 97년 모직 설비를 구미로 옮기기 전까지 54년 설립 이래 30여년간 기숙사는 공장과 함께 대구 공장의 본체를 형성했다.
⑤ 제일모직 기숙사에서 향기가 나는 이유


아이비 기숙사에 얽힌 얘기들은 많다. 에버랜드 소속인 이무형 관리소장(삼성은 큰 유형자산관리는 그게 어느 계열사 재산이든 상관없이 에버랜드가 하는 특이한 구조다)의 말.

"53년 호암이 제일모직 공장 건설을 결심한 이후 가장 먼저 완공한 것은 공장 건물이 아니고 기숙사였다. 국내 최초의 현대식 설비을 갖추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 직원들을 뽑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숙식처를 제공하면서 미리 기계 작동 기술과 작업방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당시 호암은 기숙사 건립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고 동행한 제일모직 노재용 과장이 설명했다. 호암은 2000여명이 묵을 수 있었던 기숙사 전관에 스팀 난방 설비를 깔게 했다. 50년대 당시엔 일류급 호텔에서만 가능한 스팀 난방을 여공 기숙사에 설치한 것이다. 지금도 기숙사에 남아있는 그 스팀 설비와 난방 공급 파이프를 보면서 호암의 따듯한 기운과 한시대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떠올려 본다.

기숙사에 들어서면 온기 뿐만 아니라 향기도 느낄 수 있다.

목조건물인 기숙사의 창틀은 모두 향나무로 만들어 안에는 향내가 가득하다. 마루 바닥은 회나무로 깔아, 고개를 숙이면 삼림욕장에 들어온듯 은은한 목재 냄새가 그윽하다. 그윽한 향내에 은은한 나무 냄새.

호암자전은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복도에는 회나무를 깔아 차분한 안정감이 나도록 하였다"고 적고 있다. 50년대 중엽인데도 목욕실 세탁실 다리미실 휴게실을 만들어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61년 5.16 후 기숙사를 둘러보고 흡족해 하면서 "이 정도면 딸을 맡겨도 좋겠구만!"하며 흡족해했고 초대대통령 이승만박사는 57년 미국극동사령관과 함께 방문, 당시에 호텔에나 있던 수세식 화장실을 보곤 놀랐다고 한다.

호암자전은 이어진다. "꿈과 이상의 일환이지만 기숙자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공장이 가동되면 2000명이 넘는 젊은 여성이 일하게 된다. 동경유학시절 읽었던 '여공애사'는 비참한 노동조건하에서 일하는 방적공장의 참담한 여공생활을 그린 것인데 그 당시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나의 공장이 그래서는 결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들이 기숙할 기숙사에는 최상급의 쾌적한 시설을 갖추도록 하자. 이렇게 굳게 마음 먹고 전관에 스팀 난방을 설치했다" 李회장의 인생역전 '집창촌옆 꼬마가 총수로'

그로부터 50여년후인 지금. 이무형 관리소장은 바로 어제(9월15일) 제일모직 창립 50주년을 맞아 환갑은 훨 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이 기숙사를 찾았다고 전해준다. 머리 희끗희끗 허리 휜 노파들은 마치 젊을 적 여공시절로 되돌아 간듯 한참을 수다 떨다가 기다리던 버스에 나누어 올라타고 기념행사 참석차 구미공장으로 떠났다고 했다.

"아! 저기가 내가 살던 (진심)동이었는데 아직도 그대로네...""호랑이 사감이 보고 싶은데 살아계시겠지 !" "우리의 제일대학 담쟁이 건물이 이제 대구의 명물이 됐네!"

일모는 그들에게, 젊을 적은 꿈과 희망과 하면된다는 자신감을, 나이 들어서는 경제적 풍요와 안정을, 이제 황혼의 나이엔 뒤돌아 보면 멋지고 향기나는 추억을 안겨준 셈이다.
⑤ 제일모직 기숙사에서 향기가 나는 이유


일모의 기숙사가 들어선지 20여년후인 70년대에 공순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그들의 비인간적인 대우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지만 삼성은 다른 길을 걸었다. 삼성에선 공순이가 비도덕과 착취, 부정 이로 인한 투쟁보다는 긍정과 애사심과 산업역꾼, 노사화합의 대명사로 새겨졌다.

'원조 여공'들에게 최고급 호텔급 숙소를 제공하는게 호암 이병철식 이었고 이는 삼성의 '노조 없어도 노조 있는데보다 더 잘해준다'는 '노조 없는 사원 중시 경영'과 인재 제일주의 경영의 시발점이 된다.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 소개된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의 일화 하나.
호암의 1920년대 등교길서 바라본 2030년



호암보다 17살 아래로 포철 설립시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온 그는 이런 호암정신을 벤치 마킹해 68년 포철 공장 말뚝도 받기 전에 20만평을 구입해 사원주택공사를 먼저 착공했다.

90년대 이곳을 방문한 모스크바대학 사도브니치총장은 소유주를 궁금히 하다가 "집주인은 회사의 장기저리 융자금을 받아 구입한 노동자들"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닌 동지가 추구한 사회주의의 이상향이 포스코에서 실현되었군요"

불경에서 이런 문구를 본 기억이 새롭다.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해도 덕행자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멀리멀리 시방 세계로 퍼진다" (창가 양복 입은 취재 기자에게 에버랜드 소속인 이무형 관리소장이 기숙사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⑤ 제일모직 기숙사에서 향기가 나는 이유




/사진=박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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