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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병철-이건희를 잇는 숙명의 고리

[경제기행]삼성, 중교리에서 타임스퀘어까지 (14)

성화용의인사이드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입력 : 2004.11.01 12:51|조회 : 21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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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농서리 산 24번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이 들어선지 20년만에 이 곳은 세계 반도체산업의 메카가 됐다.

기흥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반도체의 땅'으로 예견됐던 곳 인지도 모르겠다. 그릇 기(器), 흥할 흥(興). 반도체야말로 정보를 담는 그릇이니, 이 만큼 맞춤으로 붙여진 지명(地名)이 또 있을까.

한국지명총람을 뒤져도 '그릇 기'를 마을 이름에 쓴 곳이 없으니, 이건 필경 수백년 전 이인(異人)의 밝은 헤아림 아니겠느냐고 자문할 때쯤 경부고속도로 기흥 방면 표지판이 보였다.

기흥 IC에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U자로 급격히 꺾이는 우회전. 그 때부터 오른 편으로 45만평의 기흥 반도체단지가 늘어서 있다.

야트막한 매미산을 등뒤로 두고 삼성종합기술원과 반도체대학, 몇몇 연구동. 앞쪽으로는 기숙사로 지어진 아파트와 제법 커 보이는 주차장들.

산쪽을 마주보면 오른 편으로 6,7,8,9 반도체 라인이 늘어서 있고 왼쪽 중앙으로는 초기에 지어진 1~5 라인이 있다. 지금은 6~9라인과 기흥공장에 맞 닿아 있는 화성공장의 10~13라인이 메모리 반도체의 주력 생산 시설로 쓰인다. 1~5라인은 비메모리용으로 특정 공정만 담당한다.

사무동 옥상에서 본 기흥 공장 주변이 썰렁하기만 하다. 영통, 화성의 아파트 단지와 아직 토목 공사가 한창인 화성공장 미개발 부지의 살풍경이 들어올 뿐이다. 산 뒤편의 신갈 저수지는 시야에 안 잡힌다.

그저 그런 공단 주변의 풍광이지만 그렇게만 느껴지지가 않았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사업력을 따라, 삼성의 사사(社史)를 쫓아 의령과 마산, 진주, 대구를 헤매던 기억이 오버랩 됐다.

마침내 호암이 만 스물 여섯에 시작한 마산의 정미소(첫 사업)가, 대구에 주춧돌만 남은 삼성상회가, 이 '그릇 흥하는 터'에 이르러 세계 제일로 우뚝 섰구나 하니 묘한 감회가 절로 일었다.

반도체, 이병철-이건희를 잇는 숙명의 고리


사활 걸고 '미래의 그릇'을 굽다

사업이 적을 때는 개인의 문제지만 1980년대의 삼성쯤 되면 수만, 수십만의 호구(戶口)가 걸린다.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범인(凡人)이라면 그 스트레스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울텐데 사업가들은 자처해서 다시 새로운 고통을 짊어진다.

'골프'와 '스시' 를 즐기는 정도라면 누대를 보장 받고도 남는 재산일 텐데 호암은 반도체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호암을 움직인 건 명리인가, 끝모를 성취욕인가.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관성 때문인지도, 그도 아니라면 삼성이라는 조직에 불사의 생명력을 담보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본능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호암은 1983년 2월7일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에게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전면적으로 뛰어들 것임을 3월15일자로 안팎에 알리라고 통보했다. 만 73세의 노사업가가 반도체 입국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해 9월 바로 기흥에 제 1라인 반도체공장(사진)을 착공해 이듬 해 3월, 휴일 없는 철야 작업 끝에 6개월의 유례 없이 짧은 공기(工期)로 생산라인을 준공하고 5월 준공식과 함께 라인을 돌리기 시작했다.

반도체, 이병철-이건희를 잇는 숙명의 고리


그러나 삼성은 이 때부터 3년여간 시련의 세월을 보낸다. 반도체 사업에서만 수천억원의 누적적자. 주변에서는 '삼성은 반도체 때문에 망한다'는 얘기들을 수근거렸다.

밖으로는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은 호암이었지만 철혈의 추진력 뒤에 숨은 노심초사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예전에도 사업가로서 실패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10년에 걸쳐 완공한 한국비료를 헌납할 때 가슴에 쏟은 피눈물과 관리 소홀로 인한 1970년대말, 1980년대 초의 삼성중공업 부실은 호암을 두고 두고 자책으로 몰고간 뼈 아픈 실패담이다.

그러나 반도체는 실패해서는 안되는 사업이었다.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 적자가 한창이던 때(1984년 하반기) 호암은 자전(自傳)을 통해 "반도체 사업에 미래를 걸었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그건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고 자기 최면이었다. 그 이전에 50년 사업력을 통해 형성된 스스로의 사업감각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호암은 끝내 그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삼성 반도체는 호암이 작고 한지 1년 뒤인 1988년에 이르러서야 누적적자를 메우고도 3000억원의 흑자를 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한 해도 손실을 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메모리 분야에서 12년째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반도체 사업이야 말로 삼성의 미래를 담는 그릇이요, 한국 경제의 보물인 셈이다.

삼성-반도체-2세승계를 엮은 운명의 끈

반도체는 호암이 손을 대는 시기와 과정이 드라마틱할 뿐 아니라 유일하게 그가 제대로 완결짓지 못한 사업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선친이 벌여 놓은 반도체 사업을 세계 제일로 끌어올림으로써 스스로 삼성의 주인 자리를 반석위에 다졌다.

호암의 후광이 워낙 두터웠고 이 회장 스스로도 몸을 낮추며 드러내지 않았던 터라 호암 사후의 삼성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호암이 말년에 빚기 시작한 '미완의 그릇' 반도체는 2세 이건희가 그룹 총수의 자질을 검증받아 선친의 그늘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절묘한 타이밍을 제공했던 것이다.

호암은 생전에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던 여덟가지 요인을 꼽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부천 IC공장을 통한 10년 경험과 인력의 축적' 이다.

이 부천공장의 전신이 한국반도체다. 설립 후 곧바로 경영위기에 빠진 이 회사를 사들인 게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다.

그것도 회사 돈이 아니라 사재를 털어서 사들였다. 지분을 인수한 날은 1974년 12월 6일.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미 호암이 '전면전'을 생각하기 10년전에 이미 숨겨진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 사업체의 주인이 아직 후계 확정도 안된 3남 이건희 였던 것이다.

'호암도 반도체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때 서른을 갓 넘긴 청년 이건희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그로부터 10년후 호암은 전면적인 시장조사와 함께 반도체 사업 착수를 결의한다…마침내 기흥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하지만 결국 호암은 끝을 못 보고 세상을 뜬다…그 유지를 이어 받아 후계자가 '그릇'을 완성해 마침내 세계로 도약한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공교롭고 필연이라고 하자니, 이건 삼성과 반도체, 호암과 이 회장을 엮는 터무니 없는 운명론이다 싶어 머리를 젓게 된다.

그러나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변주곡 아니던가. 삼성의 반도체사업에서 읽히는 숙명과도 같은 어떤 인과의 흐름을 무조건 부인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사무동 옥상에서 한바퀴 둘러 본 기흥 공장의 전경은 애써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해도 이렇게 헝클어진 상념들을 불러왔다.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의 삼성타운

반도체, 이병철-이건희를 잇는 숙명의 고리


기흥공장은 '공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삼성전자 정문'이라는 도로 표지판을 따라 정문을 통과한 후 사무동까지 올라가는 동안 보안 요원들이 세 번이나 차 번호(미리 통보해 놓지 않았다면 보안 검색에 상당한 시간을 빼앗긴다고 한다)를 확인했다.

그러나 삼엄한 보안과는 달리 밝고 가벼운 분위기였다. 정장 차림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의 20~30대가 주류.

연구동과 반도체대학(성균관대의 학부과정을 공유) 등이 함께 있기 때문인지 마치 대학 캠퍼스를 거니는 느낌이 들었다.

반도체, 이병철-이건희를 잇는 숙명의 고리


건물들이 제법 빼곡이 들어 찼지만 좁게 느껴지지 않았고 어디를 가나 잘 가꿔진 나무들이 '삼성'을 느끼게 했다. 느지막하게 갔는데도 식당은 직원들로 활기가 넘쳤다. 흡연을 위해 지정된 몇몇 장소에는 젊은 흡연자들이 식사후의 끽연을 위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오전에 도착해 오후 3시를 넘겨 나올 때 까지 삼성 기흥공장은 이렇게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곳 어느 구석에 '세계 제일'이 숨어 있을까.

열정적인 안내로 목소리가 갈라져 버린 삼성 관계자가 무심결에 현답(賢答)을 들려줬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다들 세계 일류예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세계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는 곳인데…연구원들은 물론이구요…특히 반도체 라인에서 방진복 입고 일하는 '오퍼레이터' 들은 그야말로 일류 중에서 초일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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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명에 대한 해석이 대단하네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갖고 하신건지도 궁금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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