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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수퍼 엘리트는 생산라인에 있다

[경제기행]삼성, 중교리에서 타임스퀘어까지(17)

성화용의인사이드 머니투데이 성화용 기자 |입력 : 2004.11.03 16:08|조회 : 14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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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삼성의 오늘을 만들었나. 어둠이 내리는 충남 아산시 동북부의 탕정면을 빠져 나오며 두달여 동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두를 다시 끄집어 냈다.

창업자 이병철과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守城)'에 성공한 2세 경영자 이건희에게 비범한 '다스림'의 철학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천부의 것일 수도,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성공한 사업가로, 면식도 없는 개인의 일상에 영향을 줄 정도의 무거운 인물로 자리잡은 이상 인정해야만 했다.

시류의 흐름을 제대로 탔으니 운도 있었을 테고, 그 운 역시 3할쯤은 개인의 자질과 품성이 만든 것일 터.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지 않을까.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의 배후에는 보다 구체적인 경쟁력과 성장동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LCD '7-1라인' 의 설비 반입이 한창인 삼성 탕정 공장 주변을 서성이며 한참을 생각했지만 딱 떨어지는 '그 무엇'을 정리해내기가 어려웠다.

정작 힌트를 얻은 건 탕정에서 천안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였다. 40대 중반쯤 보이는 택시 기사에게 삼성이라는 기업이 왜 잘되는 것 같느냐고 지나가듯 물었다. 호암과 이건희 회장에 대해 두서없이 아는 척을 한 끝의 질문이었다.

"한 둘이 똑똑한 것만으로 되나… 모두들 열심히 하니까 그렇겠지. 탕정 공장 손님들 눈에 빛이 나요. 삼성 사람인지, 외지인 인지 가려진다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열심히 하면 무서워요. 삼성은 돈도 많이 주고 일도 많이 시키는 기업이니…"

무심결에 흘려 들었지만 천안역에 내릴 때쯤 다시 곱씹어 보니 그럴 듯 했다. 그래, 그것도 설명이 되겠구나.

초기에는 고용자와 피고용자 모두 '계약 관계'를 넘어선 '경이로운 헌신'으로 사업을 일궜고, 사업이 자리를 잡은 뒤에는 잘 짜여진 고용 시스템과 철저한 관리로 균형을 잡아 왔다.

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었다고 자책했다. 삼성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가장 훌륭한 자원, 바로 '양질의 노동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인 것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 넘치면 효율이 깨지고 모자라면 조직이 깨진다. 개인과 기업의 이해 중심에 절묘한 균형점을 잡은 채 이렇게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이 또 있을까.

현장인력이 삼성을 일으켰다

삼성의 수퍼 엘리트는 생산라인에 있다

사실 반도체 주력 라인이 있는 기흥공장을 둘러 볼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비메모리 공정을 담당하는 1라인 내부 시찰을 할 때 삼성측 안내자는 "예전에도, 지금도 공정에 투입된 현장 인력의 질은 (삼성이) 단연 세계 제일"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두터운 유리 너머로 이따금씩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동선을 오가며 무언가를 옮기는 듯 보이는 이들이 바로 현장 인력인 '오퍼레이터'다. 대개 고졸 학력의 여직원들. 꼼꼼한 인선을 통해 성실하고 똑똑한 인재를 가려 뽑고 끊임없이 교육한다.

1년에 몇번씩은 이들로부터 라인 공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디어와 제안이 나온다고 한다. 박사급 전문인력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장 인력 특유의 감각.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그래서 삼성 사람들은 "삼성의 수퍼 엘리트는 태평로(삼성 본관)가 아니라 생산 라인에 있다"고 말한다. 이 현장의 엘리트들이야 말로 삼성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이들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들 역시 삼성의 가치를 인정한다. 양질의 근로와 최고의 대우, 때로는 근로조건을 넘어선 로열티와 인간적인 배려로 균형을 잡기도 한다.

기흥공장에도 탕정공장에도 간부식당이 없다. 현장 인력보다 우대 받아야 할 간부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어떤 삼성타운도 마찬가지다.

탕정이 충남을, 삼성이 한국을 리드한다

탕정 1단지에는 '7-1'라인 뿐 아니라 삼성코닝과 삼성코닝정밀유리가 들어서게 된다. LCD 헤드쿼터가 자리를 잡게 되면 61만평의 부지가 모자란다.

거치적 거리는 문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소한 일이다. 삼성은 2010년까지 1, 2단지 합해 125만평의 부지에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의 수퍼 엘리트는 생산라인에 있다

아산시 뿐 아니라 충청남도 경제가 달라지는 대역사다. 건물이 들어선 '7-1'라인에는 설비 반입이 한창이다. 그 옆에서는 건설 공사를 병행한다. 이미 15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고 내년 2월 양산이 시작되면 그 만큼의 공정작업 인력이 추가돼 300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택시기사들의 수입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의 40대 기사는 "하루 벌이가 2~3만원은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타지 택시들도 몰려와 북적댄다. 버스와 기차가 끊기는 자정무렵부터는 '장거리 손님'이 적지 않아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탕정공장의 건물이 하나 둘 씩 늘어나면서 바뀌는 건 더 많아진다. 아직은 썰렁한 공장 주변에 그럴 듯한 음식점도 들어설 테고 여러가지 편의 시설이 지역의 새로운 수입원이 될 것이다. 달고 즙이 많기로 유명한 '탕정 포도'가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게 탕정은 충남 제일의 생산기지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

대구, 창원, 구미, 광주가 그랬고 수원, 기흥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삼성이 들어서면 지역이 변하고 주민들의 생활이 달라진다. 탕정이 충남경제를 견인하는 새로운 희망으로 기대를 모으는 사이 삼성은 한국의 경제지도를 바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할 것이다.

'인식의 이완'을 걱정한다

양질의 재원이 삼성을 키우고 삼성은 다시 공장을 지어 지역 경제를 키우며, 고용과 생산이 함께 늘어 나라 경제를 받쳐 주는 선순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가운데 첫번째다.

그러나 요즘 삼성이 생산직 인력 채용을 위해 쫓기듯 '시골'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해진다. 성실하고 우수한 고졸 채용대상자들이 생산직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산직 근로자 수입의 반의 반도 안되는 '알바'로 전전하면서도 취업을 기피하는 신세대 구직문화가 삼성 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공적인 셈이다.

삼성의 수퍼 엘리트는 생산라인에 있다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연구 개발 부문에 대한 '인식의 이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 한 해 삼성전자가 발표한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소'의 기술과 신제품만 25개에 이른다.

삼성 사람들에게 중요한 순으로, 또는 가장 최근의 세가지만 꼽으라면 고개를 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잦은 '세계 최초' 에 둔감해지는 건 어쩔수 없다지만 몇몇 사업부의 성과급(PS)을 올리는 일에 불과하다는 식의 옹졸한 폄하가 내부에서 들리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삼성을 일으킨 건 현장의 엘리트 오퍼레이터요,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동의 정열이었다. 이러한 가치에 대해 무신경해 지는 것은 일종의 사회현상인 것 같다. 기업이 홀로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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