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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경영]도요타 이야기

한근태의 사람&경영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입력 : 2005.02.02 12:15|조회 : 12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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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비즈니스 위크는 "과연 무엇이 도요타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Can anything stop Toyota" 라는 특집기사를 냈고 도요타와 빅3를 비교했다.

도요타의 자동차 1대당 생산시간 21.8시간, GM 24.4, 포드 26.1, 다임러 크라이슬러 28, 도요타가 1등이다. 100대당 결함율 도요타 196, 지엠 264, 포드 287, 다임러 크라이슬러 311 역시 도요타가 1 등이다.

2003년도 순이익은 일본 기업 사상 처음으로 1 조 엔이 넘었으며 규모 면에서도 포드를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오랫동안 그들이 내걸었던 목표는 글로벌 10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10%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꿈은 2001년 이미 이루어졌고, 그들은 2010년까지 15%를 차지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만들었다.
 
도대체 오늘날의 도요타를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들은 늘 탄탄대로만을 걸어왔을까? 그들의 출발은 초라했다. 도요타는 1933년 12월 일본의 발명왕 도요타 사키치의 장남인 도요타 기이치로가 만들었다.

처음에는 도요타 사키치가 만든 방직기 회사의 일개 부서에서 출발했고 단순조립만을 했다. 전기부품부터 캬부레터, 스피드미터, 플러그 등 전부를 수입에 의존했다. 국산화 비율을 따지자면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가 1950년 처음 포드사를 방문했을 때 포드의 하루 생산량은 8000대였고, 도요타는 40대였다. 정말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다. 당시 트럭만을 생산했던 그는 언젠가 지엠이나 포드처럼 멋진 승용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고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오늘날의 도요타를 만든 도요타 에이지, 그는 철저한 현장주의자였다. 그는 공장을 학교라고 부른다. 기계과를 나온 그는 대학 때도 공장에서 실습을 했고, 처음으로 연구소를 만들었다.

비행기 엔진을 분해하고, 필드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트럭을 4륜 구동으로 개조하는 등… 그는 잠시도 공장을 떠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에이지는 신이 공장을 위해 점지해 준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자신의 공장은 물론 그룹사 공장까지 돌아다니고 공해 발생을 우려해 공장 근처의 개천을 매일 아침 산책할 정도로 현장을 중시했다.
 
도요타의 가장 큰 위기는 전쟁에서 진 이후였다. 자동차를 구입할만한 경제력이 없는데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등으로 도산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노조와 함께 구조조정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자기업에도 진출하고, 오뎅가게를 낼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의 도요타 생산방식은 사실 창업자 기이치로가 시작했다. 그가 구상한 것은 유동작업 방식이다. 한 마디로 "매일매일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만큼만 만들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지시에 따라 정해진 만큼 만들면 퇴근 시간 이전에도 퇴근을 했고 그렇지 못하면 잔업을 해야 했다. 또 검사 과정에서 불량품이 발견되면 즉각 불량품이 나온 공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품질은 공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철학이 모여 오늘날의 도요타를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도요타는 환경변화에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전쟁으로 인해 통합되었던 자동차 배급주식회사가 연합군 총사령부에 의해 분리될 조짐을 보이자 재빨리 딜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움직인다. 이 때의 차이가 도요타와 닛산의 판매 차이를 낸 것이다.

도요타는 1959년 월 만대 생산능력을 가진 모토마치 공장을 건설한다. 당시 월 2000대 정도의 판매가 이루어졌으니 엄청난 모험인 셈이다. 하지만 조업 개시 반 년 만에 판매대수가 월 만대가 되었고 도요타는 이를 통해 대 약진을 이룩한다. 필요하다 싶어 과감히 베팅을 했는데 그것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상품제조를 통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도요타의 철학이다. 팔릴 수 있는 차를 독자적으로 개발 제조하겠다는 것이다. 트럭만을 만들던 그들이 1955년 처음으로 크라운을 개발하고, 이어 코로나, 퍼블리카를 개발한다. 카롤라, 캄리를 개발하여 대중차 시장을 석권한데 이어 렉서스를 개발하여 고급차 시장까지 장악한다. 그러면서 중원의 지존이 된다.
 
의사결정까지는 느리지만 일단 결정되면 그 실행력은 누구보다 빠른 것이 도요타이다. 10조가 넘는 이익을 내는 회사지만 "마른 수건도 짜자"며 원가절감을 부르짖는 회사가 도요타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안주하는 순간 끝난다며 경영진을 채근하는 것이 도요타이다. 도요타를 통해 여러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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