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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경영]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한근태의 사람&경영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입력 : 2005.02.16 11:51|조회 : 3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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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십년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권력도 십 년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부불삼대라는 말이 있다. 부라는 것은 삼대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부자였던 이태리의 메디치는 겨우 200년을 유지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 경주 최씨는 무려 300년간 만석 이상의 부를 유지했다. 부자는 단순히 재테크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300년 이상 부를 유지한다는 것은 철학이 있어야 가능하다. 경주 최씨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경주 최씨에게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가훈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과거는 보되 진사 이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권력이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가능한 멀리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칫 하다가는 집안이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멀리하면 되지 무슨 이유로 그 어려운 진사시험에는 합격하라는 것일까? 조선 시대는 철저하게 양반이 지배하던 사회이다. 양반이 되지 않고서는 신분이나 부를 유지할 수 없다. 또 학문을 해야만 사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고 그래야만 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과 최소한의 계급은 갖되 권력과는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이 비결인 셈이다. 부자들이 다른 것보다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지금처럼 지식과 부가 비례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깨달음이 있어야 부의 유지가 가능하다.

둘째, 인간관계에 바탕 한 노사관계의 실천이다. 최씨 가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최진립 장군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온갖 시중을 들다 마지막에 장군과 함께 죽은 충실한 노비 옥동과 기별에 대해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 최근에는 이조리 가암촌에 이들을 위한 불망비(不忘碑)까지 세워 주었다고 한다. 천대 받던 노비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것은 다른 가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부하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최씨 가문의 이런 행동이야말로 따뜻한 선비정신이고 부를 이렇게 유지하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셋째, 솔선수범과 승승의 정신이다. 함께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간다는 것은 최 부자집의 철학이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는 황폐해진 국토의 개간작업을 국민들에게 권했다. 하지만 노력한 것에 비해 가져가는 것이 적어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경주 최씨는 병작반수제를 과감하게 도입한다. 병작반수제란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수확물의 절반을 지대(地貸)로 주는 것을 말한다. 착취 수준의 기존 지주들에 비해 엄청난 대가였던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유랑인과 소작인들이 기꺼이 최씨 가문 사람들과 일하기를 원했고 그들의 부는 계속 증진할 수 있었다. 또 당시 대지주들은 부재지주로서 주로 한양이나 큰 고을에 따로 살면서 소작료만 챙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최씨 가족들은 그 동네에 같이 살면서 이른 새벽부터 솔선하여 일터로 나갔다. 또한 일을 하면 배불리 점심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하루 두 끼 먹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들은 세 끼를 먹게 해 주었던 것이다.

넷째, 그들은 겸손했고 함부로 부를 자랑하지 않았다. "내 돈 내가 쓰는데 왜 그러냐"는 생각으로 어려운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맘대로 물쓰듯 돈을 쓰는 졸부와는 대조를 보인다. 최씨 집안 며느리들은 결혼 후 3년간 무명옷만을 입어야 했다. 대신 과객은 후하게 대접했다. 일년 소득의 삼분의 1 정도를 과객을 위해 썼는데 참 대단한 일이다. 덕분에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인심을 얻어 어려운 위기도 잘 극복하게 된다. 경주 최씨의 마지막 최준씨는 독립운동을 하다 파산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당시 아리가란 식산은행장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그가 경주 최씨를 도운 이유는 최 부자가 예뻐서라기 보다 주위사람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그 사람이 파산하게 되면 민심이 흉흉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다섯 째, 이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1671년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다. 경주 최씨는 곳간을 과감히 헐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모든 사람이 굶어 죽을 판인데 나 혼자 재물을 갖고 있어 무엇하겠는가? 곳간을 열어 모든 굶는 이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라. 그리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지어 입히도록 하라." 이렇게 말하고 집 앞 마당에 큰 솥을 걸고 굶주린 사람을 위해 연일 죽을 끓이도록 했다. 지금도 그 자리가 활인당이라 이름으로 남아 있다. 또 흉년에는 소작료도 대폭 탕감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말라." 경주 최씨의 또 다른 유훈이다. 가진 자는 그 부를 주위사람들과 나눌 의무가 있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그 옛날에 이미 실천한 셈이다. 일제의 강점 하에 경주 최씨는 독립군을 지원하고 그것 때문에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교육을 위해 지금의 영남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 화려했던 300년 부를 멋지게 마무리 한다.

경주 최씨는 부에 대한 모든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떻게 일구어야 하는지,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두 보여준다. "부자인 채로 죽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라고 카네기는 말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경주 최씨는 진정한 부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운 부자들이 많이 나타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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