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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집도 없잖아?"

봉준호의 살 맛 나는 부동산

봉준호의 살 맛 나는 부동산 봉준호 외부필자 |입력 : 2005.04.28 10:16|조회 : 5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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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면제를 휴지 위에 넓게 펼쳐 놓고, 비닐이 곱게 덮인 한 묶음의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 스케쥴표를 짰다. 지금부터 나는 내 무덤을 설계하고, 유서를 쓴 다음, “봉준호 장례비”라고 쓰인 150만원쯤 넣은 돈 봉투를 그 위에 올려 놓고, 반듯하게 누워서 약을 먹을 계획이다.

“쓱싹, 쓱싹”

춘천행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면서 생각해 둔, 내 무덤의 풍경화를 구체적으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야트막한 야산, 동네가 내려다 보이고 햇볕이 잘 드는 남향… 무덤 옆에는 내 키와 몸무게만큼의 가로 세로를 맞춘 흰색 화강암이 서고, 거기엔 내가 살아온 햇수만큼의 엠보싱 모습의 돌출을 만들었다. 무덤 앞에는 반짝거리는 사각의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런… 땅이 없었다. 누가 150만원으로 땅을 사고, 이것들을 만들어줄까? 제단은 뭣하러 만든담. 찾아올 사람도, 꽃을 놓아줄 사람도 없는데… 참… 그 딴것을 생각하는 것을 보니 내가 아직 세상에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시나브로 어두워지더니 밤이 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이불 속에서 몸만 쏙 빠져 나와 춘천 시내로 걸어갔다. 띄엄띄엄 아주 드물게 사람이 보이는 낯선 거리. 불빛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막국수 집에 들어가 소주 한 병과 막국수 한 개를 시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늘 부족하고, 힘들고 어렵기만 했던 인생의 조각, 조각들… 서울 생활 몇 년간 발판 없음으로 인해 뛰어 보지도 못하는 높다란 뜀틀 같은 막막했던 하루 하루들… 점점 더 높아져만 가는 거대한 벽들과 싸워온 시간들… 나는 하루종일 굶어 빈 속에 소주를 반 병쯤 부어 넣고는 막국수를 한 젓가락 억지로 구겨 넣었다. 휘청거리는 보도블럭과 전봇대들… 나는 수면제를 담은 페트통을 춘천역 화장실 휴지통에 던져 놓고는 다시 청량리행 기차를 탔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456번지 현대아파트 65동 908호. 나는 무일푼으로 H그룹 독신자 숙소에 들어갔다. 이미 대리 중고참인 내가 시골에서 온 신입 사원들 가득한 사원아파트 한구석에 삶의 둥지를 튼다는 것이 무척이나 멋쩍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수많은 군상들… 부끄러웠다.

그러나, 나도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었다. 도대체 아파트라는 것이 뭔데 이렇게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는 괴물이란 말인가? 2개의 트렁크를 들고 들어간 방에는 2개의 작은 책상과 2개의 낡은 침대, 그리고 극도로 지저분한 한 개의 실내 화장실이 있었다. 한쪽 책상과 침대가 비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내 짐을 정리하고, 우두커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몇 년 전, 부대 배치를 받아 빈 관물대에 따블백을 풀어 넣고 고참 오기를 기다리던 텅 빈 내무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밤 11시쯤 되었을까? 아주 코믹하게 생긴 신입사원이 하나 들어왔다. 나는 내 소개를 하고 “잘 지내자”고 했다. 약간 대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낀 스물 일곱, 여덟쯤의 그룹사 직원인 그 꼬마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본 척 만 척도 안하고 자기 침대에 누워서는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곯아대기 시작했다. “왕싸가지”였다. 나는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맥주나 한 잔 하려고 꼬깃꼬깃 접어서 와이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2만원을 꺼내서 책상 위에 집어 던지고 88담배를 피워 물었다.

“왕싸가지”는 그 후로 Room의 3분의 2를 썼다. 새벽이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술 파티를 벌이고, 아침이면 빈 병과 담배 꽁초, 족발 뼈다귀, 닭 뼈다귀 등 쓰레기를 잔뜩 늘어놓고 사라졌다. 팔자에 없는 파출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7월의 어느날 밤. 나는 압구정역에서 내려서 현대아파트 건너편 시장에서 1500원 주고 만두 6개를 샀다. 오늘도 혼자 남아서 일을 하느라 저녁을 못 먹었다. 사원 숙소에 가서 저녁 대신 이거나 먹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왕싸가지”가 있다면 3개나 먹을 수 있을까?

만두 봉지를 들고 현대아파트 단지 내 동사무소 앞을 돌아 나오는데 갑자기 흰 빛이 들어오더니 내 두 다리가 번쩍 들렸다. 한마디로 “오리 날다”였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내 얼굴 위로 짙은 향수 내음이 살충제처럼 스며들어 왔다. 눈을 떠 보니 웬 여자가 나를 빤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흰 빛은 머큐리세이블의 라지에타 그릴에서 쏟아져 나오는 형광등 같은 라이트 불빛이었고, 나는 교통사고 피해자였으며, 그 여성은 가해자였다.

나는 얼른 상체를 일으키고 옷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온갖 잡동사니들을 추스렸으나, 하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전철표와 열쇠 꾸러미, 낡은 지갑, 검은색 만두 봉지와 노란 고무줄에 묶인 만두팩, 단무지 봉지, 나무 젓가락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주민들의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켜 그 코발트색 머큐리세이블을 타고 병원으로 가서 X-Ray를 찍고, 검사를 받았다. 3주 진단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몇 시간을 누워있다가 쩔뚝거리면서 병원문을 나왔다. 녹십자색 병원 간판을 지나려는데, “잠깐만요!”하고 그 여성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십만원짜리 수표 열 장을 내밀었다.

“이걸로 약값 하시고, 양복 한 벌 사 입으세요.”
“양복은 뭐죠?”

내 양복을 바라보니 무릎 밑이 찢어져 있었다. 저런… 하나뿐인 여름 양복인데… 당장 내일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속이 상했으나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횡단 보도를 건너갔다. 갑작스런 사건으로 돈을 벌기는 했는데 몇 주간 몸이 좋지 않았다. 나는 2만원으로 세탁소에서 옷을 짜집기해 입고 며칠간 택시를 타고 출퇴근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퇴근 길에 등 뒤에서 “빵빵” 거리는 자동차 크락숀 소리가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지난 번 “그녀”가 유리 창문을 내리고 웃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네, 뭐 그런대로…”
“지난 번에 너무 죄송했어요. 시간 괜찮으시다면 차나 한 잔 하시죠.”

나는 눈만 껌뻑거렸다. (몸도 안 좋고 할 일도 많은데 밥이나 사주지…) 그녀는 나를 압구정동 골목의 희한한 Bar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시바스리갈’ 한 병을 시켰다. (차나 한 잔 하자더니…)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노란물을 얼음을 타고 한 잔씩 마시고… 고개를 한 번 젖히고 나더니 씩 웃었다. 서로의 이름과 전화 번호를 나누고, 지금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대충 소개했다.

나는 31살, 그녀는 29살이었다. 그녀는 미국 유학생이고, 지금은 방학이라 집에 들어와 있는 중… 말 그대로 압구정동 원주민이었다. 나 같은 이미테이션 시골 촌닭과는 차이가 났다. 그 다음날부터 그녀는 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회사로 전화를 했다. (적극적인 건가? 아님 할 일이 없나?) 우리는 매일 만났다. 그리곤, 압구정동, 청담동, 논현동, 신사동의 Cafe, 노래방, 빵집, 술집, 식당을 전전했다. 신나는 달밤이었다.

8월이 왔다. 우리는 친구와 연인의 중간쯤 됐다. 나는 매일 매일 나가는 데이트 비용으로 그 동안 조금씩 모은 돈을 다 하늘에다 뿌렸다. 그녀는 가무가 뛰어났다. 말로만 듣던 고전 소설의 ‘가무’가 뛰어난 여성 컨셉을 처음으로 진짜 본 것이다. 늘 웃고, 무릎 위에 앉고, 틈만 나면 팔짱을 끼고,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낙천성… 찌들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겁 많은 못난이 나와는 전혀 다른 선진 여성이었다.

8월 하순이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회사에 몸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근을 했다. 그녀와 남이섬에 놀러 갔다. 그녀는 내 스틱 엘란트라를 운전하면서 아주 재미있어 했다.

“야… 이 차 잘 나간다. 오호라… 이것 봐라. 몸이 차와 함께 가네.”

남이섬 북한강이 노을에 젖어 들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까르르, 까르르” 웃기만 했다. 8월말 작열하는 태양과 녹색의 가로수들… 거리엔 바캉스를 다녀온 반라의 여성들… 그녀와 압구정동 흰색 Cafe에서 만났다.

“나 내일 미국 들어가.” 그녀가 조금은 심각하게 말을 던졌다.
“무슨 소리야. 안 가면 안되겠어? 그냥 가을쯤 결혼할 수 없을까?”
“봉, 당신은 집도 없잖아.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士’자를 원하셔. 집 있고, 돈 많은 ‘士者’… 그대신 우리 오늘 호텔에서 같이 잘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Cafe 카운터에 2만원을 던지고 현대백화점 쪽으로 걸어갔다. 시원한 여름의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바람불어 좋은 날”의 안성기와 유지인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부서장인 Y부장 앞에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뭐야?”
“사직서입니다.”

Y부장이 책상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한참 나를 올려다 보았다.

“왜? 이유가 뭔데?”
“돈을 좀 벌어야겠습니다. 부동산이나 빠찡꼬 좀 해볼려구요.”

Y부장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남산만한 배를 숙였다. 꽉 끼인 바지 뒷주머니에서 황토색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는 만원짜리 3장을 과감히 꺼내서 내밀었다.

“가서 사우나하고, 소주 한 잔 마시고, 놀이 공원이라도 가서 놀다 와.”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힘없이 그 돈을 받아들었다. 그리곤, 사우나로 가서 펑펑 울었다. 그 다음엔 돼지 껍데기 한 접시에 소주 2병을 마시고 또 울었다. 놀이 공원을 가려고 발 길을 돌리는데 돈이 떨어졌다.

“짠돌이 부장같으니라고… 줄려면 좀 넉넉히 주지.”

골목길을 서너번 돌아서 동네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았다. “삐거덕, 삐거덕” 몇 번이나 그네를 굴렀을까? 하늘에 달이 커졌다, 작아졌다… 88 담배 연기가 내 얼굴 위로 머리를 풀고 날아 올랐다. 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봉선화가 곱게 피었던 1992년의 여름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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