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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1-1-2'의 반란,'1-1-1,3'의 응징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멘델식 재벌 표기법'의 씁쓸함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입력 : 2005.07.26 12:25|조회 : 28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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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이 왜 이렇게 주식을 많이 팔았지?"
"이번 인사에서는 '1-3-2'가 임원으로 들어오려나"

총수 일가 많기로 유명한 국내 굴지의 모 그룹 직원들이 은밀히 쓰는 용어들이다.
이름도 돌림자로 이뤄져 비슷비슷하다보니 P(1세대), F1(2세대), F2 ,F3...처럼 멘델의 유전학에서 사용하는 표기법을 따라 세대별, 형제 서열별로 번호를 붙인 것이다. 예를 들어, 1-3-2는 '창업주의 세째 자식이 낳은 둘째'가 된다.

◇ '멘델식 재벌 표기' 후진적 지배구조 은유

'두산 사태'를 멘델 표기법으로 정리해보자.

"'1-1-2(창업주 박승직-2세대 장남 박두병-3세대 차남 박용오)'가 '1-1-2-1(박경원 전신전자 사장)'에게 그룹 실권을 넘겨주려 하자, '1-1-1(박용곤 명예회장)'과 '1-1-3(박용성 회장)'이 적자인 '1-1-1-1(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을 부회장으로 옹립하면서 '배반자'를 응징한 것이라는게 현 경영진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1-1-2'는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 '1-1-1'과 '1-1-3'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자기 직속 회사 뿐 아니라 '1-1-5'와 '1-1-6'이 소유한 회사까지 총동원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반격했다.

두산…'1-1-2'의 반란,'1-1-1,3'의 응징
두산의 경우 창업자가 1명이고 적자상속이 이뤄져서 앞이 전부 '1-1...'이라 좀 밋밋하지만 다른 그룹들은 멘델식 표기법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아마 항렬따라 지어진 한국 이름을 구별하기 힘든 외국인들은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멘델식 재벌표기법'은 우리 기업들의 후진적 지배구조에 대한 씁쓸한 은유이다.

지난주초 두산그룹이 형제간의 '아름다운 수평 정권이양'을 발표했을때 신문에 실린 그룹 가계도는 그 '멘델식 재벌표기법'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었다.

가계도를 보면 학생을 제외한 10명의 F3라인이 한명의 예외도 없이 두산그룹 계열사의 과장~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가업'을 이어받았거나 이어받기 위해 경영수업중이라고 해석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두명의 계승자가 아니라 전원이 예외없이 '두산'명함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자랑스럽다"는 박회장의 말과 달리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3세대는 의사로서 명성을 얻은 분도 있고, 나름대로 개인 사업을 하는 분도 있는데 4세대에서는 다시 '내부 지향성'이 두드러진 셈이다. '그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란 인재들이라면 증조할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그늘 말고도 우리사회에 기여할 분야와 능력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소버린의 교훈" 부메랑

박용성회장은 '경영권 이양' 기자회견에서 "소버린이 자선사업하러 온 게 아니다. 배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대기업한테도 엉터리로 하면 너희들도 당한다는 교훈을 줬다"고 말해 과연 재계의 '미스터 쓴소리'답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불과 며칠만에 이제 그 쓴소리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물론 박용성회장을 비롯한 현 두산 경영진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박용오 전 명예회장 측의 검찰 진정서 내용이 사실인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일이다. 박용성 회장 말마따나 "가끔씩 회사 나오던 양반(박용오 전 회장)"이 사실 무근의 소설을 수십장 분량이나 써서 형제를 무고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수사결과와 무관하게 이미 대한민국 열손가락 안에 드는 대그룹이 경영승계과정에서 겪고 있는 볼썽 사나운 모습과 그로 인한 신뢰도 하락, 회사 구성원들의 비애, "저래서 절대 회사를 남에게 못 맡기고 가족끼리 꼭 움켜쥐고 있어야 하는군"이라는 구설만으로도 기업으로선 세습경영의 비용을 막대하게 치르고 있는 것이다.

박회장은 "경영승계를 죄악시하고 사회환원을 강조해 몰아가다보면 시장경제 질서와 자본주의 구조가 무너진다"고도 했다. 적어도 이번 사태만을 두고 보면 박회장의 말은 사회에 던지는 '쓴소리'라기 보다는 '넘는 소리' 즉 '오버'였다는 생각이 든다.

빌 게이츠는 몇해전 워싱턴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22년 전 네브래스카 풋볼팀의 쿼터백을 지낸 사람의 맏아들을 내년에 그 팀의 쿼터백에 임명하는거나, 2008년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1976년 올림픽 대표선수들의 자녀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또 "자원은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야 하지만, 그 자원을 이용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다시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부자들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함께 강단에 섰던 워렌 버핏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앞장서고 있다는건 널리 알려진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시장경제 질서와 자본주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암적인 존재가 아니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 후손사랑보단 기업사랑이 진짜 기업가 정신

경영세습 과정의 갈등이 두산만의 일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룹의 최고 인재들이 모여있는 기획실이나 구조조정본부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게 2세 혹은 3세 문제라는 건 언론계에서도 상식이다.

일찍이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살린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종업원 10만명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정말로 유능한 천재급 경영자를 만나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F1~F3 다합쳐도 기껏해야 수십명에 불과한 총수 일가에서 그 천재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수십만 수백만명의 풀(POOL)에서 뽑는게 확률적으로 낫다.

더구나 우리는 회사 종업원 뿐 아니라 거의 전국민을 먹여살릴 정도로 커다랗게 자란 기업집단들을 갖고 있다. 빌 게이츠의 표현을 빌자면 '신성한 태아(devine right of the womb)'들이 기업의 소유가 아닌 경영까지도 대대손손 넘겨받는 것은 또 다른 '코리안 리스크'일수 있다.

순환출자를 통한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는 '주인있는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인은 '그만큼의 권한에 해당하는 주식을 갖고 있는 株人'이어야 한다는게 시장경제 논리이다. 주주의 할일은 '주인'으로서의 권리행사를 통한 경영감시와 감독, 경영진에 대한 견제이다.

계열사 한곳의 지분 0.7%를 가진 주주가 순환출자의 고리를 통해 그룹을 통째로 삼키려는 행위, 더구나 자기의 것이 아닌 자사주를 동원해 그같은 일을 하려고 생각할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박용성 회장조차도 분개했던 바이다.

얼마전 만난 한 금융권 인사는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으로 영조를 꼽았다. 자식사랑의 부정(父情)을 끊는 피눈물을 흘림으로써 정조라는 걸출한 임금이 탄생할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후손사랑보다는 기업사랑이 먼저인게 진짜 기업가 정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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