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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사람 같아, 나쁜 사람 같아?"

[영화속의 성공학]열 여섯번째 글..영화 '무간도' 시리즈

영화속의 성공학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입력 : 2005.08.12 12:40|조회 : 25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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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즘 도청, 'X파일' 얘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든 간에 정치권과 기업, 심지어 일부 검찰까지도 추하게 뒤엉켜 있는 모습은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을 더 짜증나게 만든다.

별 유쾌하지도 않는 얘기에 '이러니 저러니' 한 술 더 보탤 생각은 없다. 스파이나 도청 등을 소재로 한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꺼낸 것 뿐. 사실 현실에서 벌어지면 큰 일 날 것도 영화속에선 즐거움이 된다. 모든 나쁜 것들은 오로지 상상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난 영화가 좋다.

"내가 좋은 사람 같아, 나쁜 사람 같아?"
스파이를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최근에 나왔던 '무간도' 시리즈는 단연 눈에 띄는 수작이다. 시리즈는 모두 3편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들은 1편이 나왔을 때 홍콩 느와르가 '부활'했다고 난리였다. '대부' 시리즈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속편들은 '그저 그런' 경우가 많은데, 무간도 2·3편은 꽤 탄탄한 짜임새와 완성도를 뽐냈다.

혹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어떤 영화인지 먼저 간단히 소개부터 하자.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다. 무간도는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닷!' 란 스포일러가 화제가 됐던 '식스센스'류의 영화가 아니니까.

영화는 경찰에 들어간 조직폭력배 유건명 (유덕화 분) 스파이와 조직폭력배에 침투간 경찰 진영인(양조위 분)을 축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누가 스파인지는 다 알려주고 시작한다.

(여기서 잠깐. 중국사람 이름을 쓸 때 당연히 중국식 표기법으로 해야 한다. 유덕화는 '류더화', 양조위는 '량차오웨이' 이런 식이다. 하지만 유덕화나 양조위를 그렇게 부르면 아무래도 이상하다. 우리 십대 시절 우상이었던 그 '형님'들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선 그냥 유덕화, 양조위로 간다. ^^; )

유덕화는 보스 한침이 경찰에 심어둔 스파이다. 당연히 스파이는 머리가 나쁘면 못 한다. 유덕화는 경찰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반장으로 승진까지 한다. 반면 양조위는 경찰 간부인 황국장이 삼합회 내부에 심어둔 첩자다. 그 역시 머리가 좋다. 스파이가 되기 위해 경찰학교에서 위장퇴학을 당하지 않았다면 수석졸업은 그의 몫이었다. 양조위는 온갖 위기를 넘기며 보스인 한침의 심복이 된다.

그렇게 그들은 각각 경찰과 조직내에서 정보를 빼내 자기가 원래 속한 조직에 도움을 주기 위해 '외줄 타기' 같은 생활을 한다. 이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서스펜스가 무간도 스토리의 기본 얼개다.

# 2.

중학교때였던 것 같다. 도덕 교과서에 이런 류의 문제가 많이 나왔다. '감기 몸살에 걸려 너무 힘든 상황에서 할머니가 버스에 타셨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땐 '왜 이런 토론주제를 던져 주나'하고 의아해했다. 지나고 보니 세상 일이란게 어떤 특정한 잣대로만 단순하게 바라 볼 수 없단 걸 가르쳐 주려 했던 것 같다.

무간도를 보며 똑같은 식의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다시 한번 반복해서 설명한다. 양조위는 원래 경찰이었다. 그는 황 국장의 비밀 명령을 받고, 삼합회의 비밀을 캐서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 조직폭력배가 됐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이긴 했지만, 그는 엄연히 범죄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감옥에도 왔다갔다 한다. 그렇다면 양조위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유덕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원래 조직폭력배였다가 보스의 명을 받아 경찰학교에 입교한다. 양조위가 빼내 온 마약밀매 정보를 바탕으로 출동하는 경찰의 동향을 보스에게 몰래 알린다. 분명 그는 국가에 열심히 봉사하는 경찰관이지만, 삼합회 보스를 위해 경찰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스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발각되기 전까지 유덕화를 진짜 경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람은 '자아'(ego)를 가진 동물이다. 쉽게 말하자면 '난 어떤 사람이냐'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사람은 선악의 문제에 대해 민감하다. 그런데 사실 선악의 문제는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 믿음의 문제다. 양조위는 폭력사건을 일으킨 후, 법원의 명령을 받고 어쩔수 없이 찾아간 정신과 의사에게 묻는다. "내가 좋은 사람 같아, 나쁜 사람 같아?"

그렇게 양조위는 끊임없이 자신이 '경찰'임을 되뇌인다. 그가 경찰이 된 것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자아를 잃어버리기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렇지 않으면 늘 긴장의 연속으로 흘러가는 이 지옥같은 폭력배와 스파이의 이중생활을 견딜 수가 없다. '좋은 경찰'이라는 확실한 자아가 있기에 양조위는 황 국장에게 '언제까지 스파이로 박아 둘 셈이냐'고 대들면서도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결국 '훌륭한 경찰'로 남을 수 있었다.

물고 물리는 피 말리는 싸움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유덕화다. 껍데기만 경찰이었던 유덕화는 그의 정체를 끝까지 덮어보고자 발버둥친다. 일단 자신을 파견한 보스를 죽여버린다. 또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양조위를 경찰로 침투한 동료 스파이가 죽이자, 그 동료마저도 직접 죽여 버린다. 그렇게 해서 그는 과연 떳떳한 경찰이 될 수 있었을까.

유덕화는 경찰내 조직스파이가 혹 더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한편에선 자신의 처지와 반대편에 있던 양조위에 대한 죄책감에도 시달린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서서히 미쳐버리고 만다. 그에게 세상은 그야말로 무간지옥에 다름 아니다. 왜 그런걸까. 유덕화 역시 되고 싶었던 건 양조위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경찰'이었는데.

그 답을 생각해 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양조위는 좋은 사람, 훌륭한 경찰 자체가 삶의 목적이었다. 그랬기에 모든 고생을 참아가며 훌륭한 경찰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덕화가 훌륭한 경찰이 되고 싶어 했었던건 건, 폭력배라는 과거를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이쯤 되면 성격 급한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양조위처럼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아도 된단 얘기는 절대 아니다. 2편에서 양조위의 상관인 황 국장은 조직폭력배를 뿌리 뽑기 위해 조직 총 보스의 살해를 사주한다. 그로 인해 그는 진정한 경찰의 모습에 관해 고민하며 매우 괴로워하기도 한다. 정당한 목적은 올바른 수단에 의해 더 빛이 나는 법이다.

괜한 오해를 피해 보려다 말이 옆으로 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각자의 인생은 모두에게 정말 소중하다. 그래서 더욱 우리 인생이 어떤 수단이나 방법에 의해 좌우되어선 안될 것 같다. 나를 규정지을 가치, 참된 삶의 목표 이런 것들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흔들림이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하고 고고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도 역시 아니다.

우리 모두 관심이 많은 돈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예전에 인터뷰했던 한 CEO는 이런 말을 해주었다. "많이 듣던 이야기일 겁니다. 사업을 한 20년 넘게 해 보니 정말 실감하겠더군요. 돈을 쫓아 다니면 절대 돈이 붙지 않습니다. 최고의 물건을 만들겠다, 손님들에게 기쁨을 주겠다, 이런 목표를 쫓다보면 자연스레 돈이 따라 옵니다."

최근 들어 '10억원 모으기' 등 재테크 방법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돈을 모으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10억원을 모으면 할 수 있는 것들, 그래서 누릴 수 있는 삶의 기쁨들에 대해 생각하자. 물질 만으로는 절대 행복이 이뤄지지 않는다. 행복의 형태를 이뤄내는 접착제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삶의 가치관이나 목표가 아닐까 싶다.

# 3.

무간도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 될 당시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새로운 체제에 접하게 된, 가치관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던 홍콩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경찰이지만 조직이고, 조직이지만 경찰인 두 주인공의 모습은 혼란스러운 홍콩을 상징한다.

그런 모습은 요즘 우리 사회의 어지러움과도 사실 많이 닮아 있다. 한 쪽에선 지난 모든 것들이 나쁘다며 지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새로 뭘 어떻게 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또 다른 한 쪽에선 언제까지나 '이대로'를 유지하고 싶어하면서도 '영원히 이대로'가 불가능하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뭔가를 찾지 못한다.

최근 벌어지는 도청, X파일 논란은 그런 사회의 혼란상이 모두 압축되어 진 현상이 아닐지.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하든 권력을 잡아야 하고, 그렇게 잡은 권력을 길게 이어가야 하는 정치인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결탁하려는 재벌들, 그 사이에서 힘을 유지하려는 일부 정보기관원과 검찰들. 이들의 빚어내는 음모와 배신의 세계는 무간지옥에 다름 아니다.

예전에 읽은 글에선 우리 모두가 '∼답게'를 지키며 살자고 강조하고 있었다. 정치인은 정치인답게, 기업인은 기업인답게, 검찰은 검찰답게, 정보기관은 정보기관답게…. 다들 그렇게 살아주면 좀 좋으련만, 대부분 지도층이 중심을 잃고 돌아가는 어지러운 세상이다.

그들은 그렇다 해도 우리 각자는 우리의 소중한 삶을 어떻게든 꾸려가야 한다. 나아갈 목표와 흔들리지 않은 삶의 가치를 다잡자. 그래야 하나뿐인 우리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사족. 무간도를 소재로 꽤 오랫동안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훨씬 더 재미나게 쓰고 싶었는데 그만 글이 계도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하찮은 내게 무슨 자격이 있어서 말이다. 그래도 기자 나부랭이랍시고 시사적인 사안에 대해 흥분해 이 글이 가진 원래 본분과 방향을 잃어 버렸다.

코너 시작할 때부터 밝혔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삶의 모습속에서 참된 삶과 진정한 성공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했던 다짐 말이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실컷 읽었더니 '별 재미없더라', 아니면 '도청 얘기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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