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머니투데이 트위터
통합검색

오늘의 증시

오늘의 증시
코스피 코스닥 원/달러
2339.17 827.84 1115.30
보합 15.72 보합 6.71 ▼5.1
메디슈머시대 (7/6~미정)
블록체인 가상화폐

이브생로랑과 노무현 대통령

[패션으로 본 세상]세상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리려면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5.10.05 12:25|조회 : 17609
폰트크기
기사공유
편집자주패션 컨설팅 회사인 '말콤 브릿지'(Malcom Bridge)를 운영하는 김소희 대표가 새로이 패션 칼럼을 선보입니다. 김 대표는 이 칼럼에서 패션 트렌드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이슈들을 분석하는 글을 싣게 됩니다. 김 대표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그동안 국내 유수 의류업체에서 패션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현재는 (주)엘지패션 'TNGT'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브생로랑과 노무현 대통령
몇년전 살아있는 거장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이 패션계에서 은퇴했다. 그의 인생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쓸쓸한 감회였다.1957년, 약관의 나이로 크리스챤 디올의 뒤를 이은 이래, 60년대에는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70년대까지도 세계패션의 제패制覇라 할 만큼 맹위를 떨치던 생로랑이 아니던가.

그러나 생로랑의 명성은 8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이무렵 그는 특히 기성복이 자신의 제품을 카피하는 것을 무척 괴로워했는데, 이 때문에 누구도 자신을 카피할 수 없도록 순금으로 된 의상을 만드는 등, 집착적인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후 그의 브랜드 'YSL'은 이탈리아의 '구찌'사에게 넘어갔다. 이 때부터 YSL의 디자인은 생로랑이 아닌, 까마득한 후배 톰 포드(Tom Ford)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생로랑은 소수의 맞춤복 라인을 담당하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되었지만, 이마저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급기야 은퇴를 선언하기 이른 것이다.

그의 은퇴식에서, 이제 젊은 날의 신경질적인 예민함은 찾아볼 수 없는 백발의 생로랑이 걸어나왔다. 그는 몇년간 심한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밝히면서 '패션이 나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커다란 슬픔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말은 식장에 나와있는 청중들의 심금을 울렸다.패션 트렌드는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고 주도했던 그가 어찌하여 사회 트렌드는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일까.

무엇보다 그를 슬프게 했던 것은 정당성의 문제였다. 수작업을 통해 세심한 공을 기울인 것만이 진품으로 인정받던 시대, 그 시대에 그의 방식은 진정코 옳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이제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유의 창의성보다 '팔릴만한 옷을 알아보는 능력'이 되고 있다. 생로랑으로선 자신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자존심을 버린 싸구려 야합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무엇이 정석(定石)인가'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같은 잣대에서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면, 나머지는 사이비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정답이 거부되고 나면 다른 것은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이러한 경우야말로 가장 딱한 경우들이다. 왜냐하면, 시대적 변화속에서 가치를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천성이 보수적인 사람들보다 대체로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믿고있는 가치의 소중함을 알기에 종종 부질없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지만, 결국 실체없는 바람과 싸움으로써 번번이 지고, 상처받는다.

9월 한 달은 연정론으로 정치권이 시끌시끌했다. 29%라는 참담한 지지율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직에 머물 정당성을 찾지 못해 다양한 구상들을 내놓았다.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든가, 연정을 하자든가, 마치 29%라는 요소를 정면에 놓고 이와 싸움이라도 벌이려는 듯 심각한 제안이 잇달았다.

그러나 지지율은 그렇게 정면으로 맞서야 할 문제는 아니다. 낮은 지지율의 실체는, 트렌드의 입장으로 보자면, 높은 반대율이라기 보다는 대체로 시큰둥해져버린 '무관심'들이다. 무관심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차라리 질시하고 있는 상대는 싸움이라도 할 수 있지만 무관심한 상대에게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시큰둥한 이에게 이런 저런 제안을 던져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무관심의 영역에 놓인 사람들이 종종 설 곳없는 소외감과 함께, 싸울 대상을 찾지 못하는 난감함을 동시에 겪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마땅한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떤 아이디어로 5분만에 벗어날 재간이란 누구에게도 없으며, 그런 생각을 하다간 자충수만 두게 된다.

무관심을 되돌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스스로를 버리고 사람들의 관심사에 자신을 던져넣던가, 아니면 스스로의 방식들로 '작은 성공'들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무심한 대중들은 의외로 공정했다. 성공의 징표들이 뚜렷하다면, 사심없는 대중들은 주변의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체로 지지해준다.

작은 성공들을 쌓아가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무관심은 관심으로 돌아설 뿐 아니라, 상상못할 힘까지 불어넣어준다.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바로 말콤 글래드웰이 지칭한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즉,'때가 무르익었다'고 정의되는 순간들이다. 대연정이란 엄청난 목표는 사실 때가 무르익어도 한참 무르익은 뒤에나 가능한 목표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반이 남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막막한 순간에 국민들이 결정한 하나의 묘수였다. 국민들은 그가 숨겨져있던 수퍼맨이길 바랬지만 막상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것이 시큰둥의 이유라면 이유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국민들은 탄핵으로부터 그를 지켰고, 지금도 대통령이 조기사임하거나 하는 혼란을 바라진 않고 있다. 여기까지가 현실일 뿐이며 그 이상의 역사는 아직 씌여진 바 없다. 부디 2년 뒤에 생로랑과 같은 쓸쓸한 은퇴사는 듣지 않게 되길 바란다.

  • 0%
  • 0%


오늘의 주요뉴스




종료된칼럼

베스트클릭

실시간 급상승

10.0초

5분간 수집된 조회수 기준

오늘의 운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