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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식 펀드로 해결한 교통사고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입력 : 2005.10.11 12:46|조회 : 2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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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투신사 임원을 지낸 J씨는 여의도에서 증시의 '휴먼 인디케이터(인간 지표)'가운데 한명으로 통했다. 그가 운용관련 부서로 발령나면 이후 증시가 '대세상승' 가도를 달렸고, 후선부서로 배치되면 장이 고꾸라졌다는 것이다(J씨가 모 기관 운용담당 책임자 공모에서 최종 후보군에 올라 있는 상태라니 지켜볼 일이다).

특정인이 아닌 부류별 인디케이터도 있다. (여의도가 아닌)강남의 고급 룸살롱 아가씨들이 증권면을 읽기 시작하면 장이 좀 불붙을 조짐이고, 아이 들쳐맨 아주머니가 객장에 모습을 나타내면 끝장이라든지 하는 식이다. 검증과 확인을 중요시하는 교수님,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 판사님, '뒷북'이 전문인 기자도 마지막에 증시에얼굴을 내미는 인디케이터 직군에 속한다는게 증시의 정설이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증시엔 진짜 '실력'으로 인디케이터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시골'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P(42)씨는 대학때부터 숱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주식 실력을 쌓아왔다.
스스로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몇년간 지켜본 그의 감각은 연초 "대한민국 투자자들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장이 열릴 공산이 크다"고 했던 전망을 굳이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인디케이터'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며칠전 P씨를 만났다.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데 그날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왔다고 했다. 이달초, 운전기사 혼자서 차를 몰고 가다 서울시내 네거리에서 1톤 트럭에게 들이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사고 뒷처리 때문에 일주일 가까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당신 내가 누군지 몰라?"라고 안따져도 보험사가 '알아서 다~ 해주는' 세상에 웬 고민을 일주일씩이나 했을까. 사연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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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저녁, 교차로를 지나던 P씨의 승용차는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오자 급정거했다. '계속 가겠지'하고 바짝 뒤따라오던 1톤 트럭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꽁무니를 들이받았다.

P씨의 승용차는 불과 두달전 새로 장만한 '아우디 A8'. 운전기사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차량 수리비 견적만 4500만원이 나왔다. 들이받은 1톤 트럭도 물론 앞부분이 박살이 났고, 운전사는 안면부위를 크게 다쳤다.

'안전거리 미확보'로 거의 모든 책임을 지게 된 1톤 트럭 운전사는 적재함에 기계를 싣고 다니면서 노점상을 하는 이동식 꽈배기 판매상이었다. 퇴출된 D은행원 출신으로 명퇴금 받은 돈은 몇차례 사업실패로 다 까먹고 마지막으로 부인과 함께 꽈배기 장사에 나선 터였다. 고등학생 딸이 둘에 매달 수입은 200만원 정도. 재산이라곤 트럭 한대와 경기도의 6000만원짜리 조그만 아파트 한채가 전부였다.

P씨 입장에서는 보험처리를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보험사가 구상권을 청구, 가해자 가족은 생활수단을 모두 잃고 길거리로 몰려날 판이었다.
1주일간의 고민끝에 P씨는 쉽지 않은 결론을 내렸다.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자기 돈을 들여 차를 수리하기로 한 것이다. 400여만원의 1톤 트럭 수리비도 부담했다. 치료비 등을 포함, 6000만원에 가까운 '생돈'이 들어가게 됐다.

돈자랑 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이 있는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면해줄수는 없는 일. P원장은 가해자에게 '의무'를 요구했다.
자신이 지정하는 적립식 펀드에 매달 50만원씩, 5년간 붓는 것으로 '빚'을 갚도록 한 것이다. 5년뒤 원금과 수익금은 가해자 몫으로 했다. 단, 신의 성실의 의무를 지키지 않고 납입을 중단한다면 곧바로 아파트를 처분해 빚을 받아간다는 조건이었다. 지난주 가해자 아파트에 근저당을 설정한 P씨는 요즘 좋은 적립식 펀드를 고르고 있다.
가해자가 5년간 의무를 다하더라도 '전화위복'이 될만큼 수익이 날지, 아니면 그나마 까먹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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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기자를 좀 했답시고 "자기 재산에서 '90 -자기 나이' 만큼의 비율은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늘 했었다. '이번엔 다르다'고 했다가 독자를 속이고 스스로도 속은 경험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역시 이번만은 달랐으면 한다. 시장과 세상을 밝게 보는 낙관론자는 돈 벌 확률이 50%는 되지만, 비관론자는 돈벌 확률이 0%라는 상식때문만은 아니다. '증시가 산업자본의 조달통로'이자 '산업과 세상을 이해하는 창'이라는 경제원론에 충실해서도 아니다.
'부동산은 투기이고 주식은 투자'라는 국정홍보 개념이 아니래도 월급만으로는 30평 아파트 한채 사기가 힘든 샐러리맨들에게 주식은 포기할 수 없는 재산증식 수단이기 때문이다.

P씨의 교통사고 이야기를 듣고 주가가 계속 '한없이' 올라주기를 바라는 작은 이유 하나가 추가됐다. 교통사고의 해법으로 '적립식 펀드'를 생각해낸 휴먼인디케이터 P씨, 그의 해법이 적중해 5년뒤 가해자가 활짝 웃었다는 기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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