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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인트는 깡통에 담겨 있을까

[패션으로 본 세상]발전적인 의심은 세상을 바꾼다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5.11.29 12:37|조회 : 2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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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페인트는 깡통에 담겨 있을까
"더치보이(Dutch boy)라는 회사가 어떻게 페인트 업계를 뒤흔들었는지 아는가? 이건 너무 간단해서 무서울 정도다. 그들은 깡통을 바꿨다."

세스 고딘(seth godin)은 자신의 책 '퍼플 카우'(purple cow)에서 더치보이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더치보이는 흰색의 플라스틱 주전자형 용기에 페인트를 담아 판매한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단숨에 업계를 석권했다.

기존의 페인트 용기는 철깡통으로 만들어진 것들로, 들거나 뚜껑을 여닫는 것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존재해왔었다.

더치보이는 바로 여기에 의문을 품었다. 그들이 그렇게 존재하는데 과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놀랍게도 거기엔 관습이외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례가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즉, 관습의 허를 찔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에 대해 의심을 품거나 오류를 발견해내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둥근 지구 위에 서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인류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의심의 자질'은 순수하고 진취적이며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 특성 중 하나이다. 이들은 기존의 시스템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하며, 종종 이같은 뉴 시스템은 세상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의심의 자질'에 관한 몇가지 오해들이 발견된다.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의심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자질'로 여겨지는 경우다. '의심없이 믿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인식, '조건없이 믿는 것이 순수하다'라는 인식은 과연 모든 경우에 타당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믿어왔던 것, 혹은 자신이 생각해보지 않은 의문들이 제기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사람은 그에겐 위협적이며, 자신을 두렵게 하는 사람의 자질은 위험하고 나쁜 자질로 쉽게 오인된다.

새로운 의문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한 사람들은 벼랑 끝에 선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들이 '의심하는 것은 나쁘다'라고 말할 때의 속뜻은 '나는 의심많은 사람이 무섭다' 정도로 해석되는 것이 맞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그의 시에서 이같은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소화능력은 놀라웁고, 그들의 판단은 틀릴수도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사실을 믿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는다.
필요한 경우에는 사실이 그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쁜 의심'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여기선 의처증과 같은 병적인 의심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쁘다기 보다는 '한심하다' 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같은 의심은 귀가 얇은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귀가 얇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스스로의 결단에 대해 확신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우유부단한 사람들과는 달리 결정은 내릴 줄 알지만 이를 자주 바꾼다. 이들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속지 않으려고 의심한다.

따라서 의심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데 사용하지 않고, 속았다는 가정하에 대비책을 마련해두는데 사용한다.그러나 그들이 세운 갖가지 대비책은 전제된 가정이 곧잘 빗맞아 버림으로써 쓸모없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또 우유부단한 사람들의 의심 역시 참기 힘든 고역이다. 이들의 의심은 때론 빽빽한 논리로 비춰지기 때문에 더더욱 반감을 산다. 가끔 이같은 종류의 의심을 늘어놓다가 고객에게 면박을 당하는 컨설턴트들도 보게 된다.

이들은 고객의 비즈니스가 너무도 많은 근거를 결여하고 있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자신이 귀하의 사업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의심해내었는지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세세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도, 심지어 개인적 소견까지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함부로 결론을 내렸을 때 이러저러한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또다시 설명한다.

순수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왜 페인트 통은 불편한데도 저렇게 생겼을까'라는 것에 의문을 던지는 동안 이들은 아무 의심도 품지 않고 있다가 '우리 페인트 통을 이렇게 바꿉시다'라고 말하는 순간에 근심스런 표정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페인트통을 과연 그렇게 바꾸는 것이 과연 적합한 일입니까' 를 두고 끊임없이 근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모든 결단이란 불가피한 리스크의 여지를 감수하거나 각오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의심을 찬양함'(Lob des Zweifels)이라는 시를 통해 의심의 위대함과 오해, 우유부단한 이들의 오류를 날카롭게 꼬집은 바 있다. 이 한 편의 멋진 시는 오늘날 우리에게 '발전적인 의심'과 '부정적인 의심'의 차이를 속시원히 알려준다.

자신에게 세상을 주도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 시를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시가 가져다 주는 폭넓은 깊이와 날카로움에 만족한다면 당신은 적어도 통찰력을 지닌 사람, 발전적인 의심의 자질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 '도대체 의심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불행히도 당신은 세상을 주도할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로또와 같은 행운이 어쩌다 찾아와 당신에게 충분한 돈과 권력이 저절로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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