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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우열을 비교해선 안된다?

[패션으로 본 세상]다양한 잣대 통한 성숙한 비교문화 필요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6.05.10 12:53|조회 : 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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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우열을 비교해선 안된다?
"왜 저를 다른 직원과 비교하시는 거죠. 이런 대접은 참을 수 없어요"

모 기업의 자신감 넘치는 신참 하나가 사표와 함께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의 말인즉슨, 상사가 언제나 자신의 다른 직원과 비교하는 바람에 견딜 수 없었다는 것. 비교란 그렇게도 참을 수 없는 것일까.

모 TV CF에서 '아이들의 우열을 비교해서는 안된다"라는 카피가 등장한다. 사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런 생각에 익숙해 있기는 하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안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누구나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 기타 등등.

비교에 관한 이같은 생각들은 매우 통속적인 오해들이다. 어디서 그런 오해가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억지스런 관념은 세상의 오롯한 진실을 가리기엔 부족한 법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은 언제나 비교되며, 누구나 실적에 관계없이 같은 대접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진정으로 풍요로운 이유는 비교의 잣대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경쟁사회다. 경쟁사회는 비교가 없는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비교가 존재하는 세상, 그것도 하나의 잣대가 아닌 무수히 많은 비교의 잣대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아이들의 우열은 하나의 잣대로만 비교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아무런 우열을 비교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어른들이 해야 할말은 '얘들아 너희들은 모두 똑같단다'가 아니라, 아이들 각 개인에게 '너는 이 점은 뒤지고 있지만, 이 점은 다른 애들보다 앞서는구나' 를 또렷이 지적해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교라는 것을 너무나 비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비교란, 실제로는 세상을 활기차게 만들 열정의 샘물과도 같다.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를 강요할 때보다는, 적어도 하나의 잣대에서는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느낄 때 '살 맛'을 느낀다.

사회 전체가 '비교'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 여기에는 휴머니즘보다 먼저 부패의 종균이 파고들게 된다. 왜냐하면, 비교가 양성화되지 못한 곳에선 '정당하지 못한 서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열을 가리는 명확한 기준이 공유되어 있지 않기에 이해할 수 없는 서열이 생겨나도 방어할 재간이 없게 된다.

학생들의 성적이 정확히 비교되지 않고, 우열이 모호하게 다뤄지는 학교일수록 내신 조작이 일어날 확률이 높으며, 사원들의 능력이 정확히 비교되지 않는 회사일수록 개인적 취향, 혹은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인사가 난무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교를 나쁜 것으로 오해하고 자라난 세대들의 무저항력이다. 이들은 비교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나아가 비교문화에 접하게 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모른다.

누군가 월등한 평가를 받을 때 이를 축하하거나 인정하는 자세, 혹은 자신이 열등한 평가를 받을 때 쿨하게 받아들이고 분발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최근 TV에서 자주 방영되는 '서바이벌'형 스타 발굴 프로그램들은 우리의 어색한 비교 문화를 그대로 비추어 준다. 평가에 임한 심사위원들도 확신에 차 있지 못하지만, 심사위원 앞에 선 후보들 또한 평가 때마다 본인도 모를 소리들을 늘어놓곤 한다.

한 후보는 부족함을 지적하는 심사위원단에게 '그래도 저는 저만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라며 고집스런 자기 주장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그가 실제로 그런 색깔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지적되고 있는 부족한 점을 대면하고 극복할 자세는 결국 갖추기 못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숙하지 못한 비교문화는 어설픈 개성의 주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격이 떨어지는 실력을 '모자란 것도 개성'이라는 식으로 어필하려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개성은 중요한 요소지만, 완숙하게 꽃피지 않는 한 미완의 씨앗에 불과하다.

얼마 전 모 공익성 광고에서,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취지하에 제작한 광고에서, 이해하기 힘든 카피를 맞닥뜨렸다. 초등학생들을 평가하면서, 누구는 우리반 공부 1등, 누구는 우리반 청소 1등, 누구는 우리반 방귀 1등이라며, 각 분야에서 아이들을 동등하게1등으로 추켜세우는 내용이었다.

글쎄.. 하지만 엄연히 '청소'와 '방귀'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다르다. 사회적 효용성과 무관한 가치들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이 과연 다양성의 인정인가. '무엇이든 하나면 잘하면 된다'는 명제는, 사회적 효용성을 교육하지 않는다면, 어수선한 개인주의를 양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도 '나름대로1등'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전에,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한다면 사회적 삶이란 불가능하다. 이것은 일종의 룰(Rule)과 승패를 따르는 스포츠맨십이며, 바로 이것이 선진국일수록 인재 평가에서 스포츠의 경험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교를 참을수 없어 사표를 던진 그 신참은, 과연 그가 그저 비교라는 것 자체를 참을 수 없었던 철부지였을까, 아니면 편협한 잣대로만 가해지는 비교에 희생된 창의적 인재였을까.

한 개인과 사회가 만나는 과정은 서로 손을 마주 잡는 악수와도 같다. 양쪽에서 손을 내밀어야 하며, 그것이 올바로 맞잡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연이 시작된다. 이같은 기회를 자연스럽게 맞이하려면, 사회가 내미는 손이 어떠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때로는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보고, 인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성숙한 비교문화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비교를 외면하려는 습관은 단순히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난 돌에 정을 치려는 권위적 평등주의로 나아가기도 한다.

세상 사람이 다 동그라미가 되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모가 난 사람을 정을 때려 동그라미로 만들어버린다면, 세상의 풍요로움은 과연 어디에서 존재할까. 진정한 휴머니즘이라면, 차라리 그에게 정을 때려, 더 빛나는 별로 만들어주는 것이 낫다.

모든 연마를 거부하고 모난 돌인 채로 살아갈 재간이란 없다. 또한 연마라는 것이 우리 모두 똑같아 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별로 스스로를 연마하고 싶다면, 적절한 비교는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도와준다.

그 결과 누구는 완숙한 세모가 되고, 누구는 완숙한 네모가 되고, 누구는 완숙한 별이 되는 것이 도저히 비교가 불가능한 동그라미 투성이 세상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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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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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돌  | 2006.05.13 00:27

사실입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대놓고 비교하는건 하지않는게 좋겠습니다.안그래도 서로들 갈구면서 살고 있는데...^^그래서 그 여직원이 사표 쓴것일테고..(내보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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