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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착한 남자

남들이 원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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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착한 남자
'깜짝 은퇴'를 선언한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이 영화에는 나쁜 남자와 착한 여자가 나온다. 나쁜 남자는 착한 여자를 철저히 망가뜨린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다.

그런데 그에게도 어딘가 선량한 구석이 숨어 있다. 반대로 착한 여자는 나쁜 것에 물들며 받아 들인다. 이렇게 나쁜 남자의 선량한 구석과 착한 여자의 불량한 구석이 만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 동정하고 의지한다.
 
나는 이 영화가 싫다. 불편한 얘기를 너무 적나라하게 끌고가기 때문이다. 감독은 내가 불편해 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나는 무시당한 기분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바로 내 안에도 나쁜 것과 착한 것이 공존하고 있다는 비밀을 들춰내는 것 같다.
 
영화 평을 쓰려는 게 아니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한 검사가 피의자의 수뢰 혐의를 밝히기 위해 그의 통화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단서는 잡히지 않고 애인이 셋이라는 사실만 드러난다.

그래서 그 애인들을 조사했더니 그들 역시 두세명씩 애인을 두고 있다. 이 얘기를 들으니 우리들 사이에 거대한 `애인 사슬'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나만 몰래 애인을 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애인 사슬'을 잇는 한 부분일 뿐이다. 하긴 어둡고 은밀한 곳에 뇌물과 청탁같은 `부패 사슬'만 있으란 법은 없다.
 
"그러면 당신은?" 혹시 이 대목에서 찔리는 분이 이런 질문을 던질 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애인이 있는가? 그건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비밀이니까, 나의 고백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대신 나의 착한 구석은 자랑 좀 해야겠다. 나는 `착한 남자'다. 어렸을 때는 말 잘 듣는 아이였고,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지금은 착한 가장이요, 착한 아빠다. 직장에서는 마음 좋은 `물부장'이고, 사회에서는 선량한 시민이다.

이처럼 착해지기 위해 애도 많이 쓴다. 빠짐 없이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주변의 관혼상제도 섭섭치 않게 들여다 본다. 힘들고 속상해도 남자답게 꾹 참고 의연하게 표정관리를 한다.
 
이렇게 남자다움을 과시하려는 속성을 `마초 근성', `남자다운 남자'인 척 하려는 증상을 `존 웨인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우리 식으로는 `변강쇠 증후군' 또는 `훈이 아빠 증후군'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오래 살려면 이런 자세를 빨리 버리라는 게 의사들의 충고다. `착한 남자'들이 복을 받기는 커녕 일찍 세상을 뜨는 것은 불행이다. 더구나 그 착한 남자들이 죽음 앞에서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며 가슴 아픈 회한을 느낀다면 참 억울한 일이다.

호스피스 운동에 평생을 받쳤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들은) 그동안 자기가 맡은 역할이 너무 무거웠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지금 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기쁘다.' 또한 자신이 그동안 다른 이들을 속여 왔음을 깨닫습니다. '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려 했다. 착하게 굴어서 다른 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면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나는 사실 착하지 않다. 착한 건 내가 아니다. 그건 내가 맡은 역할을 남의 기대에 맞춰 착하게 수행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착한 척 하다 보니 이젠 헷갈린다.

더구나 나의 다른 한편인 나쁜 구석은 잘 숨겨 놓았으니 보이는 건 '착한 남자'뿐이다. 한쪽은 공공의 비밀로 감추고, 다른 한쪽은 부풀리면서 사니 진짜 나를 대면할 틈이 없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나는 오늘도 '착한 남자' 되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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