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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가 세상을 사는 방법

[패션으로 본 세상]디자이너 샤넬과 스키아파렐리의 삶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7.01.16 12:20|조회 : 2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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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년전, 꿈많은 두 소녀가 있었다. 파리의 한 소녀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 버려져 어느 고아원에서 춥고 외롭게 자라났다.

한편 다른 한 소녀는 로마의 부유한 학자집안에서 태어나 다채로운 성장기를 보내고 있었다.

가난한 파리의 소녀가 ‘옷’을 접하게 된 것은 어느 재봉실의 견습공으로 일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녀는 낮에는 바느질을 하고, 밤에는 가수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한편 로마의 유복한 한 소녀는 끝없이 부모님을 놀라게 하는 천둥벌거숭이였다. 그녀는 부모의 뜻대로 수녀원학교로 보내지던 중 그대로 도망가 자기 마음대로 천조각을 두르고는 무도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파리의 견습공은, 밤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가수로서의 그녀는 독특한 매력으로 널리 알려졌고, 결국 이를 계기로 어느 부호의 정부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 여러 명의 부호를 사귀게 되면서, 이들의 도움으로 파리에 작은 모자 상점을 열게 된다.

로마의 말썽장이 아가씨는 18살에 시집갔다. 그러나 그녀는 고루한 결혼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이혼한 뒤 딸아이 하나를 데리고 싱글맘이 되어 파리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원했던대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파리의 작은 모자 상점에서 출발한 여성은 오늘나 최고의 명품 ‘샤넬(CHANEL)'을 세운 코코 가브리엘 샤넬(coco gabriel chanel)로 오늘날 기억된다. 그리고 로마에서온 싱글맘은 현재 레이블은 사라졌지만 동시대를 샤넬만큼이나 풍미했던 엘자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다.

이 두 디자이너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면서 꼭같이 사랑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디자인 경향은 극과 극이었는데 샤넬이 단아하고 여성적이며 단순한 아름다움에 집중한 반면, 스키아파렐리는 위트있고, 예술적이며 다소 기괴한 디자인들을 선보이곤 했다.

이 두 여성은 종종 ‘라이벌’처럼 비교되곤 한다. 둘다 성공을 거두었지만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고, 디자인 스타일이나 하우스의 경영방식 또한 지극히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녀들의 성공 스토리는 바로 여기까지이다. 이 표면적인 스토리들은 자칫 샤넬에 대해 ‘요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거나 스키아파렐리에 대해 ‘운좋은 부잣집 딸’이란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샤넬이 느꼈던 인간적인 고뇌들은 상상 이상으로 깊었다. 그녀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던 절실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다른 정부들과 동급으로 비교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샤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스스로의 가치를 정의해내는 일이었다. 그녀는 양가집 규수들이 즐겨입고, 이를 흉내내려던 창부들이 추종했던 화려하고 하늘거리는 의상들을 거부했다.

대신 그녀는 전혀 다른 사회적 계급인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의 당당함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아주 심플한 블랙의 드레스나 저어지를 활용하여 소박하고 단아한 옷들을 입기 시작했다.

이런 옷을 입고 나타나는 샤넬의 얼굴에 위축된 표정이 엿보였다면 분명코 초라했을 옷들이었다. 그러나 샤넬의 절실한 자기 주장은 그녀에게 불굴의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그녀의 당당한 매너는 역설적으로 그 옷들을 지극히 모던하고 창조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은 마치 같은 미니 스커트를 입었더라도, 자기 스스로도 너무 짧은 것을 입은 것은 아닌가 하며 쭈삣거리는 여성들은 추해보이지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여성들은 멋지고 섹시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실제로 부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세인의 말들은 많지만 샤넬이 의도적으로 남성들을 이용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녀의 그런 매력이 끊임없이 남성들을 다가오게 만들었던 하나의 독특한 유혹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한편 스키아파렐리는 천진난만한 호기심 덩어리였다. 미술을 사랑했고, 실험적인 옷들을 만들었으며, 달리와 같은 당대의 예술가 친구들과 폭넓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의 옷들은 샤넬처럼 의표를 찌르는 옷이라기 보다는, 입고 사교계의 어느 파티에 등장했을 때, 단박에 화제의 중심에 올라설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어머, 이것은 요즘 유행하는 초현실주의로군요’ 라며 말이다.

여성들이 샤넬의 옷을 선택함으로써 남성들의 시선을 끌기를 기대했다면, 스키아파렐리를 선택할 때에는 자신이 위트있는 화제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명의 여성은 1920-30년대에 활동하다 잠시 샵을 접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50년대에 또 나란히 샵을 재오픈하게 된다. 재오픈을 알리는 컬렉션에서 두 여성은 모두 평단의 혹독한 비평을 감수해야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스키아파렐리는 샵을 닫기로 결정한 반면, 샤넬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의 샵을 지속해나갔다. 비평가들은 20년전의 옷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며 비판했지만 그녀는 그 똑같은 옷으로 바로 이듬해부터 다시한번 대박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불굴의 자긍심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스키아파렐리는 그 후로 가끔 언론에 얼굴을 비추기도 하며 잊혀져갔다. 그리고 ‘My shocking life'라는 책도 썼지만 이 책 또한 현재는 잊혀져가고 있다.

샤넬은 스키아파렐리를 인정하지 못했다. 둘에 대한 ‘라이벌’ 인식은 샤넬의 이같은 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샤넬이 인정한 디자이너는 매우 드물었다. 입생 로랑을 극찬할 때 ‘샤넬도 인정한 디자이너’란 표현이 쓰일 정도다.

우리 주변에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공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극과 극이라는 샤넬과 스키아파렐리, 두 여성의 삶에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잭 트라우트는 마이클 포터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효율성이란 경쟁에 있어 남보다 앞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전략이란 자신이 1등할 수 있는 레이스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것.

얼마전 모 잡지 기자가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물어왔다. 디자이너들의 삶이야 워낙 드라마틱하여 하나 둘을 꼽아내기 어렵지만,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샤넬과 스키아파렐리였다.

둘다 자신의 꿈을 지지하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인정하는데 인생을 던졌기에 성공했으니 이런 것이 바로 드라마틱하다는 것이 아닐까. 성공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지나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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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소셜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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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리상진  | 2007.01.17 14:28

김소희대표님. 두사람의 성공이유를 명쾌하고도 핵심을 꿰뚫는 논조로 풀어주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글이 기대되네요. 벌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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