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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vs신의주] <하>베일벗는 동북아공정

머니투데이 단둥(중국)=이승제·이상배 기자, 사진=최용민 기자 |입력 : 2007.02.15 09:26|조회 : 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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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시를 벗어나 40분 남짓 달리자 호산장성(虎山長城)이 눈에 들어온다. 일견 세운 지 얼마 안되는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고구려 천리장성의 마지막 보루인 '박작성(泊灼城)'으로 알려져 있다. 요동반도의 남쪽 해안선을 따라 지은 3차방어선의 끝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고구려 박작성을 개조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호산장성. 옛 성터들을 이은 것으로, 성인 4명이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구불구불 뻗어있다. <br />
↑고구려 박작성을 개조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호산장성. 옛 성터들을 이은 것으로, 성인 4명이 지나갈 정도의 폭으로 구불구불 뻗어있다.

막상 성에 올라보니 겉보기만 그럴 듯 했지 볼품 없었다. 돌을 쌓아올린 틈새에는 인부들의 투박한 작업손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차가운 북쪽바람이 볼을 스치며 마음을 더욱 움츠러뜨렸다. 선조의 역사현장에 와서 다른 나라의 초라한 '짝퉁'을 바라볼 뿐이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90년 전후로 이 박작성 터에 호산장성을 짓고 명나라 때 세워진 천리장성의 일부분이라고 공언했다. 중앙 정부에서 직접 나서 자금을 지원하고 건축과 관련한 세세한 사항까지 챙겼다고 한다.
↑중국 압록강변 호산장성에 중국 명태조 주원장이 남긴 비석. 당시 조선과의 국경을 확정짓는 의미로 주원장이 직접 하사했다. 이 비석 맞은 편으로 불과 10미터 떨어진 곳이 북한-중국 국경이다.
↑중국 압록강변 호산장성에 중국 명태조 주원장이 남긴 비석. 당시 조선과의 국경을 확정짓는 의미로 주원장이 직접 하사했다. 이 비석 맞은 편으로 불과 10미터 떨어진 곳이 북한-중국 국경이다.

왜 그랬을까. '성'은 한 국가의 영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다. 이곳에 고구려의 화려하고 웅장한 과거를 담은 성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작성이 어디인가. 이곳에서 차로 3, 4분만 이동하면 눈앞에 북한 땅이 훤히 보인다. 건너편 북한 땅에서 밭일을 하고 있는 북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얼굴 윤곽마저 또렷하다.
↑호산장성 앞에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있다. 윗쪽이 북한이고 아래쪽이 중국땅이다. 이지역 주민들이 수시로 넘나드는 것을 발자국을 통해 알수 있다.(사진 상)<br />
북한쪽 두 여성이 국경지대에서 밭일을 하고 있다.밭일을 한다기 보다는 말라버린 옥수수대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는 모습이다.(사진하)
↑호산장성 앞에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있다. 윗쪽이 북한이고 아래쪽이 중국땅이다. 이지역 주민들이 수시로 넘나드는 것을 발자국을 통해 알수 있다.(사진 상)
북한쪽 두 여성이 국경지대에서 밭일을 하고 있다.밭일을 한다기 보다는 말라버린 옥수수대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는 모습이다.(사진하)

◇동북공정, 40년전에 시작됐다=중국 정부는 지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고구려의 자취를 없애기 시작했다고 한다. 봉성시 출신의 조선족들에 따르면 1980년대말까지만 해도 단둥 인근의 봉황성 옆에는 '고려문(高麗門)'의 유적이 있었다고 한다. 봉황산은 과거 고구려와 수나라 사이에 3년 동안 전쟁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청나라와 무역을 했던 '책문(柵門)'으로 알려져 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언급했던 바로 그 문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버려진 채 흩어져 있었던 유적들을 모두 캐 버렸고 문마저 없앴다고 한다.

그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현지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이민족 포용정책을 펴면서도 동시에 강력하게 견제하는 정책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동북 3성에는 대규모 유전지역이 자리잡고 있어 결코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지역으로 격상시켜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유전 매장량은 세계 10대 규모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즉각 개발하지 않았고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설명이다. 다롄~선양~단둥~허룽~무당장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같은 맥락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1960년대 산둥성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을 랴오닝성으로 대규모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비록 소수민족이지만 가장 강력한 결집력을 갖고 있는 조선족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후진타오 정권은 동북대개발을 통해 국가통합 및 안정유지 작업의 백미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이전 정권이 서북대개발, 서남대개발을 통해 이들 지역을 보다 확실하게 편입시켰고, 남아 있는 핵심전략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공정은 단순히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 왜곡작업'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 변방 지역의 통합 및 유지, 결속력 확인, 독립 움직임 말살, 경제적 부가가치의 극대화 등을 노린 다목적 포석인 것이다. 중국 중앙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다.

◇동북공정, 방어용인가 공격용인가=동북공정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전략은 집요하고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단둥에 진출한 한 기업인은 "중국 정부는 랴오닝성 14개 도시 중에서 4번째로 낙후된 단둥을 고속도로로 연결하기 위해 산악지대를 통과하며 터널을 10개 이상 만들었다"고 전했다.

일반 고속도로 공사비의 10배 이상을 투입했을 도로를, 그것도 현재 상태에서 거의 수요가 없는 도로를 왜 굳이 건설했을까.

현지 다른 기업인은 "동북공정은 조선족 등 소수민족의 독립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해 온 장기 프로젝트"라며 "이제 정지작업을 지나 본궤도에 오른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압록강 가운데서 본 북한 신의주(사진좌)와 중국 단동(사진우)의 실루엣 모습. 고층빌딩이 당당히 서있는 단둥에 비해 단층 건물로 둘러쌓인 신의주가 비교 된다.
↑압록강 가운데서 본 북한 신의주(사진좌)와 중국 단동(사진우)의 실루엣 모습. 고층빌딩이 당당히 서있는 단둥에 비해 단층 건물로 둘러쌓인 신의주가 비교 된다.

중국은 압록강 등 동쪽 변경을 따라 철도를 세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시작해 2010년까지 마무리짓게 된다. 이미 지난해 9월에는 압록강변 국경도로를 개통했다.

취재를 진행할수록 강력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은 과연 내부 통합용일까, 적극적인 공격전략일까"하는 의혹이었다.

여러 단상이 머리를 스쳐간다. 더이상 중국을 '완벽한 파트너'로 보지 않고 있는 북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실상 자본주의로 옮겨간 중국, 김정일 정권의 불안 가중, 북한에 대한 미국 등의 파상적인 견제와 고립 전략, 경제적으로 더욱 궁핍해지며 궁지에 몰리고 있는 북한 권력자들… 이것들이 한꺼번에 겹칠 경우 벌어질 일은 상상을 넘어서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중국 입장에서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반도에 통일시대가 열리면 중국으로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자주 독립국가, 그것도 세계 경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강력한 국가를 이웃하게 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어쩌면 '위기의식'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과거 촉나라의 제갈공명은 자기 나라보다 덩치가 크고 국력과 군사력이 월등히 센 위나라에 대해 정벌전략을 펼쳤다. '적극적인 공격으로 자신을 방어한다'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중국은 비록 국력이나 군사력에서 우리를 크게 앞서 있지만 동북공정을 통해 또다른 심리전을 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단순히 심리전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확장을 위한 수순일 지도 모른다. 박작성 근처에서 바라본 북한 땅의 끝자락은 그래서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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