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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글·사람을 빌리지 말라

[CEO에세이]시인 조지훈과 '삼불차' 가풍

CEO에세이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입력 : 2007.06.14 12:32|조회 : 1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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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시인에 대한 후원은 21세기 창조시대에 매우 긴요한 일
`얇은 紗(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파르라니 깎은 머리/ 薄紗(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臺(대)에 黃燭(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오동잎 잎새마다/달이 지는데/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 보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우고/복사꽃 고운 뺨에/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세사에 시달려도/煩惱(번뇌)는 별빛이라/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合掌(합장)인양하고/ 이밤사 귀뜨리도 지새는 三更(삼경)인데/얇은 紗(사) 하이얀 꼬갈은/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널리 알려진 지훈 조동탁(芝薰, 趙東卓)의 시 ‘승무(僧舞)’다. 필자는 어린 시절 이 시를 접하고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우리 민족만의 기품과 혼과 아름다움 그리고 지조와 기원을 영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시는 문장이 아니다. 삶 자체다. 삶 자체가 진동하는 소리음(音)이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시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시인의 삶은 중요하다.
 
얼마 전 시인을 기리는 지훈상 시상식이 있었고 경북 영양군의 주관하에 조지훈 기념관이 개관됐다. 때맞춰 시인의 장남 조광렬씨의 저서가 출간됐다. ‘승무의 긴여운과 지조의 큰 울림’은 ‘아버지 조지훈의 삶과 문학과 정신’이라는 부제를 붙여 시인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평전이었다.
 
◆시는 진실한 삶이 뒷받침 되어야 울림이 있어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23년이라는 세월을 인생으로 친다면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할 시기인 열다섯해를 빼고 나면 겨우 10년도 안되는 세월이었다. 때로는 복받치는 회환과 그리움으로 때로는 맏이 노릇 못하고 해외에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과 늙으신 어머니에 대한 불효가 죄스러워 눈물을 쏟기도 했다”
 
평전에서 밝힌 절절한 조광렬씨의 심정이다. 해방둥이인 그는 1971년 도미하여 건축 설계사무소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해서 미주판 ‘뉴욕한국일보’에 4년여에 걸쳐‘삶과 생각’이라는 수필을 집필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아호작명을 부탁했다. 그와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오랜 지기였다. 오래 생각 끝에 ‘지한(知閑)’이 좋겠다고 지어 보냈다.
 
장자에서 따 왔다. `대지한한 소지한한`(大知閑閑 小知한(노할 한, 人변+閒)한). “크고 겸손한 앎은 느긋하지만 작은 앎은 사소한 것을 따진다”는 뜻이다. 환갑이 되는 나이 뒤늦게 글쓰기에 들었음을 격려하고 여유롭게 큰 과실을 거두라는 기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가하게 거닌다는 의미의 지한(之閑)이 낫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필자도 쾌히 공감했다. 이번에 귀국한 그와 만나 회포를 풀며 시인 조지훈의 삶과 시를 음미했음은 물론이다.
 
◆지조 높은 시인에 대한 후원도 강화해야
 
시는 삶의 고백이자 기원이다. 시를 살펴보기 위해 시인의 삶을 읽어야 한다. 지훈은 당대의 선비 정암 조광조의 후손이다. 1519년 조정암이 개혁정치를 주도하다 끝내 목숨을 잃게 됐다. 멸문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지훈의 조상들은 전국 각지로 피신했다. 그 중 한 지파 어른이 입향한 마을이 경북 영양군 일원면 주실이다.

그는 주실에 자리 잡으면서 호은(壺隱)이라 자호(自號)했다. 호은공은 후손들에게 '삼불차(三不借)'를 지키도록 당부했다, “재물과 문장 그리고 사람, 이 세가지를 남에게 빌리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빌린다는 것은 비굴이다.
 
첫째가 돈이다. 돈을 빌리려면 구차한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늘어놓아야 한다. 때로는 거짓말도 섞어서 속이기도 해야 한다. 둘째는 사람, 이것은 양자(養子)를 들이지 않는 다는 뜻이다.

다른 종가집들은 중간에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많이 들였다. 양자를 들이는 외에 아들이 없다는 구실을 핑계 삼아 첩을 들이거나 씨받이를 찾는 집안도 있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가정의 불화는 외도(外道)에 있다.
 
세 번째는 글이다. 평소에 늘 좋은 글을 대하고 지식을 닦으라는 충언인 것이다. 창씨 개명에 시달렸던 일제시대에도 버티었던 강인한 지조의 집안이었다. 이런 가풍속에서 지훈은 1920년 호은 종택(宗宅)에서 3남2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시집 ‘역사 앞에서’와 수상집 ‘지조론’을 남겼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내며 ‘한국민족운동사’를 집필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에게 등대같은 어른이고자 했다. 그의 삶은 ‘승무’ 바로 그 자체였다.
 
기업의 문화지원 활동 중 음악과 미술계 지원은 장족의 발전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문학분야는 아직도 황무지 같다. 특히 시인들의 노고에 눈을 돌리는 기업은 흔치 않다. 지훈 같은 지조의 시인을 기리는 후원은 21세기 창조시대에 매우 긴요한 일이다. (한국CEO연구포럼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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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로그인박포금  | 2007.06.15 16:00

황금찬 시인을 만난 것은 호국보훈의 달인 이달 6일이었다. 현충일에 그를 만났다는 말이다. 그것도 한 교회의 기념식에서 말이다. 90된 노인 어르신이 나라 걱정하는 두 가지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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