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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소렐, 장준혁, 그리고 신정아

[패션으로 본 세상]완전한 자기 실현에 대해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7.09.17 12:40|조회 : 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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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소렐, 장준혁, 그리고 신정아
19세기 중반, 낭만주의에 젖어있던 프랑스에서 그토록 성공하기를 갈망했던 가난한 집의 아들인 22살 청년이 참수되었다.

그의 인생은 성공을 위한 끝없는 분투였고, 그토록 갈망하던 성공이 목전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던 무렵이었다.

가난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도저히 출세라고는 하기 어려웠던 그의 신분. 그러나 그의 깨어있는 지성은 현실에 만족하며 소박하게 살기엔 너무도 날카로왔다.

어찌하여 세상은 사람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않는가. 어찌하여 세상은 애초에 이렇게 구분이 되어 있어 나로선 저쪽 세상으로 건너갈 길이란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가.

그는 세상에 지지 않기로 결심한다. 상류층에 대한 열망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는 어느 귀족 부인을 교묘히 유혹하여 정복함으로써 비틀린 성취감을 채우기도 하고, 종교엔 관심도 없으면서 당시로선 하류계급이 출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종교인의 길이기에 신학교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교장의 추천으로 어느 후작의 비서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다시 후작의 딸과 사랑의 심리전을 펼친다. 후작의 딸은 권태로운 귀족들과는 다른, 열정적이고 지성적인 남자에게 끌리기 시작했고, 이를 꿰어본 그는 결국 그녀를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그와의 결혼을 고집하는 딸. 후작은 흥미롭게도, 그를 내치는 대신 그에게 가짜 귀족 신분을 마련해주려 마음먹는다. 품행만 괜찮다면 딸을 내주어도 좋을 만큼 그는 자신에게 영리하고 도움이 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 그에게 성공이란, 정말이지 목전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라는 설레임에 사로잡힐 무렵, 엉뚱하게도 과거에 그가 유혹했던 귀족부인과의 스캔들이 후작에게 들통나고 만다. '품행만 괜찮다면'이란 단 하나의 조건이 깨져버린 것이다.

참으로, 나락의 길은 짧고도 가팔랐다. 여기까지 오는데는 그렇게 오래 걸렸건만 이 우습지도 않은 스캔들로 그가 무너져 내린 것은 너무도 순식간이었다. 후작은 결국 그를 내쳤고, 모든 것을 잃은 그는 극도의 공황에 빠지고 만다.

공황은 분노로 이어졌고, 분노의 화살은 스캔들의 당사자인 귀족부인에게 돌아갔다. '그래, 그녀가 모든 것을 폭로하였구나. 그녀가 내 출세의 길을 막았구나'라고 곱씹으면서 그는 그녀를 찾아가 방아쇠를 당긴다. 결국 그 자리에서 그는 체포됐고, 머지 않아 짧고 불 같은 삶을 단두대에서 마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청년 줄리앙 소렐의 이야기,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의 내용이다. 소설 속에서 스탕달은, 이 단순한 스토리 구조 외에도, 줄리앙 소렐이 느끼는 시대에 대한 다양한 소회와 의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렐은 세상의 완고하고 경직된 벽에 한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허술함에 놀란다. 자신의 유혹에 무너지는 상류층 여성들, 그리고 진지한 연구라곤 이뤄지지 않는 신학교, 세상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허영을 빼면 머리에 든 것이라곤 없는 상류층들.

그가 세상을 완전히 속일 수 있다고 믿었던 건, 그만큼 세상은 허술하다는 자만심, 아니면 이런 세상은 속여도 된다는 나름의 정의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스탕달은 이 외로운 청년이 세상을 살아간 방식에 대해 '1830년대사'라는 부제를 붙임으로서 그것이 그 당시 가난한 청년들의 절망에 대한 보편임을 내비쳤다.

요즘 이 이야기는 신정아 사건과 맞물려 너무도 새롭게 다가온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고 줄리앙 소렐에게 연민과 사랑을 보낸다. 그의 계략은 사뭇 무섭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의 삶이 안타깝고, 그의 절박한 꿈이 안타깝고, 온갖 책략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러지는 그의 생이 안타까운 것이다.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란 인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출세에 눈이 먼 가난한 시골 출신 의사로 그려지지만, 마지막에 병으로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왠지 찡하게 다가왔다. 사실 그것은 보이지않는 벽에 둘러싸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의 보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왠지 신정아같은 인물들에게 지금 그 같은 연민을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왜 그에게는 이런 진지함과 공감. 연민이 투영되지 않는 것일까.

줄리안 소렐은 사형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배심원 여러분, 그러므로 본인은 사형을 당해도 마땅합니다. 사람들은 내 나이가 너무 젊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처벌함으로써 나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이 더 이상 야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려 할 것입니다. 하층 계급에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아, 감히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열린 사교계에 뛰어들려고 한 젊은이를 말입니다."

그의 말은 아름다울 것도 없고, 추할 것도 없는 이 '사실' 그 자체였다. 세상만큼이나 그도 추했는지는 몰라도, 그는 오롯한 사실을 말하였고 그 사실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어쩌면 미국 공항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신정아에게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댔을 때까지도, 나는 그에게서 줄리앙 소렐 같은 진실어린 비극이 발견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자신으로선 어쩔 방법이 없었다'든가, '그렇게라도 올라서고 싶었다'든가, 어찌보면 뻔하지만 그래도 수긍할만한 뭐 그런 대답들 말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바쁘게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전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캔자스 대를 나오지 않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예일대 박사가 아닌지를 스스로도 모르겠다"면서 "그것을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본인이 모를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자신의 인생이 한 방에 갔다느니, 침대 밑에 돈다발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쥴리앙 소렐의 이미지는 갑자기 '삼류 코메디'가 되어버렸다. 하기사 진짜 삶이야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니니 무엇을 기대하겠는가마는 이미 그는 동세대의 마지막 연민을 얻을 기회마저 잃어버린 듯 하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속담은 정말 못된 말 중 하나이다. 세상이 더 열려 있어야 하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기회가 와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그야말로 기회균등, 즉, '누구나 기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전제하에서다.

학위를 따는 것도 기회에 접근하는 정당한 방법 중 하나다. 학위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연구하든가, 학위없이 갈 수 없는 길을 굳이 가야 한다면, 늦게라도 학위를 따야지 어쩌겠는가. 이런 당연한 상식들을 쉽게 인정하고 사는 것이 어리석은 태도일까.

세상이 원하는 퀄리피케이션은 위로 올려다보자면 끝도 없다. 컨설턴트로 일해오면서 나는 좋은 대학을 나오긴 했어도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을 요구받았다.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과 너무 작은 회사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낯선 회사를 방문하면 첫 미팅 때부터 미심쩍은 눈길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 경험들은 나에게 일을 의뢰한 클라이언트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었다. 거절을 당하는 것은 당시에는 마음이 아프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깊은 체험을 통해서는 얼마나 쉽게 깨달아지던지.

돌이켜보면 아무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라도, 결국 그것이 세상의 진짜 모습이라면, 또렷이 알게 되는 것이 더 기뻤던 것 같다. 나를 보는 객관적 시선이 어떠한지, 그런 경험에서 얻어지는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알게 된 지금이, 몰랐던 시절에 비하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구스타프 융은 완전한 자기 실현에는 오랜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며, 이처럼 자신의 완전한 일관성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하였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니 누군들 한 순간 거짓말을 하고 싶은 유혹이 없겠는가. 그러니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지킨다는 것, 자신의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융의 말처럼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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