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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情事)'의 3가지 다른 모습

[영화속의 성공학]40번째 글..'타인의 삶'

영화속의 성공학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입력 : 2008.03.02 00:05|조회 : 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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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편집자주]이 글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대체로 중년 아줌마들은 세상의 흐름에 매우 밝고 민감하다. 그 중년 아줌마들의 대화를 의도하지 않게 듣게 된 적이 있었다. 아들, 딸들의 진로 및 결혼문제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한 아줌마의 말이 정말 놀라웠다.

"의사 사위는 좋지만, 아들은 절대 의사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유는 이랬다. 의사는 정말 고되고 힘든 직업이므로 사위가 열심히 번 돈으로 딸이 잘 먹고 잘 사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내 아들이 그렇게 고생하며 번 돈으로 며느리가 즐기며 사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는 것.

어찌 됐든 의사는 최고의 신랑감 후보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직업이다. 판·검사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부와 명예, 권력을 다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의사나 판·검사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달리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지에 대해선 조금 의문이 든다. '과로'와 '사명감' 같은 그들의 일상을 제외한,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의사가 항상 만나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다. 아픈 사람들의 마음이 즐거울 리 없고, 그런 환경의 영향이 의사에게도 미치지 않는다곤 할 수 없다. 또 판·검사가 늘 겪은 사람들은 죄를 짓거나, 무슨 다툼거리가 있는 이들이다. 그런 판·검사들이 느끼는 세상이 아름다울 가능성은 그리 클 것 같지 않다.

2. "사람은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좌우됩니다. 자신이 맺은 관계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지요. 현대사회가 안은 고독과 소외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끼리 만남입니다."

신영복 선생의 가르침이다. 말씀처럼 사람은 다양한 관계속에서 살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느낀다. 물론 그 수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다. 냉정한 잇속에 따른 만남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런 관계는 결코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지 못한다.

↑출처:영화 공식홈페이지
↑출처:영화 공식홈페이지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타인의 삶'은 바로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독일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비즐러는 독일분단 당시 동독의 비밀경찰이다. 그는 나름대로 국가를 위한다는 신념으로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심문하고, 감시하는 일을 한다.

냉철한 그에게 일상의 대화는 그저 상대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를 가려내야 하는 '분석의 대상'일 뿐이다. 당연히 그가 맺는 관계도 그의 말과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비즐러의 가정도, 가족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아내인 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비즐러가 도청을 통해 엿듣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과 대화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 그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 우정으로 주위 사람들과 이어져 있었다. 비즐러에겐 정말로 낯선 모습이었다. 이렇게 맺게 된 새로운 관계로 인해, 비즐러는 점점 그들 부부의 삶에 동화돼 간다.

3. 비즐러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 부부를 감시하게 된 건 문화부장관 햄프의 욕심때문이었다. 햄프는 크리스타를 마음에 두고, 자신과의 성관계에 응하지 않으면 드라이만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더불어 그녀의 배우 인생도 위협했다. 그녀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매주 목요일 햄프의 차안에서 치욕을 겪어야 했다.

이에 분개(?)한 비즐러의 협조로 드라이만도 그 사실을 눈치챈다. 드라이만은 크리스타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만, 크리스타는 햄프의 위협을 떨쳐낼 자신이 없어 드라이만을 뿌리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비즐러의 설득 덕분에 크리스타는 드라이만의 곁으로 돌아가고, 믿음을 회복한 그들 부부는 다시 사랑으로 충만한 정사(情事)를 나눈다. 크리스타의 외도는 '진짜' 관계가 아니었기에, 진짜였던 그들의 사이는 회복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공허해진 비즐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매춘부를 부른다. 하지만, 그녀와는 돈으로 맺어진 관계일 뿐이다. 비즐러는 외로움에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돌아가 버린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사랑으로 묶인 관계였다. 그들이 나누는 정사도 '사랑'이었다. 권력으로 강제한 크리스타와 햄프의 관계에서 정사는 '폭력'일 뿐이었다. 그리고 비즐러의 정사는 '외로움'이었다. 이처럼 같은 행위라도 관계에 따라 그 본질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4. 삶을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주는 좋은 관계에는 별다른 조건이나 목적이 없다. 대신 진심이 있을 뿐이다. 좋은 관계에는 강요가 없다. 잘 되길 바라는 진심으로 지켜볼 뿐이다. 또 정말 좋은 관계에는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상대의 기쁨까지 모두 들어 있다.

영화속으로 다시 들어가보자. 드라이만의 삶에 감동받아 그를 도와준 비즐러는 의심을 사 결국 비밀경찰에서 우편배달부로 좌천된다. 독일이 통일되고, 나중에 드라이만은 비즐러가 자신을 도와준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대신, 드라이만은 자신의 책에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넣는다. HGW XX/7는 비즐러의 비밀경찰 시절 암호명이다. 비즐러는 서점에서 드라이만의 책을 기분좋게 사며 지난 자신의 선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삶에 감동받아 그의 예술을 이어갈 '물리적 삶'을 주었고, 드라이만은 삶의 기쁨과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으로, 그리고 비즐러의 선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답을 대신했다. 그 시작의 경위는 어찌됐든, 비즐러와 드라이만은 결국 서로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삶을 재발견하게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사랑으로 이어진 '좋은 관계'였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리스타가 햄프에게 능욕을 당할 때에도, 드라이만은 그녀의 진심을 이해했다. 차분히 그녀를 설득하며 그녀가 스스로 돌아와주길 기다릴 수 있었다.

남편을 위해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치욕까지도 감수했던 크리스타였다. 그런데 왜 그녀는 나중에 남편의 반정부 행위를 당국에 알리게 되고, 남편에 대한 미안함으로 도망치다 결국 사고를 당해 목숨까지 잃게 됐을까.

햄프에게 괴롭힘을 당할 당시엔, 크리스타는 자신의 배우 생활 뿐 아니라 남편의 안위까지 걱정했다. 그런 사랑은 치욕마저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마약을 복용하던 자신의 약점과 배우생활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남편과의 신의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그들 부부관계의 본질이 '너와 나'에서 '나'만으로 줄어들자 불행이 찾아오게 된 건 아닐까 싶다.

영화 '타인의 삶'은 제법 긴 러닝타임만큼이나 울림도 아주 깊었다. '내 인생의 영화' 리스트에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동시에 영화는 내게 아주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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