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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공부도 빨리빨리

선행학습 대신 후행학습… 속성보다 숙성이 중요하다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부국장 겸 문화기획부장 |입력 : 2008.03.18 12:41|조회 : 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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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공부도 빨리빨리
나에게 가장 슬펐던 책은 '소공녀'다. 나는 이 책을 대여섯번 읽으면서 그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인정머리 없는 민친 선생이 소공녀 세라를 구박할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분개했다. 지금도 그 느낌이 선명하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읽었다. 더 어렸을 적 그토록 원한 소년소녀 명작선집이 내 동생에게 생겼던 것이다. 덕분에 늦었지만 각별히 읽은 책이 '소공녀' '알프스의 소녀' '작은 아씨들' '빨간머리 앤' '올리버 트위스트' '플란다스의 개' '장발장' 같은 책들이다.

물론 학창시절 이런 책만 읽은 것은 아니다. '죄와 벌' '적과 흑' '데미안' '페스트' '이방인' 같은 더 그럴 듯한 것들도 있었다. 이중 몇 가지는 읽을 만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꾸역꾸역 읽었다. 나에게는 그런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쫓기듯 읽은 책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중요한 것은 '속성'이었지 '숙성'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두 '선행학습'에 매달려 경황이 없다. 남을 앞질러 시험 잘 보고 성적 잘 나오면 그만이다. 책에서 무언가 배우고 느낀다기 보다는 남보다 빨리, 많이 암기한 지식의 양이 중요하다. 세상에 책과 정보가 넘치니 머리 속도 항상 분주하다. 한번 읽으면 다른 걸 읽어서 실적을 올려야지 읽은 걸 또 읽는 것은 낭비다. 읽은 것을 또 읽어야 한다면 그 책은 교과서 아니면 전공서적이다.

그런데 최근 교과서도 아닌 3권의 책을 다시 읽었다. '어린 왕자'(생 텍쥐페리,1943년) '모모'(미하엘 엔데,1970년) '바보 이반'(톨스토이,1886년). 여러분은 이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도 나도 '어린 왕자'와 '모모'를 외치기에 한번 펼쳐보았을 뿐 머리 속에 남겨둔 게 없다. '바보 이반'도 스쳐 지나간 한편의 동화였을 뿐이다.

수십년 뒤 3권의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마치 고등학교 때 '소공녀'를 읽고 울었던 것처럼 뒤늦게 감동했다. 3권의 책은 모두 동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어떤 글보다 통렬하고 직설적인 현실고발이자 경고다. 심각하게 뒤틀린 욕망의 세계에 던지는 간절한 호소다. 그것은 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더욱 절절하고 강력하다.

'어린 왕자'나 '모모'나 '바보 이반'은 바로 나 자신에 관한 얘기고, 우리 모두의 얘기다. 잃어버린 나의 선량함을 일깨운다. 어린 왕자가 만난 탐욕스런 어른들과 모모를 뒤쫓는 회색 신사, 바보 이반을 괴롭히는 도깨비들도 모두 내 마음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나다.

책이 그렇듯 다른 공부에서도 우리는 선행학습에서 놓친 것을 일깨우는 후행학습이 필요하다. 제 나이에 찬찬히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만 달리고 뒤로 줄줄 흘리는 선행학습의 폐해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아들딸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초등학생이 중학생 것을 배우고, 중학생이 고등학생 것을 배우느라 고달프다. 대학에 들어가도, 사회로 나와도 모두들 화려한 성공을 향해 숨가쁘게 내달린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질주하는 욕망의 뒤안길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웰빙 노트
 
선생님,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이 걸렸다면 이제 15분으로 줄이세요. 시간 낭비를 가져오는 잡담을 피하세요. 나이 드신 어머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어머니를, 좋지만 값이 싼 양로원에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를 돌볼 필요가 없으니까 고스란히 한 시간을 아낄 수 있지요.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앵무새는 내다 버리세요! 다리아 양을 꼭 만나야 한다면 두 주에 한 번만 찾아가세요! 15분 간의 저녁 명상은 집어치우세요.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얘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충고하는데, 잘 맞는 커다란 시계를 하나 이발소에 걸어 놓으세요. 견습생이 일을 잘 하고 있나 감시할 수 있게 말이지요.<미하일 엔데, 모모>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당신이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어른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물음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가장 좋아하는 경기가 무엇인지? 나비를 수집하곤 하는지?'와 같은 질문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애는 몇 살이니? 몇 명의 형제가 있니? 체중이 얼마나 나가니? 그 애 아버지는 수입이 얼마나 되니?'라고 묻는다 어른들은 단지 이러한 숫자들을 자지고 새 친구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생 텍쥐페리, 어린 왕자>
 
이 나라에는 전해 내려오는 단 하나의 관습이 있다. 손에 못이 박힌 자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자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톨스토이, 바보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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