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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도 부정한 쌀 손도 안 대"

머니투데이
  • 황국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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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7.2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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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패밀리]<2-1> 피수영 교수가 말하는 '나의 아버지, 피천득'

"… 피(皮) 씨의 직업은 대개가 의원이요, 그중에는 시의(侍醫, 임금·왕족의 진료를 맡은 의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 의학을 공부하는 우리 '아이'는 옥관자는 못달더라도 우간다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올 것이다." ('피가지변(皮哥之辯)' 중)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 선생이 '피가지변'을 낼 무렵인 1965년은, 당시 23세였던 선생의 '아이'가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 피수영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 ⓒ임성균 기자
↑ 피수영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 ⓒ임성균 기자


당시 우리나라는 우간다에 의료인들을 다수 파견하기도 했단다. 선생은 의학을 공부하는 당신의 아들도 한국 뿐 아니라 저 멀리 우간다에 이르기까지 의술을 널리 떨쳐 보다 많은 생명을 구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이후 4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아이'는 한국에서 군 생활을 마치고 더 큰 세상을 향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이'는 피나는 노력을 거쳐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미숙아·신생아 치료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자라났다. 금아 선생의 차남, 피수영(65)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의 이야기다.

◇"닥터 피, 당신이 내 아이를 살렸어요"

피 교수는 부친의 바람처럼 우간다에서 의료활동을 펼친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많은 극소·저체중 출생아(일명 '미숙아, 체중 1.5kg이 되지 않은 신생아를 이르는 용어)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명의(名醫)로 불린다.

피 교수는 20여 년간 유타대학 부속병원 등 미국 내 여러 병원을 거치면서 의술을 쌓았다. 미국에서도 그의 의술은 명성이 높았다. 그가 살았던 미네소타에선 지금도 "피 박사(Dr. 피), 당신이 내 아이를 살렸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떠나 10년 후에 내가 살던 동네 서점에 갔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당신 피 박사 아니냐’고 그래. ‘날 어떻게 아느냐’고 하니까, 12살 먹은 아이를 불러와요. ‘당신이 살려준 애다’하면서. 그때 의사 하길 잘 했다, 보람이 있다, 싶었어요."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왔던 게 1995년, 그는 당시만 해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던 국내의 수많은 미숙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다. 2000년엔 국내 의료진과 함께 468g 체중으로 태어난 아이를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이제 한국의 신생아 치료기술은 선진국 수준, 아니 그 이상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은 미국 의사들이 "너희들은 이런 아이들까지 살리느냐"고 할 만치 위험한 상태의 미숙아를 살려내기도 한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의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가 있단다.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심지어 "나도 백내장에 걸려 치료도 못 받는데 아기를 살려서 뭐하냐"는 아기 할아버지의 항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 땐 피 교수가 "미숙아도 생명이다"라며 자기 돈을 들여 아이를 살려냈지만, 매번 사재를 쏟아 넣을 수는 없다.

피 교수는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미숙아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바람으로 유명 탤런트 등 몇몇 지인들과 몇백 만원씩 모아서 1억5000만원을 아산사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이 돈은 아산병원에서 태어난 미숙아에게만 지원됐다. 이를 보고 피 교수는 다른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혜택을 주려면 '신생아 재단'을 설립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설립기금만 3억 원이 들지만 아직 역부족이라고, 피 교수는 안타까워한다.

↑ 피수영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 ⓒ임성균 기자
↑ 피수영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 ⓒ임성균 기자


◇ 굶어도 '부정한 쌀'에는 손대지 않던 아버지

이른바 '국민작가'로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따뜻한 심상을 심어준 아버지가 피 교수에게 준 가르침이 무언지 물었다.

피 교수는 부친이 순간의 배부름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 강인한 기상을 자식들에게 보여줬다고 회상했다. 또 "꼿꼿함과 선비다움을 가풍으로 물려줬다"고 말했다.

"6.25 때 피란 가서 먹을 게 없었던 때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대학시험 출제위원을 하셨는데 누가 쌀을 한 가마 들고 왔어요. 아버지는 그 쌀이 썩을 때까지 안 먹고 그 썩은 쌀을 돌려줬죠. 우리(가족)는 배를 곯는데도."

돈이 없어서 일 년에 이사를 여섯 번이나 다녔다던 금아 선생은 한때 서울 알짜배기 땅을 가진 갑부집 외아들이었다. 6살 때 부친을, 10살 때 모친을 차례로 여읜 후, 친척들은 선생에게 왔어야 할 재산을 가져가 버렸다.

그 시절, 금아 선생에게 사람과 세상은 모진 인연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움 대신 부드러운 감성으로, 물욕 대신 따뜻한 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키웠다. 자식들에겐 늘 "정직하게 살아라, 욕심 부리지 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넥타이를 누가 갖다 주면 다른 사람한테 자기 것 하나 주시곤 했어요. 아버지는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고 하셨죠. 한번 맺은 인연들은 소중히 여기고, 그렇게 물욕을 부리지 않고 사셨어요. 아버지는."

↑ 30여년 전 피수영(왼쪽) 교수가 미국에서 <br />
신생아과 의사로 활동할 당시, 피천득 선생이 <br />
아들을 찾았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다정한 <br />
모습이 인상적이다. ⓒ임성균 기자
↑ 30여년 전 피수영(왼쪽) 교수가 미국에서
신생아과 의사로 활동할 당시, 피천득 선생이
아들을 찾았다.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다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임성균 기자


그토록 부드러운 금아가 아들을 크게 꾸중한 적이 있었다. 피 교수가 서울부속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일이었다.

"내가 참 아버지를 좋아했어요. 어느 날, 한밤 중에 '아빠 죽으면 나도 같이 죽을 거야' 했죠. 아버지한테 참 많이 야단을 맞았어요. 정말 엄청나게 얻어먹었어요."

65세의 명의는 "나의 아빠이자 가장 친한 친구"라고 선친을 회상했다. 그의 집무실 한 쪽 벽에는 지금도 소년처럼 파안대소하는 '아빠'의 사진이 걸려 있다.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를 떠올릴 때 '소년'이 된다.

◇"아빠 되기란 힘들더군요"

'소년'은 이제 '아빠'다. 피 교수는 미국에서 신생아과 전임의(醫)로 자리잡은 38살이 돼서야 결혼, 늦은 나이에 두 아들을 얻었다. 윤범(27)·윤성(25) 씨다.

맏아들 윤범 씨는 현재 뉴욕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둘째 윤성 씨는 명문인 코넬 법대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다. 윤성 씨는 지금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으로 루마니아에서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피 교수도 자식 고민에 속 썩던 시절이 있었다. 윤범 씨가 18살 때 서울국제학교(SIS) 졸업을 불과 3개월 남겨두고 자퇴해 미국으로 간 후 4년여 간 '행방불명'이 됐던 것이다.

윤범 씨 친구 부모의 '제보'로 다시 가족과 상봉한 윤범 씨는 가족들의 설득으로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에 응시했고, 160점 만점에 158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둬 뉴욕대에 입학했다.

"내가 공부하라, 뭐하라, 일일이 지시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면서 그는 아들에게서 자신의 형인 세영 씨의 모습을 엿본다. 세영 씨도 한 때 부친이 '공부는 안 하고 연극 같은 데만 열중한다'며 야단치자 집을 박차고 나간 적이 있다.

1960년대엔 방송 성우, 연극 배우로 활동했던 세영 씨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종환 씨, 현재 미주한인방송 사장인 최동욱 씨와 함께 ‘전설의 디스크자키(DJ)’로 손꼽힌다.

자유로운 영혼은 어떻게 유전되는 것일까. 피 교수는 인터뷰 중 간간이 '아빠'의 사진을 올려다봤다. 아빠 되기란, 명의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 고 피천득 선생의 차남인 피수영(66) 서울아산병원 <br />
신생아과 교수는, 지난해 5월 돌아가신 부친의 사진을 <br />
지금도 집무실에 걸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올려다 <br />
본다고 한다. ⓒ임성균 기자
↑ 고 피천득 선생의 차남인 피수영(66)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는, 지난해 5월 돌아가신 부친의 사진을
지금도 집무실에 걸어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올려다
본다고 한다. ⓒ임성균 기자


◇피수영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 약력

△ 1967. 3 ~ 1972. 2 서울대학교병원 소아과 전공의
△ 1972 ~ 1975 대한민국 육군 군의관(소령 제대)
△ 1978. 7 ~ 1980. 6 유타대학 부속병원 신생아학 전임
△ 1980. 7 ~ 1995. 8 미네소타의대 임상부교수, 둘루스클리닉 신생아과 과장
△ 1995. 9 ~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현)
△ 2001 ~ 2003 : 대한신생아학회 회장, 명예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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