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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포도, '보이지 않는 손'이 어울린 경제

[홍찬선칼럼]시인과 농민, 공무원과 소비자가 함께 쓰는 경제학

홍찬선칼럼 머니투데이 홍찬선 머니투데이방송 부국장대우 |입력 : 2008.07.21 20:40|조회 : 8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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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포도, '보이지 않는 손'이 어울린 경제
태풍 갈매기가 많은 비를 뿌리던 지난 19일 오전 10시30분. 충북 옥천역에는 한용택 군수를 비롯한 군청 공무원 20여명이 줄지어 열차에서 내린 손님을 맞이했다. 주5일 근무제라서 토요일인 이날은 휴무일이지만 그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빛났다. 바로 옆에선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세분이 ‘향수’를 흐드러지게 연주하고….

옥천군 공무원들이 토요일에 이처럼 대거 ‘동원’된 것은 교보문고가 옥천문화원 등과 공동으로 마련한 ‘도종환 시인과 떠나는 옥천문학기행’에 참여한 300여명을 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무원들은 옥천역에서의 반짝 환영식에만 동원된 것이 아니라 오후 7시30분까지 이어진 여행길의 관광버스 10대에 한명씩 승차해 옥천군에 대해 열심히 홍보했다.

“옥천은 ‘향수’를 지은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고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사실상 고향인 문향(文鄕)의 고장이며, 사육신 중 한분인 김문기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고향인 충절의 고장입니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가온(加溫) 포도를 생산하고 전국 묘목 시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댐의 상류에 있어 수질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유기농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시인 정지용과 도종환, 가수 김원중, 옥천 군민의 합창

이번 행사가 이렇게 흘렀다면 ‘문학여행’이 아니라 ‘옥천홍보행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옥천 문예회관인 ‘관성(管城)회관’에선 도종환 시인의 자작시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낭송과 가수 김원중의 공연 등이 펼쳐졌다. 도종환 시를 김원중이 부른 ‘봉숭아’와 ‘꿈꾸는 사람만이 세상을 가질 수 있지’ 등의 노래가 이어졌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름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로 시작되는 ‘향수’를 지은 정지용의 생가와 그가 다니던 죽향초등학교 교실 및 시 속에 나오는 실개천을 직접 보는 호사도 누렸다.

금강(錦江)의 아름다운 물줄기 위에 걸린 금강2교에선 옥천에서 생산되는 포도와 옥수수를 비롯한 여러 농산물과 ‘향수’ 등을 이용해 만든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파는 임시 장터가 열렸다. 갈매기가 쏟아내는 폭우 속에서도 ‘제2회 옥천 포도 축제’를 알리기 위해 땀방울을 훔쳐내는 군민들의 구릿빛 얼굴엔 미소가 피어 있었다.

포도밭에 가서 직접 포도를 따는 포도체험은 땀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했다.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이 고사리 손에 가위를 들고 포도를 5~6송이 직접 따서 2kg짜리 상자를 채우는 동안 등에 땀이 흐르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됐지만 표정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옥천농촌지도공원에서는 희귀한 보라색 풍란 꽃을 보고 도종환 시인으로부터 직접 ‘접시꽃 당신’의 사연을 들었다. 부인에게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울면서 고민하고 새벽에 빗소리 들으면서 썼다는 시.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참으로 짧습니다…”

개인적인 일을 쓴 것인데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내가 울면서 쓰지 않은 시는 남도 울면서 읽어주지 않는다. 내 생을 다 던져서 뜨거운 정신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도종환 시인. 하지만 그는 9권의 시집을 낸 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선집을 내면서 “아직 좋은 시 한편 못 썼다”며 크게 반성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실현된 옥천군의 짧은 하루

‘접시꽃 당신’의 사연을 듣고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아쉬운 발길을 떼어놓으려고 할 때, 비가 잠깐 그쳤고 하늘엔 커다랗고 찬란한 무지개가 걸렸다. 지금까지 보았던 무지개 가운데 가장 크고 선명한 무지개였다.

아직 캄캄한 새벽에 빗속을 뚫고 떠나 새로 깜깜해진 밤에 빗속을 달려 돌아오는 새마을호 특별열차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떠올랐다. 이날 여행길에 오른 300여명 사람들은 시와 포도를 함께 느껴보겠다며 1인당 10만원(초등학생은 8만원)과 하루라는 비용을 기꺼이 냈다. 교보문고는 책을 사랑하는 고객들에게 서비스함으로써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옥천군은 포도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옥천포도를 많이 사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도종환 시인은 시가 많이 읽히기를, 김원중 가수는 자신의 노래가 많이 사랑받기를 원했을 터이다.

이날 벅찬 하루에 ‘당국의 강요’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지만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얻는 보람있는 질서를 얻었다. ‘도종환 시인과 옥천문학기행’은 고유가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으로 ‘제2의 외환위기론’까지 나오는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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