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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계의 한국인, 아나톨리 킴

[홍찬선칼럼]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비극을 뚫고 소설가로 이름 날려

홍찬선칼럼 머니투데이 홍찬선 머니투데이방송 부국장대우 |입력 : 2008.07.31 13:51|조회 : 7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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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계의 한국인, 아나톨리 킴
삶은 패러독스로 가득 차 있다. 얻으려면 버려야 하고, 많이 갖겠다고 욕심을 버리면 잃는다. 쫓아가면 멀어지고, 무심한 듯 하면 가까워진다. 너무 가까이 가면 난로에 데고 너무 떨어지면 추위에 떤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행복한 것처럼 여겨지는 삶에선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외부에서 강요된 고통 속에서 보통 사람이 이뤄낼 수 없는 큰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훌륭한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와 어렸을 때 사별(死別)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나톨리 킴(71). 러시아 문학계에서 소설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삶의 패러독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러시아 이주 동포(이른바 고려인) 3세로 1938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그가 배달민족의 터전인 한반도에서 수억만 리 떨어져 땅 설고 물 설은 중앙아시아에서 생명의 울음을 터뜨린 것은 구한말과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슬픈 역사 때문이었다. 조선말. 두만강 주변에 살던 배달민족들은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넜다.

러시아 문학계의 한국인, 아나톨리 킴
당시 연해주는 출입이 금지된 금족(禁足)의 땅.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태어나 세력을 키운 연해주는 '황제가 난 신성한 땅'이라서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했다. 들어가다 들키면 도강죄(渡江罪)로 목숨까지 잃었을 정도로 위험했지만 앉아서 ‘굶어 죽느니 농사짓고 배불리 먹고 죽자’(물론 들키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절박함이 수없이 많은 배달민족이 강을 건너도록 떠밀었다.

그렇게 1930년대까지 강을 건넌 사람이 수십만 명이나 됐다. 1937년 겨울.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은 17만2000 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이주시켰다. 고려인이 일본군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유를 들어서였다. 아나톨리 킴의 아버지도 그 때 강제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당했다.

고려인 3세인 아나톨리 킴의 ‘찢어진 삶’은 태어나서부터 시작됐다. 핏줄에선 배달민족의 피가 흐르지만, 말은 러시아말을 써야 하는 당혹스러움은 고희(古稀)를 넘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모스크바에서 예술학교 4학년 재학 중에 시를 쓰겠다는 충동을 느껴 문학을 시작한 후 10년 동안 시와 소설을 썼는데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람이 러시아 말로 러시아 민족감정에 호소하는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은 썼지만 알려지지는 않은 상태에서 애들이 태어나 부양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문학적 갈등으로 고통을 겪을 때, 한 영화배우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줬다.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단편소설 “수채화”와 “묘코의 찔레꽃”이 1973년, 러시아 문학지에 실릴 수 있게 된 것. 일단 문학지에 실리자 그의 문학적 삶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1980년대 중반에 발표한 장편소설 “다람쥐”는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았으며 20여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인의 혼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문학적 화두는 ‘고독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낯선 땅, 낯선 언어로 생활하면서 느낀 배달민족으로서 한(恨)과 고독이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사에서 그때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이라고 하는 ‘Historical if'를 거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민족의 비극인 ‘고려인 강제이주’가 없었다면, 또 구한말에 죽음을 무릅쓰고 두만강을 건넌 사람이 없었다면, 러시아 문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아나톨리 킴은 없었을지 모른다.

20만 명에 가까운 고려인의 강제이주 고통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런 비극을 극복하고 초월함으로써 독특한 문학세계를 펼쳐나가는 아나톨리 킴을 길러냈다는 역설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성공적인 삶을 개척해내는 것이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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