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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놈 > 남 >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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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님은 없고 남과 놈만 득실댄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뜨고 지는 세편의 영화를 보니 확실히 그렇다.
 
우선 '님'. '님은 먼곳에' 있다. 영화처럼 너무 먼 곳에 있다. 님은 소식도 없이 베트남 전쟁터로 달아나버렸다.

님은 멀고 먼 사지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 님의 마음은 그보다 더 멀고 황량한 곳을 헤멘다. 님의 마음엔 사랑이 없다.

오기로 님을 찾아 나선 아내의 마음도 복잡하다. 사랑도 아니고, 미움도 아니다. 이래저래 어려운 '님'들이다. 그나마 두 사람이 '님'을 회복하는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다.
 
'남'은 정말 많다. 나하고 놈 빼고는 다 남이다. 그래서 영화 '크로싱'은 히트를 치지 못했다. 시사회때마다 눈물바다를 이뤘다기에 얼른 가서 보고 실컷 울었다. 헐벗고 굶주린 북한 참상이 충격적이다.

탈북자들의 벼랑 끝 인생도 가슴아프다. '우파 운동권'을 자처하는 서경석 목사가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더 이상 배부른 좌파 운동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할 만했다.
 
그런데 영화 흥행은 기대 이하다. 관객들이 몰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살기도 버거운데 남들의 고달픈 삶까지 들여다보며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걸 어찌 남의 얘기라고 할까. 바로 우리의 얘기 아니던가.

영화에 심혈을 기울인 김태균 감독이나 평소답지 않게 열연한 차인표 모두 섭섭하겠다. 빼어난 아역 신명철의 진한 연기 또한 빛을 잃었다. 이 영화를 통해 북녁땅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전해지기를 기대했던 사람들도 아쉽게 됐다. 반대로 "극우파의 간계가 숨어 있는 국책 반공영화"라며 경계하던 사람들은 좋아할지 모르겠다.
 
'놈'은 어떤가? 곳곳에 놈이 넘친다. 그 많은 놈들이 영화에서는 세 부류로 압축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영화를 보니 이상한 놈은 확실히 이상하다. 나쁜 놈은 확실히 나쁘다. 그런데 좋은 놈은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결국 세놈 모두 '미친 놈'들이다. 화끈하게 '미친 놈'들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환호한다. 골치아픈 세상에 헷갈리는 님보다, 궁상맞은 남보다 스트레스 확 날려주는 놈들이 더 좋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얼마나 놈이 많은가. 뻔뻔한 놈, X같은 놈, 죽일 놈, 무식한 놈, 썩을 놈, 정신 나간 놈…. 입만 열면 이놈저놈 욕할 놈 뿐이니 영화도 '놈놈놈'이 단연 대박이다.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선생.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청춘 13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렇지만 그의 글은 아름답고 소박하다. 아마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그를 가둔 '놈'들도 용서했으리라. 그는 말한다.

"우리 주위에는 '님'보다 '놈'이 더 많다. 그리고 그 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남'이다. 우리네 삶이 고달픈 이유도 주위에 '님'보다 '남'과 '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전부 스스로 만든 업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이 비율을 '님>남>놈'의 순서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남>놈>님의 순으로 관계를 맺으며 산다. 요즘에는 놈>남>님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용운 선생은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이 다 님'이라던데 당신은 어떤가? 당신에게 님은 있는가? 있다면 몇명인가? 님이 아닌 남과 놈은 얼마나 많은가?

  ☞웰빙노트

마음을 내어 눈앞에 보이는 모든 생명들의 이름 끝에 '님'자를 붙여 불러보자. 자신이 조금은 거룩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게 자꾸 부르다 보면 나와 똑같이 생긴 이웃들에게 상소리를 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오소서 비님아, 벌님아, 나비님아!" <황대권,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얘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의 군말>

열 살에서 열두 살쯤 된 아이들 여럿이 커다른 나무 그늘 아래 빙 둘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내 마음에 까지 그대로 타고 넘어왔다. 아이들은 아주 신나게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노인도 얼룩진 돌 벤치에 앉아 벽돌담에 등을 기대고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맞은 편으로 길 저쪽에는 한 소년이 벽에 축구공을 차며 혼자서 놀고 있었다.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활동에 임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강한 연대감을 느꼈다. 우리는 다 그 웅성거림의 일부였다. 우리 서로를 하나로 묶어 주는, 공명하는 인간 선율의 일부였다. 카드놀이, 앉아서 쉬기, 공차기, 이 모두가 인간의 공통된 활동이었다. <조이스 럽, 산티아고 가는 길>

천지는 나와 더불어 뿌리가 같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다.
<청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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