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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과 질곡이라는 이름의 전통주

윤진원 소장의 '바로 보는 전통주 이야기'①

머니투데이 윤진원 한국주류문화연구소장 |입력 : 2008.10.0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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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문화다. 와인, 위스키, 사케 등 각 나라의 전통주가 다른 나라에 전해 질 때 단순히 술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아주 오랜 역사 동안 녹아 있는 그 나라와 그 민족만의 독특한 음식과 생활 문화, 역사가 같이 전해진다.

조금만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대폿집에서, 바에서, 호프집에서 또는 가정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마시고 즐기는 술이 과연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담긴 우리 전통술인가를. 아니다. 우리는 술이라는 소중한 무형의 민족 문화 자산을 잃어버리고 또는 잊은 채, 아니 빼앗긴 채 수 십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필자는 오욕과 질곡의 우리 술, 전통주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한다. 민족문화 콘텐츠로 우리 술이 부활하는 데,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우리 술이 같이 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글을 시작한다.

▲전통양조도구
▲전통양조도구

우리 술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다른 문명에서처럼 고대에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져 오랜 역사를 이어져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술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 고구려 개국시조인 동명왕(BC37~BC19)의 건국담에 술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삼국 형성기 때 이미 술 문화가 형성되어 제천, 영고, 동맹 등 국가적 행사 등에서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주술적 행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구려 때에는 누룩을 이용해 술을 빚는 방법이 널리 퍼졌던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술인 약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응신천황시기에 백제의 수수보리라는 사람이 일본에 술을 빚는 기술을 전하고 주신(酒神)으로 추앙 받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일제시대, 비운의 역사를 맞이한 우리 술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 원나라 대의 양조법이 전래되었으며, 곡물을 이용한 양조법 또한 한층 더 발전되었다. 고려시대 비로소 우리식의 다양한 전통 곡주가 자리를 잡아 오늘날까지 전해진고 있다. 특히 고려후기 원나라의 침입으로 이슬람에서 유래한 증류주에 대한 주조방법이 도입되면서 소주(燒酒)가 크게 발전했다.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술이 정착되었으며, 사대부와 양반사회를 포함한 상류상회에서 즐기는 고급술들이 다수 개발되기도 한다. 오가피, 죽엽청, 왜백주 등 중국과 일본을 통해 여러 술들이 대거 수입되어지기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우리의 모든 문화가 그랬듯이 술 역시 비운의 시기를 맞이한다. 1907년 7월 조선총독부는 수탈과 민족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주세령'을 공포하였으며, 같은 해 8월 주세령시행규칙 공포, 9월부터는 강제집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져 오던 우리의 술 문화가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는 없었다. 이에 대해 일제는 1916년 1월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다양했던 우리 술을 약주, 탁주, 소주로 통합 획일화 시켰다. 1917년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집집마다 빚어 먹던 가양주를 전면 금지시키기에 이르러, 각 지역에 자신의 입맛대로 주류제조업자를 선정하는 문화적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부터 우리에게는 전통주의 명맥이 끊기고 일본 청주가 전국적으로 범람하며, 일본식 주조법만 전해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다채롭고 화려했던 수 천 년, 우리 술 문화가 비운 역사를 맞이했던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던 주세행정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통주는 여전히 밀주(密酒) 취급을 받았다. 문화유산이 계승되지 않은 채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더욱이 1965년에는 양곡관리법에 의해 쌀을 이용한 술이 전면 금지, 그나마 증류식 소주도 희석식소주로 바뀌게 되었으며, 쌀 막걸리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만다.
오욕과 질곡이라는 이름의 전통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재인식

이렇듯 수 십 년간 단절되었던 전통주는 1980년대 이르러 세상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준다.
전통문화를 전수보전하고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나라 술을 널리 알려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통술 50여종이 복원 재현되어지고, 일제이후 처음으로 전통주에 대한 제조가 허가되기에 이르렀다. 80여년만의 일이다.

1988년 이후 정부당국과 각 지자체에서는 전통민속주의 발굴과 육성을 위해 명인-무형문화재 등의 지정을 통해 생산과 사업을 장려했다. 1990년 우리 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고 이와 함께 탁-약주 제조에 쌀을 사용하는 것과 개인이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되어 우리 술에 대한 문화 복원의 움직임 다소 활기 띄게 된다. 수십 년간의 단절의 벽은 매우 높았다. 어렵게 원형이 보존되었다 하더라도, 해방 이후 지금까지 형성된 왜곡된 음주문화와 시장질서는 전통주의 시장진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었다.

경북의 안동소주, 경기의 문배주, 전주의 이강주가 시장 진입에 성공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였으나 그것 역시 전체 전통주 시장의 발전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40여종의 무형문화재와 명인 전통주 생산업체들은 현재 매우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생산을 중단 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으며, 현재 생산 중이 업체 역시 만성적 경영난에 놓여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우리역사를 통해 면면히 전해 내려오던 우리 술의 역사는 안타까움 그 자체다. 다음 컬럼으로 계획하고 있는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좀 더 세부적으로 알아보겠지만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는 100% 국내산 친환경 쌀만을 사용하는 ‘참살이탁주’의 시장에서의 선전은 차라리 눈물겨운 투쟁이라 할 만하다.

향후 다양한 행정적 법률적 지원 등 지속적인 제도적인 뒷받침, 소비자의 의식제고를 위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노력, 현대적인 생산기술 지원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중한 문화유산인 우리 전통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오욕과 질곡이라는 이름의 전통주
윤 진 원

한국주류문화연구소 소장
(주)참살이L&F 대표이사
창작전통요리주가 ‘뚝탁’ 대표
(전)월간 주류저널 편집국장
문화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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