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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말고 몸으로 때워라

[웰빙에세이]돈을 물로 봤다간 큰코 다친다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부국장 겸 문화기획부장 |입력 : 2009.01.08 12:34|조회 : 16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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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싸늘하게 죽으니 다들 몸이 달았다. 얼마나 심하게 달았는지 한두가지 증거를 대겠다.

먼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 "돈을 마구 찍어내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살포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이 말이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버냉키 의장의 별명이 '헬리콥터 벤'이 됐다.

물론 공식석상에서는 이보다 점잖은 용어가 동원된다. 가장 잘 쓰이는 말은 '제로 금리'다. 이는 이런 말이다. "이자 한푼 안붙이고 돈을 풀테니 제발 돈 좀 써서 돌립시다." 얼마 전에는 조금 더 고상한 말이 등장했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미국 중앙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0.25%로 낮추면서 구사한 말이다.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달러를 팍팍 찍어 뿌리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도 명언이 많다. 그중 압권은 이명박 대통령의 '삽질론'이다. 말하자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대적인 개발사업을 벌이자는 것이다. 그래서 녹색뉴딜이고, 4대강이고, 경인운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말은 점입가경이다. "큰 SOC 사업과 공공사업 등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착수해 전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 오늘은 영산강, 내일은 낙동강에서 지휘봉을 들고 땀 흘리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은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야말로 가가호호 새마을운동에 매진하던 1970년대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북한식 말투가 된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 "대통령이 앞장서고 내각이 따르는, 그래서 난관을 돌파하는 '돌파내각'이 돼야 하고 경제회복이라는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돌격내각'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정도면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가. 미국이 헬리콥터를 들먹이는데 우리는 삽질 운운하는 게 역시 스케일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돈 풀기'다.

돈(투자) 놓고 돈(이윤) 먹는 자본주의 사회라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돈이고, 문제를 푸는 것도 돈이다. 앞의 돈이 욕망의 거품을 일으키는 불같은 돈이라면 뒤의 돈은 불길을 잡기 위한 물같은 돈이다. 나라에 불이 났는데 물을 왕창 쏟아 부어야지 어찌 그리 쩨쩨하게 구느냐고 한국은행이 눈총을 받는 것도 다들 돈을 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물로 봤다간 큰코 다친다. 그 돈이 다시 불쏘시개로 돌변하면 어찌 불길을 잡을까. 최근 경제위기를 1930년대 대공항 이후 최악의 것이라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자본주의 역사는 간단없는 '거품소동'이었다. 거품을 부풀릴 때는 모두 대박의 환상에 사로잡혀 환호성을 지르고, 거품이 터질 때는 절망의 비명을 질렀다.

이번 소동도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고,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불길이 전 지구에 번졌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화마는 자본주의에 내재된 본질적이고 체제적인 리스크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 이번 위기에서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리모델링이다. 지금과 같은 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폐기는 지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것은 자원고갈과 환경재앙을 부른다. 탐욕을 연료로 삼는 살벌한 경쟁과 성장 지상주의, 돈놀이에 혈안이 된 무한 투기게임은 공존과 행복, 평화를 오염시키는 또 다른 재앙을 부른다.

전국에서 삽질하고, 돈을 찍어 뿌리고, 지갑을 열라고 재촉하기에 앞서 덜 만들고 덜 쓰고 더 많이 나누는 새로운 상생모델을 위해 '욕망의 워크아웃'을 다짐하는 게 먼저다. 돈으로 때우지 말고 몸으로, 마음으로 때워야 한다.

  
☞웰빙노트

어느 한 시대에도 경제 타령을 하지 아니한 때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뭔가.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제 타령이 커지고 높아지고만 있다. 경제만이 희망이라고 진보도 보수도 자본가도 노동가도 도시도 농촌도 한목소리다. 경제타령 안하면 이 사회에서 쫓겨날 것처럼 그런다.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가 성장한 만큼 (경제 타령이) 잦아들었다고 한다면 그 논리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경제 타령이 커지고 있다면 경제 타령으로 해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도법 스님, 1월4일 프란체스코수도회 성당에서 열린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 즉문즉설>

우리들 모든 삶의 과정이 '상품화'한 것이 바로 오늘날 '서비스 경제'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친밀함과 우정, 환대, 사랑의 관계를 만들고 확인하고 나누던 행위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서비스 경제'라는 이름으로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잉태하거나 낳는 행위(정자/난자 은행, 산부인과 병원), 아이를 키우는 행위(유아원, 놀이방, 학교, 학원), 식의주 등 살림살이 행위(식당, 세탁소, 주택 시장), 어려울 때 돕기(금융, 사채, 보증, 보험), 문화 향유(콘서트, 콩쿠르), 여가(여행, 관광, 엔터테인먼트), 소통(정보통신, 전화, 인터넷), 그리고 심지어 사랑 행위(성매매, 전화방, 섹스 쇼)까지도 온통 '서비스 경제' 속으로 편입되고 말았다. 그 결과 서비스는 있되 참된 봉사는 없고, 학교는 있되 참 교육은 없다. 또 고급 아파트는 있되 참 살림은 없고, 레스토랑은 있되 참된 먹거리는 없다. 사실이 이럼에도 오늘날 주류 경제학에서는 서비스 경제, 즉 3차 산업이 발전할수록 '선진국'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지배하며 현실 삶을 피폐하게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이런 환상에서 탈피하여 삶의 자율성, 삶의 친밀성, 삶의 직접성을 복원해야 한다.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우리 나라에서는 일종의 세뇌 같은 것을 받게 되지. 사람들을 어떻게 세뇌하는지 아나?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거야. 이 나라에서도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네. 물질을 소유하는 게 좋다. 돈은 더 많을수록 좋다. 더 많은 것이 좋다! 더 많은 것이 좋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걸 반복하지. 또 그 소리가 우리에게 그것을 반복하도록 하네. 그러다가 결국 아무도 다르게 생각할 수 없게 되네. 보통 사람은 이 모든 것에 눈이 멀게 되지. 그래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네.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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