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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살리기(2)

[웰빙에세이]그녀를 살리는게 내가 사는 이유다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입력 : 2009.04.30 12:34|조회 : 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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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란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의미가 없고, 부여할 의미도 없다면 진짜 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그래도 살라고 우기면 그건 억지 아닌가?

탤런트 최진실의 죽음에 쇼크를 받고 몇 달 동안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의 이유를 찾아 고민고민하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솔직히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왜 사나? 내 마음 깊은 곳에도 항상 삶의 허무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어느 날 심각하게 불거지면 나는 나를 다스릴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답이 없다. 다만 최근에 한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최진실의 자살을 말린다며 이런저런 설득의 논리만 찾았지 그녀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놓쳤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녀의 자살을 말리려면 그녀의 얘기부터 들어야 한다.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녀가 마음이 열고 고민을 다 털어놓았다면 그것만으로 크게 위로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생의 짐을 덜고, 죽음의 갑작스런 충동에서 벗어났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던가? 나는 나 살기도 바쁘고 정신없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것은 나에게 그만한 필요가 있을 때 뿐이다. 그게 아니면 대충 듣거나, 듣는 척 한다. 그러니 최진실이 나에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리도 만무하다. 애초부터 내가 최진실의 자살을 막는 법을 궁리할 때부터 나는 머리만 굴렸다.

이런 반성을 하고 있는데 지개야 스님이란 분이 한번 더 가르침을 주는 게 아닌가. 지개야 스님은 경기 안성에 '묵언마을'이란 사찰을 세우고, 자살의 벼랑에 선 사람들을 맞는다. 그리고는 차 한 잔을 내놓고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 같이 울고, 같이 아파한다. 그들 스스로 무거운 삶의 짐을 내려 놓고 다시 살 용기와 의지를 되찾게 한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라며 죽음의 발걸음을 되돌리게 한다.

"만약 주위에 있는 누군가가 '힘들다.' '살고 싶지 않다.' '자살할 거야'와 같은 이야기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자살의 유혹에 시달리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죽고자 하는 마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때 주위에서 누군가가 진솔한 마음으로 그 사연을 들어주기만 해도 자살은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자살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개야 스님, 묵언마을의 차 한 잔>

나는 내 문제에 매달려 "자살을 하느니 차라리 적도의 바다로 가겠다"고 흰소리 했는데 지개야 스님은 큰 마음으로 외롭고 지친 사람들을 끌어안고 계셨다. 그야말로 급이 다르다.

이 스님의 이력 또한 남다르다. 그는 전기도, 사람도 더 들어갈 수 없는 벽촌에서 태어나 매일 꼴만 베다가 고향을 떠난다. 낯선 도시에서는 구두닦이, 신문배달, 볼펜장사 등등 밑바닥을 전전하다 어찌어찌 돈을 벌고, 경상도 도의원이 된다. 그리고 나이 50이 넘어 한 줄의 기사에 충격을 받는다.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고, 지구촌 가족 40억 명이 굶고, 하루에 3만5000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는다. 그런데 또 다른 쪽에서는 과다 영양섭취로 살을 빼고 있다. 이들은 왜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없을까.'

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이 기사를 본 순간 '단 1명의 자살자라도 구하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고 51살에 출가한다. 그동안 모은 재산 30억 원으로 묵언마을을 만들어 종단 재산으로 돌리고, 자살 위기에 선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보시하고 있다.

자살, 그것이 비단 최진실 뿐이랴. 사업에 실패하고, 사랑에 상처받고, 자식에게 버림받고, 병마에 시달리고…. 자살할 이유는 무시로 차고 넘친다. 삶의 무게에 눌려 고민하는 또 다른 최진실이 곳곳에 수두룩하다. 얼마 전에도 또 1명의 아름다운 탤런트가 자기 목숨을 끊었다. 여럿이 함께 죽는 동반 자살까지 잦아졌다. 세상에 살기가 등등하다. 이겨야 사는 세상, 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세상이다. 동지는 없고, 라이벌만 득실댄다. 그들과 겨뤄 성공과 승리를 쟁취하느라 마음은 항상 전투태세다.

그러니 고단한 마음을 보듬어 줄 사람이 얼마나 아쉬운가. 최진실 살리기, 그 길은 그녀의 아픔을 크고 넓게 받아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있다. 그 곳에 다다르면 아마 내 삶의 의미도 같이 있을 것이다.

  ☞웰빙노트

두 사람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얼굴을 잘 살펴보라. 한 사람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에 대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대화를 관찰해보라. 그것은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가? 단지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그대는 관계를 맺기 위해 애를 쓰지만 피상적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그대들은 결코 만나지 않는 평행선과 같다. 대화는 불가능하게 보인다. 모든 것이 독백이다. 그대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도 그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 두 개의 독백일 뿐인데 겉으로만 대화처럼 보일 뿐이다. <오쇼 라즈니쉬, The Book>

자살은 불가에서 큰 죄로 여기는 살생 중 가장 잔인한 살생이다. 사람은 누구나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다. 언제나 몸은 마음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며 살아왔다. 그런 고마운 몸을 마음이 싫다고 살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도 안 될 일이다. 살생 중 가장 잔혹한 살생은 우주의 주인공인 나를 살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단단히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세상에 자살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비겁한 패자는 없다. 절대로 비겁한 패자가 되지 말고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지개야 스님, 묵언마을의 차 한 잔>

자신 안에 불행이 있다면, 먼저 불행이 그곳에 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다"라고 말하지 말라. 불행은 당신의 본래 존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하라. "불행이 내 안에 있다."
그런 다음 그것을 관찰해 보라. 당신이 놓여 있는 하나의 상황이 그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변화시키거나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행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것을 마주보면서 말하라. "좋아, 지금은 이것이 현실이야. 난 이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자신을 볼행하게 만들 수도 있어."
불행의 첫째 원인은 결코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생각들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 생각들을 상황과 분리시켜야 한다. 상황은 언제나 중립적이며,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거기 상황이나 사실이 있고, 여기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대신, 다만 그 사실과 함께 있으라.
이를테면 "난 망했어"는 하나의 이야기다. 그것은 나를 제한하고, 내가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나는 은행 계좌에 달랑 500원밖에 남아 있지 않아"는 하나의 사실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는 것은 언제나 힘을 가져다준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대부분의 자신의 감정을 창조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감정과 연결되는가를 보라. 생각과 감정이 되는 대신, 그것들 뒤의 자각이 되라.<에크하르트 톨레,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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