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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패션쇼에서 얻은 값진 경험

[패션으로 본 세상]책임, 리더십 그리고 인간적 정서에 대해

패션으로 본 세상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입력 : 2009.05.13 12:05|조회 : 6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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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패션쇼에서 얻은 값진 경험
얼마 전, 나는 중국의 심천에서 패션쇼를 했다. 디자이너도 아닌 컨설턴트인 내가, 중국에서 패션쇼를 하게 되리라곤 석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중국의 한 브랜드에서 일했다. 컨설턴트로 계약했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곳의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구분은 뭐랄까, 이 프로젝트에서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중국의 컨설팅 문화는 한국과 많이 달랐다. '나의 조언은 여기까지이고, 이제 선택은 당신들의 몫이오'라고 말하는 것이 한국형 컨설팅이라면 '나의 조언은 이러하니, 우리 이대로 한 번, 나의 책임 하에 해봅시다'가 중국형 컨설팅이다.

실무를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뼛속 깊이 실무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조언을 하는 컨설턴트의 입장과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실무자의 입장은 정말이지 이렇게도 달랐던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는 각별히 운이 좋았다. 디자인실의 팀장 격으로 일하고 있던 중국 디자이너와 매우 호흡이 잘 맞았던 데다, 일하는 스타일이 비슷하여 우리는 두 달 안에 실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00여 스타일을 두 달 안에 디자인하여 제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일단 디자인의 수준을 제쳐놓고서라도, 작업량이란 측면에서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디자인의 혁신적 변화까지 함께 추구해야 했는데, 정말로 감사하게도, 그 친구는 엄살 없는 뚝심파였다.

그동안 컨설팅을 해오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목표에 여러 번 직면했었다. 이런 목표는 반드시 사람을 선별해서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 같은 목표수행에서 가장 큰 장애는, 계속 불가능한 일이거나 어렵다고 칭얼대는 사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기계적으로 출퇴근하며 성과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빚어내는 조직의 비효율이다.

일단 목표가 주어지면, 목표의 난이도보다는 그저 자신이 거두어야 할 성과에 포커스를 두고, 여기에 집중하는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과제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선별할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 그가 팀장에 있었다는 것은 실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패션쇼 당일, 나는 여러 관계자들 앞에서 우리가 이번 시즌에 추구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이 연설에 대한 회사의 요구는 너무도 명쾌했다. 강하게 그들에게 '신심(믿음)'을 심어주라는 것.

솔직히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 마음과 어깨는 일면 무거웠다. 나로선 강한 연설보다, 패션쇼를 계기로 참석자들의 의견, 제3자의 얘기를 한 번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한 번 더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회사를 운영해 온 노련한 오너들은, 서로 견해를 나누어야 할 사람과 강하게 믿음을 부여해야 할 사람들을 구분해놓는 법이다. 강한 연설을 통해 확신과 지지를 얻는 것은 나의 소임이었고, 나는 결국 그렇게 했다.

어느 경우에나, 책임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 아니던가. 여한 없이 최선을 다했으니, 적어도 더 노력하지 못한 점을 후회할 일은 없었다. 제품에 대한 나의 설명이 끝나자, 조명이 꺼지고, 드디어 쇼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맙소사,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모델들이 옷을 입고 나오는 모양새가 우리가 지시한 것과 약간씩 달랐다. 바지 안에 넣어 입어야 할 블라우스가 밖으로 내어 입혀져 있고, 투피스는 벨트를 매어야 하는데 벨트 없이 입혀졌다.

팀장은 마이크로 제품을 설명 중이었으니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대신 내가 무대 뒤로 달려갔다. 무대 뒤의 그 아비규환이라니. 정신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모델들 옷을 입히고 매만지다 보니 어느 새 쇼는 끝이 났다. 모델 들이 내 손을 잡아끌고 무대로 나가는 바람에 쇼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 뒤는 여러 사람과의 인사, 식사, TV 인터뷰 등으로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갔다.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나고, 디자인실은 쇼룸을 디스플레이 하기 위해 밤 10시쯤 매장으로 모였다. 10시 반쯤 내가 도착해보니, 벌써 작업은 정신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밤샘 작업이 될 터였다.

나는 먼저 오늘을 위해 가장 수고한 친구, 팀장을 찾았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그는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쇼가 생각처럼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긴 어떻게 지내온 두 달이었고, 어떻게 준비한 행사였던가.

나는 옆의 통역에게 중국말로 '수고했다'는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중국말로는 '씽꿀라'라고 한단다. 나는 "씽꿀라, 씽꿀라"를 연발하며 그 친구를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이는 것밖에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반 없었고, 다른 말로 위로하기엔 중국말은 너무 복잡했다.

팀장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같이 일해 온 디자이너들은 그 순간 다 같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쇼룸은 갑자기 울음바다가 되었다. 디자인팀에게는 두 달의 시간, 행사, 부족함, 아쉬움 같은 것들이 그 순간만큼은 목표나 책임 같은 것을 넘어 감정적으로 복받쳤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감정적으로 얼마나 메마른 사람이던가.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안 나오고, 어떨 때는 진짜로 울려고 노력해 봐도 정말이지 안 울어지는 게 나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저절로 코끝이 찡했다.

한 밤 중에 홀로이 불 켜진 매장에서 여러 명의 여성들이 연출하고 있는 이 울음바다는 이상하게도 신파가 아닌 것 같았다. 하나하나 오롯한 진심이고, 무엇보다 그들의 진한 땀이 어린 것들, 사실 신파와 순수함이란 사실 땀방울의 차이가 아니던가.

한국 일정 때문에 나는 이튿날 바로 들어와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프로젝트가 내게 준 소중한 경험들을 생각해봤다. 책임을 진다는 것, 확신과 지지를 얻기 위한 리더십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감정의 경험까지 말이다.

가족과 한국이 너무도 그리웠지만, 아마 중국의 친구들도 이곳에서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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