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장관에 부처 고위직 인사 일임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앞으로 정무직을 제외한 각 부처의 실무 간부 인사를 장관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각 부처 장관들이 차관을 제외한 280여 명의 1급 공무원과 256명의 공공기관장 및 감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임기 초반에는 정권이 바뀌었던 만큼 청와대가 불가피하게 (정부 부처 간부 인사에) 관여한 측면이 있지만 이제는 장관 책임 아래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다만 장관들도 본인의 인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출범이후 1급 공무원과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는 장관이 추천하는 형식을 거쳤지만 검증 등을 이유로 사실상 청와대가 관여해 왔다. 10년만의 정권교체 인 만큼 공직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장차관 등 정무 직은 물론 '공무원의 꽃'이라고 할 1급과 공공기관장, 감사에 대한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해 온 것.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인사권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장관의 령이 서지 않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장관이 임명하도록 규정돼 있는 산하 공공기관장과 감사에 대한 인사권까지 제약한 것은 지나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은 이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장관이 임명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과 감사의 경우 청와대와의 협의절차를 생략하고 주무 장관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인사권을 행사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는 1급 공무원과 공공기관장, 감사 등 고위직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장관들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장관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등 공직사회 전반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장관들도 자신의 인사권 행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해 국정을 다잡으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장관의 인사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인사협의 절차를 생략한다고 하지만 민정수석실을 통한 인사검증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통할 수 밖 에 없을 것이라는 것.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장관이 소신 있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장치를 갖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1급 이상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장의 경우 청와대 스크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형식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검증 과정에서 후보자의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인맥과 지역, 학연 등 기타 항목이 더 중요시되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청와대가 인사를 좌우하는 현 구도가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