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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행복하고, 베짱이는 불행했다고?

[웰빙에세이]개미들도 노는 연습을 하자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입력 : 2009.09.03 11:33|조회 : 8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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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는 일을 놀이처럼 할 것이다. 일이 놀이고, 놀이가 일일 것이다. 일하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할 것이다. 일하는 게 좋으니 일인지 놀이인지 구별하고, 잘했니 못했니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에게 일은 일이고, 놀이는 놀이다. 즉 일과 놀이는 분리됐다. 일에서는 결과가 중요하고, 놀이에서는 재미가 중요하다. 어쨌든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열심히 논다면 그것도 괜찮아 보인다. 거기에도 집중과 몰두의 기쁨이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그것도 아니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 때 열심히 놀지 않는다.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놀이는 노는 둥 마는 둥 한다. 일할 때 노는 것을 생각하고, 놀 때 일하는 것을 생각한다. 일과 놀이의 충돌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더 안 좋은 경우도 있다. 일하고 싶은데 할 일이 없는 사람, 놀고 싶은데 놀 시간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불행하다. 일과 놀이의 실종이다. 할 일이 있는데 일하기 싫어 놀기만 하는 사람, 놀 시간이 있는데 놀 줄 몰라 일만 하는 사람도 불행하다.

이런 문제를 학교에서는 어떻게 풀라고 가르쳤던가?

개미와 베짱이의 동화를 보자. 개미는 일만 하고, 베짱이는 놀기만 한다. 그래서 한겨울에 팔자가 엇갈린다. 개미는 부자가 돼 여유를 즐기고, 베짱이는 빈털터리 노숙자가 돼 추운 거리를 헤맨다. 오래 전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는데 지금 보니 영 아닌 것 같다.

우선 일과 놀이의 이분법이 못마땅하다. 일과 놀이는 하나로 섞는 게 가장 좋다. 일과 놀이를 둘로 나눠 일하면 좋고, 놀면 나쁘다는 식으로 가르쳐서는 곤란하다. 일부터 하고 놀라는 것도 틀렸다.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하는 게 훨씬 좋은데 왜 순서를 정하나.

둘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나중에 '개고생' 한다고 겁을 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인생의 패자가 된다고 겁주는 것도 부당하다.

셋째, 일과 공부에 매달려 놀지 못하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게 된다. 일터가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는데 정신이 팔려 자기 색깔을 찾지 못한다. 개성의 상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한데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 행복할 수가 없다. 그저 세상이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흘러 다닐 수밖에 없다. 돈 따라, 유행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박터지게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인재가 된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큰 성공을 거둔들, 화려한 스타가 돼 최고의 인기를 누린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무슨 소용인가.

진정 좋아하는 일은 놀이가 되고, 놀이에 빠지면 놀이를 잊는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놀이를 뒷전으로 물리고 하염없이 일과 공부에 매달리다보니 대부분 일을 싫어한다. 일은 삶의 의무일 뿐이다. 성적에 맞춘 전공이 일이고, 요행히 합격한 곳이 일터다. 그곳에서 5일 일하고 2일 논다. 1년 일하고 1주일 논다.

하지만 잘 노는 법을 모른다. 노는 것도 일처럼 스케줄을 잡고 경쟁하듯 바쁘게 논다. 놀려고 힘을 잔뜩 주니 잘 놀아지지 않는다. 그냥 놀아야 하는데 놀이의 효과와 성과를 따진다. 개미의 비애다. 개미는 서글프다. 베짱이만 서글픈 게 아니다. 일에 중독된 개미는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개미들도 노는 연습을 하자. 일과 놀이를 섞도록 하자. 그게 어렵다고?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 틈만 나면 놀자.

  ☞웰빙노트

그대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다. 살 시간이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삶을 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오쇼, 삶의 길 흰구름의 길>

오늘날 우리는 일에 대해 일정한 지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이 우리에 대해 일정한 지향성을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전에는 우리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필요에 따라 일을 하기보다는 일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끌려 다니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놀이는 감독 요원이 지시했는데, 모두 뭔가 유용한 것을 배우는 것들뿐이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즐거워하고, 신나하고, 꿈을 꾸는 것과 같은 다른 일들은 서서히 잊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 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의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미하일 엔데, 모모>

우리는 좀 심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거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며 힘에 부칠 정도로 많은 양의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몇가지 일을 하면서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전력투구하여 일을 하고 나서도 시간이 있었으면 더 잘했을 텐데 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소진하는 삶입니다. 있는 걸 모두 다 써버리는 삶입니다. 바닥까지 긁어내 탕진하는 삶입니다. 정신도 에너지도 아이디어도 체력도 있는 대로 다 써버리고 지쳐 나가떨어지는 삶입니다. 채우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인 힘이 고이도록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채워지기도 전에 닥닥 긁어 써버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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