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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 루저의 외침

[웰빙에세이]아! 뼈 아픈 '1ㆍ 등ㆍ병(病)'이여

김영권의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입력 : 2009.12.03 10:53|조회 : 9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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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1등급 미녀가 "키가 180cm가 안되는 남자는 루저"라 했다니 길이가 조금 모자라는 나로서 어찌 섭섭한 마음이 없으리오. 나는 1등도 아니고, 꼴등도 아니며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나름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나를 루저라 하고, 물 먹었다고 수근대니 아무리 흘려 들으려 해도 신경이 곤두서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나도 승자인 1등 선수들에게 한소리 해야겠다.

수십년 살아보니 한번 1등이 평생 1등이 아니고, 평생 1등이 평생 행복한 것도 아니더라. 그런데 그 1등을 못해 모두 죽을 똥 살 똥 사니 그 삶이 온전할 리 없다. 1등이란 게 결국 딱 1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루저'이니 이 얼마나 살벌한 게임인가. 그런데도 1등이 아니면 살아 남을 수 없다, 초일류만이 살 길이다, 2등은 없다, 3등은 더더욱 없다 자나깨나 이런 얘기들 뿐이어서 어디 마음 편히 둘 곳이 없다.

그래도 내가 자존심이 있지. 머리띠 두르고, 눈섭 쌍심지 그리고, 눈에 불켜고, 이 악물고 노력 노력해서 1등을 했다고 치자. 그 1등의 기쁨도 잠시. 1등 게임은 2부, 3부, 4부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무림에 고수가 하도 많아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1등은 2등부터 꼴등까지 하나같이 물리치려고 벼르는 대상이니 그것이 칼날 위에 선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간발의 차로 선두를 놓친 2등은 1등에 이를 갈고, 3등은 2등에 이 갈고, 4등은 3등에 이 갈고 이런 식으로 물고 물리는 경쟁의 길고 긴 줄이 삶의 족쇄가 되어 숨이 막히는구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껏 1등만 살고 나머지는 못 산 적이 한번도 없었다. 1등도 살고, 2등도 살고, 3등도 산다. 그뿐인가. 꼴등도 살고, 끝에서 2번째도 살고, 끝에서 3번째도 산다.

대학 졸업해서 사회생활 하다 보면 중고등학교 때 공부는 축에도 못끼고 비실대던 선수가 갑자기 화려하게 삶의 무대에 등장하고, 그때 1등하던 선수는 그냥저냥 살지 않던가. 이 정도야 누구나 다 겪어 보았을 터인데 어째서 그 1등 게임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본인만 그런 것도 아니고 아예 대를 물려서 자식에게 1등 1등 1등을 외치고, 오로지 1등 아니면 안된다, 일류 아니면 안된다, 영어도 일류, 수학도 일류, 국어도 일류 이렇게 몰아 붙이니 참으로 IQ가 의심스럽다.

아무래 그래보았자 1등은 단 1명인데 아들 딸이 반에서 30,40 등을 해도 다른 길을 찾아줄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국영수로 1등을 만들려 하니 모든 비극이 여기에서 잉태하는것 아닌가.

아무튼 이런 피말리는 1등 게임에서 남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영웅적 승자가 됐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스카이' 대학가고, 재력 권력 쥐고, 엄친아ㆍ엄친딸로 만나 훌륭한 가정을 이뤘다고 하는데 그들이 행복하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 행복이 워낙 나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그런가.

당사자 주변에 누가 될까 매우 조심스럽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탁 까놓고 얘기해 보자. 우리나라 권력 1등, 대통령이 퇴임 후 자살을 했고, 1등 재벌가의 따님이 목숨을 끊었다. 2등 재벌가의 적통 회장님은 회사에서 투신했다. 만인의 연인 최진실이 자살을 하더니 그에 뒤질세라 유명 스타들이 줄줄이 그녀의 뒤를 따른다. 이름만 열거해도 한두줄이 넘을 정도다. 어떤 재벌은 TV 광고에서 "우리는 사업보다 사람을 키운다"고 미사여구를 읊는데 그 집안 형제들은 재산다툼에 의를 끊고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삶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1등들의 비애를 180cm가 안 되는 단신 루저인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1등 1등 하며 성적과 랭킹만 따지고 살았지 삶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나. 1등에서 한발짝만 쳐져도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그러다 팍 죽어버리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이 편애하는 1등의 발꿈치만 쫓아다닌 소외된 루저들은 어찌 살라는 것인가. 그래서 결국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의 국가 중에서 한국이 자살률 1위가 됐다고 하니 이것도 1등은 1등인가.

1등 아니면 안된다, 일류 아니면 죽는다 이렇게만 외치다가는 1등도 못살고, 나머지 2등에서 꼴등도 못산다. 1등부터 꼴등까지 모두 인생 낙제생이 된다. 아! 이 뼈져리게 아픈 '1ㆍ 등ㆍ병(病)'이여.

  ☞웰빙노트

'1등 주의'는 모든 가치관을 하나에 두고 있습니다. 1등을 제외한 2등이나 3등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되는데, 이런 편협하고 극단적이며 차별적인 사고가 결국 라이벌 의식을 조장하고, 상대방을 짓밟고 모략중상하게 됩니다. '1등 주의'는 초조함이나 불안감 그리고 강박관념을 갖게 하므로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루보물레 스마나사라, 붓다의 행복론>

승리는 원한을 낳고 패하는 자는 괴로워 신음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은 사람은 승리와 패배를 버리고 즐겁게 산다.<법구경>

성공한 사람은 실패한다. 그는 삶을, 모든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은 실제로 거래를 하고 있다. 그는 거짓된 것을 위해 진실을 내던져 버리며, 색칠을 한 해변가의 자갈들을 위해 내면의 보석을 내던지고 있다. 자갈을 모으면서 다이아몬드를 잃고 있다. 부자는 잃은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은 실패자다. 하지만 그대가 욕망에 찬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소유물만을 보는 것이다. 그대는 결코 정치인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그가 가진 지위와 서열을 바라본다. 오로지 그의 권력을 보는 것이다. 전혀 아무 힘도 없이 모든 것을 잃은 채, 삶의 환희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권력을 샀을 뿐이며,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상실했다. 그것이 그 거래의 대가다. <오쇼 라즈니쉬, 삶의 길 흰구름의 길>

대부분의 정신 치료라는 것은 상처 받은 이들을 응급처치해서 다시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 치료는 사람들이 사회에 더 잘 적응하게 만든다. 돈을 버는 데 더 능숙해지고, 자기 관리가 철저해지고, 더 성실해지고, 경제적으로 한층 경쟁력을 가지게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치료가 성공을 거두어 개인을 무한 경쟁 속으로 돌려보낸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개인은 오히려 이런 성공에 짓눌려 시들어 갈 뿐이다. <로버트 존슨 & 제리 룰, 내 그림자에게 말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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