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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칼럼]월가의 옵션

안동현칼럼 머니투데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 2010.12.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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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전 세대들은 대개 자식들을 4∼5명 정도는 낳았다. 이렇게 다산이 보편적이었던 이유로는 농업 중심 사회에서 노동력을 창출하는 면과 부모들의 노후를 보장하는 보험기능을 들 수 있다. 더불어 6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녀들 중 똑똑한 자식 하나만 있으면 전가족을 부양하는 일종의 콜옵션 기능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특히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보듯 장남에게 모든 자금을 투자해 교육을 해서 성공시킨 후 장남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뿐 아니라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관습이 있었다. 사후적으로 성공한 장남은 거추장스러운 부양가족을 나몰라라 하다 천벌을 받는다는 신파극적 요소는 80년대까지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이제 다산의 시대는 갔다. 자식들의 콜옵션 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식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버퍼를 구축해야 했다. 즉 자식은 부모에게 풋옵션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게 된 게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런 슬픈 현상이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금융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올해 월가를 비롯한 세계 유수 금융기관의 임직원 보너스가 전년 대비 20∼30%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주요 은행의 실적은 사상 최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너스가 줄어들었으니 표면적으로 보면 '월가가 정신을 차렸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 서브프라임사태 이후 구제금융 조건으로 보너스에 대한 각종 규제를 부과할 것으로 예측되자 이미 2009년 초 계약조건을 바꿔 기본급을 100% 이상 인상하고 보너스 비율을 낮춰 총액에 있어 큰 변화가 없도록 준비했다. 한마디로 조삼모사고 오히려 고정급 비율을 높임으로써 더 후퇴한 계약이 됐다.

최근 유럽 은행감독위원회(CEBS)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 소재 임직원에 대한 현금보너스 지급에 제한을 가하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유럽계 은행의 경우 같은 직급이라도 근무지에 따라 명암이 엇갈릴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의 임직원에 대해서는 고정급을 늘리고 보너스비율을 낮추는 반면 미국이나 아시아 쪽 임직원에 대해서는 반대로 가져가 형평성을 기하겠다는 거다.

더불어 골드만삭스는 구제금융을 갚은 후 올해 성과급에 더해 동결된 2008년 성과급을 소급해서 지급하겠다고 결정해서 반발을 사고 있다.

국민의 세금인 구제금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후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이런 행태는 배은망덕한 장남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더 나아가 올해 이들 금융기관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것 역시 미국의 2차 양적완화(QE2)를 비롯해 각국이 천문학적으로 퍼부은 유동성에서 기인한다. 결론적으로 금융기관들이 저지른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면서 국민들의 재무상태가 악화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풀지만 결국 이 돈은 금융기관들에 돌아와 수익을 창출하는 이상한 순환구조가 되었다.

최근에 각국이 미국의 도드-프랭크법안을 필두로 금융기관에 여러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규제회피책(regulation arbitrage)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전규제의 위험성은 규제를 설정하는 순간 피규제자가 이를 회피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어 오히려 그 규제만 피하면 나머지 모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방위험은 제한되고 상방위험은 열려있는 월가의 콜옵션은 지금도 유효하고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옵션의 존재로 인해 또다른 위기의 잠재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면에서 씁쓸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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