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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칼럼]쌀 계 vs 장리쌀, 상생 vs 공멸

홍찬선칼럼 머니투데이 홍찬선 부국장 |입력 : 2011.01.2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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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졌지만 40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는 쌀 계와 장리쌀이라는 게 있었다.

쌀 계는 6명이 계원이 돼,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이 먼저 쌀30가마 또는 50가마를 조달하고(계를 탄다고 했다), 순번에 따라 매년 한명씩 계를 타며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맨 뒤 순번을 받는다. 순번이 빠른 사람은 돈을 빌리기 때문에 계를 탄 뒤에 이자를 감안해 쌀을 내는 반면 순번이 뒤일수록 빌려주는 위치여서 부담이 적게 된다.

이때 적용되는 이자율은 연20%. 첫해 30가마를 받는 사람은 5년 동안 42가마를 내고, 맨 나중에 계를 타는 사람은 18가마를 부담하고 30가마를 받는다. 계의 순번을 달리해서 여러 개를 한해에 타도록 짜면 한꺼번에 쌀 200가마 정도를 만들어, 논 다섯 마지기(1000평, 논 가격은 아주 오랫동안 1평에 쌀 한말 안팎이었다)를 살 수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쌀 계는 이처럼 서로 도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립기반을 마련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계 타는 날엔 돼지도 잡고 술도 빚는 등 잔치를 벌여 어렵게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한바탕 먹는 재미를 제공하는 것은 서비스였다.

하지만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으로 목돈이 필요할 때 부자에게 빌려 쓰는 게 장리쌀은 달랐다. 급전을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의 순기능이 있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연20%의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를 가을걷이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데, 하루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살림살이에서 목돈을 갚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장리쌀을 상환하지 못하면 이자에 이자가 붙여 5년도 안돼 빚이 2배로 불어났다. 결국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논을 내놓고 빚을 갚은 뒤 소작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심할 경우에는 자식마저 빼앗기기까지 했다.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는 게 장리쌀이었다.

요즘 버전으로 바꾸면 쌀 계는 신협이나 보험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조금씩 갹출해서 몇 몇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도 이익을 얻는다. 이 때 전제가 되는 것은 어려움에 빠져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반드시 스스로 일어나려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줘야 할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일정부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수익자 부담원칙과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상부상조가 상생(相生)으로 이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금융회사들이 지난해부터 적극 시행하고 있는 햇살론이나 미소금융 등은 빚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에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활(自活)의 길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장리쌀은 사채(私債) 또는 ‘카드 돌려 막기’에 해당될 것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만 하려는 냉혹한 이기심이 작용한다. 결국 돈 빌린 사람은 망하고 빌려준 사람도 경제적 손실과 손가락질을 받는 공멸(共滅)을 초래한다.

쌀 계에는 모두가 잘사는 마법의 방정식이 숨어 있다. 바로 나눔과 스스로 서겠다는 자립정신이다. 부자의 곳간에 쌓여있는 벼는 장마철이 되면 썩지만, 봄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빌려주면 뜨거운 자활의지와 결합돼 100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요술을 부린다.

한국 교수들이 올해 제시한 말이 민귀군경(民貴君輕)이라고 한다. 백성은 존귀하고 임금은 가볍다는 뜻이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모두 잘 살기 위해 쌀 계의 정신이 그리워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발적 나눔을 실천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은 그런 나눔을 종자돈으로 삼아 자립을 이루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 말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실타래처럼 엉킨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데 항상 좋은 처방을 제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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